넌 초원을 달리는 치타, 넌 하늘을 가르는 독수리, 그리고 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제트기



다음날 학교를 가기 위해서 일어났을 때는 왠지 모를 개운함이 느껴졌다. 사실 그 이유는 일어나자마자 알게 되긴 했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는 바로 옆에서 나를 보고 있던 순이 때문이었다.

“으악! 사람 얼굴을 뭐 그렇게 봐?”

“너… 어제 뭔 일이 있었길래 씻지도 않고 그냥 잤어? 회장님도 꽤 화나셨던데.”

“몰라 나도. 유모는 웬일이야? 오늘 오는 날 아니잖아. 신쌤은 어쩌고?”

“그 놈은 뭐 전부터 지가 알아서 잘했어!”

싸웠다. 백퍼 둘이 싸웠다! 사실 이런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전에도 한번 신쌤이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업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주 웃겼다고 한다. 순이는 이미 30대 후반이지만 20대중반이라고 속여도 될 외모였다. 동수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그를 사모한 여학생들이 꽤 있었다. 그 중, 조금 돈이 있는 집안의 딸이 동수와 응응(?)을 하기 위해 술을 잔뜩 맥이고 동수의 집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하지만 동수의 결혼여부를 몰랐던 그녀는 현관에서 순이와 마주쳤고 순이는 바로 머리채를 잡고 휘둘렀다. 그 여학생은 순이를 고소했지만 내가 도와준 덕에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당연히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회장아빠는 그 기업을 매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도 순이는 화가 엄청났고 동수가 술을 절대 먹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고 나서야 풀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뭐야?”

“와이셔츠에… 향수냄새가 났어.”

“그리고?”

“립스틱 자국.”

“뭐?!”

이야, 이건 동수가 심했네.

“그래서 내가 뭐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아무것도 아니래.”

“헐… 신쌤 완전 실망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아무튼 쫌 이따가 얘기해줘. 나 학교.”

“아참! 아까 회장님께서 너 쉬라고 하셨는데?”

“됐어. 회사 쉬라고 한 거일 거야.”

난 대충 씻고, 대충 먹고, 대충 입고 (다 대충이야!) 등굣길에 나섰다. 물론 차를 타는 게 다지만… 차를 탔을 때 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주 떡 하니 안에서 버티고 있는 저승사자 때문에…

“아저씨! 얘 누구에요?”

“회장님 지시로 오늘부터 모시게 된 팸스그룹 후계자십니다.”

“에에? 팸스면 신쌤 있는데 아냐?”

“동수씨의 형님의 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에에??!! 그게 무슨 소리야?”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저승사자의 얼굴을 쳐다봤을 때는 살짝 웃으며 나를 향해 윙크를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 이놈이 무슨 수를 썼구나’ 싶었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에서 나와 저승사자, 그리고 임기사님은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는 여전히 많은 고급 차들이 북적 북적거렸고 품위 있게 걸어 들어가는 학생들로 차있었다. 그렇게 나는 교문에서 1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등교하기 시작했고 또다시 사람들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기 시작됐다.

“야, 굳이 그렇게100미터 떨어진 데서 등교하는 이유는 뭐냐?”

“인생의 반을 그냥 보통 학생으로 살았다 인마. 너 같으면 하루아침에 공주님처럼 등교하는 게 가능할 것 같냐?

“에헤이, 그래도 좀 즐겨!”

“너나 실컷 즐기세요. 팸스후계자씨! 그래서 학교에서는 너 뭐라고 불러?”

“글쎄? 함 물어볼까?”

자기 이름이 뭔지도 알아보지 않은 우리의 저승사자님… 그렇게 그는 당당하게 어떤 여자아이들 무리로 다가가 보통이라면 쓰러질 법한 미소로 물었다.

“내가 누구게~?”

“아… 팸스그룹 신동국?”

“아하! 고마워!”

여학생들은 이내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아니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나는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고 뒤 돌아서자마자 뭐 씹은 얼굴을 하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푸풉! 야, 니 이름이 동국이냐? 똥국?”

“아 진짜, 망할 영감이 또!”

“영감이라니?”

“저승에 영감이 한 사람 밖에 더 있겠냐. 염라지.”

염라대왕을 말하는 건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그 놈의 표정은 꼭 지가 원하는 걸 갖지 못한 3살짜리 꼬마 같았다. 볼은 빵빵 해진 채 입술을 쭉 내민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흉했다 (물론 지나가던 여학생들은 귀엽다며 꺅꺅 댔지만 뭐, 눈이 삐었나 보다 하고 말았다).

“그래서 똥국아, 넌 몇 반?”

웃음을 참으며 던진 나의 질문을 받은 그 놈은 갑자기 나에게 가까이 왔다. 놀란 나는 살짝 뒷걸음을 쳤고 그 놈은 웃으며 말했다.

“응~너네 반!”

신이시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
.
.
/교실

“어머, 팸스 아들이 우리 반으로 옮긴다는 거 그냥 소문 아니었어?”

“소문이든 아니든, 우리 반에 잘생긴 넘아가 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야, 넌 그 소문은 못 들었냐? 아주 성격이 멍멍이 같다던데? 멍멍이.”

“흐에! 생긴 건 멀쩡한데… 왜 그런데?”

저승사자가 반 안으로 들어온 순간 반 아이들은 마치 보면 안됐었던 것을 본 것처럼 그대로 얼어버렸다. 조용한 반 안에서 나와 저승사자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댔고 심지어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안녕!”

해맑게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드는 저승사자 덕에 여학생들은 그대로

“꺄아악! 귀여워!”

라며 하나 둘씩 쓰러져 나갔다. 몇몇 남자아이들까지 표정을 붉히는 것이 보였고 난 그 광경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난 신동국! 잘 부탁해!”

“날 가져 동국아!”

아니 뭐래, 갖긴 뭘 가져?

“내 목숨을 바칠 정도로 책임져 줄게!”

저승사자한테 그렇게 말하니 뭔가 아이러니 하긴 하네.

교실에는 벌써 코피를 흘려대는 여자아이가 한둘이 아니었고 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이내 선생님이 들어와 그의 소개를… 했나? 사실 앉자마자 잠이 들어서 나도 잘 모르겠다.
.
.
.
/점심시간
“진솔아! 일어나봐, 지금 점심시간이야.”

“으음- 그래.”

일어나서 쭉 스트레칭을 하고 옆을 봤을 때는 못 보던 아이가 앉아있었다.

“쟨 누구?”

“아, 넌 전학생이라 잘 모르겠구나. 우리학교에서 꽤나 유명한 애야. JS장학재단에서 장학금 받고 다니는데 고아래. 암튼 공부는 대빵 잘하기도 하고 몸도 안 좋아서 자주 결석하기도 해.”

책상에 엎드려 자는 듯한 놈은 왠지 모르게 나에게 다가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난 천천히 그에게 이끌리듯 다가갔고 그 애의 바로 옆에 다다랐을 때 손을 뻗어 그를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겨냈다.

“헉!”

옆에 있던 여학생은 작은 탄식을 내뱉었고 난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뭐야”

누가 알았을까

“너 뭐 하는 년이야”

학교 후드티 왕따남이

“너…”

존잘남 이었다는 사실을.

“야. 내 말 안 들리냐? 너 뭐 하는 짓이냐고.”

순간 넋을 잃은 나는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냥 너 누군지 궁금해서 들쳐봤는데?”

“후… 야. 너 그냥 가라. 나 더 자게.”

“싫은데?”

“이게!”

그 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을 치켜 들었다. 하지만 그 손은 나에게 닿지 못했다. 왜냐하면…
“숙녀한테 손을 대는 것은 나쁜 거란다?”

어디선가 나타난 한지구가 막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계속되던 눈싸움 끝에 그 놈이 입을 열었다.

“너… 뭐야.”

“나 이래 봬도 우리 학교에서 잘 알아주는데?”

“놔 이 새끼야. 안 놔?”

“뭐, 너 약골인건 전교생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심한 거 아냐? 너 별로 세게 안 잡았다고. 진솔아, 괜찮아?”

이 놈은 대체 언제 봤길래 친한 척이람… 하지만 난 내 실수를 쉽게 알아차렸다.

“…대체 언제 봤길래 친한 척이야…”

실수로 생각을 입 밖으로 낸 것이다!

“아… “

그 놈은 당황한 듯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표정을 재빨리 고치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차피 너.”

난 후드티 놈을 가리켰다. 이놈은 뛰는 놈.

“나 못 때렸을걸? 너도 막을 필요 없었고.”

난 그 다음에 한지구를 가리켰다. 이놈은 나는 놈.

“어차피 너 후원해주는 거.”

그리고 난…

“우리 집이거든.”

JS장학재단의 하나뿐인 딸, 즉, 내 힘으로 날 필요도 없이 원래부터 공중에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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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27 19:36 | 조회 : 1,281 목록
작가의 말
넘나조은거

오랜만입니다! 자주는 못 올릴것 같아요...죄송해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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