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대.형. 낙하산, 아니 일등급 비행기?

중2병 말기 환자와의 대면이 끝난 후, 다시 수업을 들으러 반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 과정은 초등학교 다닐 때 모두 다 끝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잠만 잤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꽤심한 나에게 배우지도 않은 단원의 문제를 내어줄때는 얼렁 일어나서 얼렁 풀고 다시 돌아와서 잤다. 그렇게 재밌지도 않는 학교가 끝이 나고 교문에는 다시 차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기사들이 열어주는 차문으로 쏙 들어가는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야, 요즘 애들이 싸가지가 없어요. 차문을 지가 열어야지.”

“뭐야?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음… 하교 시간이니까 나도 가야하지 않을까?”

“너 집은 어딘데?”

“응~ 지옥!”

뭘 기대했던 내 잘못이지… 해맑게 웃으면 지옥으로 간다는 저승사자를 가볍게 무시하고 교문쪽으로 점점 다가갔다. 멀리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기사 아저씨를 발견한 나는 재빨리 그 방향으로 뛰어갔다. 길을 건너가는 내내 나를 향한 뜨거운 시선들이 간혹 느껴지기는 했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차문을 열었다.

“아가씨, 그건 제가 해도 되는데…”

“에이, 제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내가 무슨 문도 혼자 못 여는 병신이게요?”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알아요, 얼른 가요! 아빠가 늦었다고 난리 치시기 전에!”

장난스레 웃으며 차에 타는 나를 저승사자는 왠지 쓸쓸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의아해진 나는 물어보려 창문을 내렸지만 차는 이미 출발한 후였다.

학교에서 차로 약10분 거리인 회사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고층 빌딩이었다. 층수는 60층정도까지 있고 맨 꼭대기 층이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회장실이다. 난 회사에서 당당히 면접을 통해서 회사 홍보 팀으로 들어왔고 저녁 근무이기 때문에 4시에서 11시까지 일을 하기로 했다. 회사 첫날이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했던 탓인지 엘리베이터가 60층에 도착하자마자 자빠졌다.

“으…으앗!”

넘어진 나를 비서들이 킥킥거리면서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난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진솔아!”

누군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장본인은 다름아닌…

“괜찮아? 어디 다쳤어?”

“괜찮아요. 다들 쳐다보는데… 회장실에는 안 있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우리의 팔불출 회장아빠이다! 평소에는 회장실에 쳐 박혀있다는 사람이 밖에 나와서 기다린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했지만 동시에 놀랍지는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첫 출근인데, 뭔들 못하리?

“그야 우리 딸 보러 왔지! 자 얼른 들어가자!”

주위에서는 작은 경악소리들이 들려오는 듯했다. 살짝 돌아보니 아까 나를 향해 조소를 뱉던 비서들이 충격 받은 표정에 얼굴을 붉히며 있는 것이었다. 애교를 부리는 회장아빠의 모습에 반하고 동시에 충격까지 받은 것 같았다. 당당히 회장실로 들어가는 나를 보고 비서들이 뒤에서 “뭐야, 쟤!” 라고 하는 것이 들려오기도 했다.

“아빠, 나 일하러 가야 하지 않아요?”

“아니아니! 오늘은 첫 출근이니까 나랑 놀자! 음… 그래! 옛날 애기 때 사진 보면서 놀까?”

설마 회사에도 내 앨범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애기 때 그 굴욕적인 사진들은 정말 보기 싫단 말이다!!!

“그래도 오늘 가서 조금이라도 배워야죠. 나 이만 갈 테니까 이따가 같이 저녁 먹어요. 아빠도 일 잘하고!”

내심 서운한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회장아빠는 나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그럼 저녁 먹고 나서는 나랑 같이 노는 거다!”

참말로… 이 정도 일 줄은 나도 상상 못했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회장실을 나오는 나에게 누군가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수많은 비서들은 나를 손가락질하고 간혹 말하기 뭐한 단어들도 들려오는 듯 했다.

‘내려갑니다. 문이 닫힙니다’

역시 나에게 상냥한 것은 엘리베이터 뿐인 건가… 하지만 차갑게 ‘12층입니다’ 라고 하며 나를 내쫓아버린 냉혈한 엘리베이터. 지금 엘리베이터한테 말하고 있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여~ 왔네 우리 회사 대형낙하산!”

어디선가 들려오는 짜증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는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미녀가 있었다.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더니… 정정당당히 심사를 거쳐 올라온 나를 보고 낙하산이라니…

“첫 출근을 회장실로 했다며? 깡이 장난 아니네?”

“회장께서 먼저 그쪽으로 출근하라고 특별지시 하셨습니다. 뭐 문제라도?”

“뭐? 이게 첫날부터 찍히려고 작정했나! 야, 너 내가 누군지는 알아?”

내 이마를 검지로 꾹꾹 누르면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이 사람… 도대체 왜 이러는 지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이봐, 차대리! 그분이 누구신지는 아는가? 바로- 읍!”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차 대리님! 손진솔입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팀장이 나의 정체를 탄로(?) 하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막은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 회사에서 지금 찍힌 건가?
.
.
.
.
회사에는 진짜 내편이 하나도 없는 걸까… 너무나 힘든 두 시간이었다. 커피 심부름에 복사는 물론이고 스캔, 팩스,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게다가 모든 작은 일 (커피가 뜨겁다니, 종이가 꾸겨졌다니, 등등) 에 대해 트집을 잡는 이름 모를 차대리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는 것이다. 진짜 딱 봐도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너 머리가 그게 뭐니?” 라고 하며 내 태도, 성격, 그리고 몸매 기타 등등 있는 것 없는 것 전부 트집을 잡는다. 진짜 한 시간이라도 날 가만히 안 두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해야 하나… 6시에 회장아빠와 저녁을 먹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신입 주제에 칼퇴근? 지금 뭐하는 짓이니?”

“네? 제가 선약이 있어서…”

“뭐? 지금 팀장님도 일하고 계시는데 지금 뭐하는거야?”

그렇게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 5분이 지났을까…

[띵~띵~ 안내방송입니다]

“뭐야? 저거 진짜 쓰는 거였어? 회사 창립하에 한번도 안썼잖아.”

“그러게요… 아! 그때 회사 조사 들어왔을 때 한번 썼는데, 또 무슨일이 생긴걸까요?”

[신입 사원 손진솔. 손진솔양은 지금 당장 회장실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설마, 지금 회장아빠가 나 보자고 위급상황일 때 쓰는 안내방송을 쓰는 건가…

“뭐야! 너 도대체 뭔데 우리 회장님 한테 불려가?”

그때 난 알아차렸다. 회장아빠는 회사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을… 차 대리의 얼굴을 점점 붉어지더니 숨이 가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달려오더니…

“으아! 지금 뭐하는 거야 차 대리!”

“말리지 마요 팀장님! 첫 날부터 이렇게 재수없는 년들은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

그렇다. 내 머리채를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존심과 깡이 한번에 같이 자란 나는 찍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더 자극 받은 것인지 차 대리는 더욱더 세게 흔들었다.

“회장실 갔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어! 너 뭐하는 년이야?”

언제부터 회사가 한 막장 드라마의 세트장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미간만 살짝 찌푸리며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의 화는 언제쯤 풀릴까 하며… 그러다가 머리의 아픔이 사라진 것은 아마 어디선가 마찰음이 들려온 후였을 것이다.

“회… 회장님? 여긴 어떻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오늘 들어온 신입한테 회사 조항을 어기고 폭행을 가한 것이야?”

“아니, 이건 그냥 신입사원 교육차에…”

“그럼 나보다 한참 뒤에 들어온 너도 나한테 교육받아볼래?”

인소나 웹소에 고드름마냥 차갑고 날카롭게 말하는 등장인물들이 몇 있는데 설마 회장아빠가 그쪽 부류였을 줄이야… 둘이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동안 난 내 머리를 정리하고 옷을 정돈했다. 그리고 옆에서 정비서님이 나의 팔을 잡으셨다.

“?”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비서님은 한숨을 쉬시더니

“회장님 지시입니다. 본가로 가서 휴식을 취하시라고…”

“나 아직 일 남았는데요?”

“진솔아 집에 가 있어. 밥은 나중에 먹자.”

진지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수긍해버렸고 회장아빠의 그런 모습에 차 대리는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나를 가리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설마…”

“회장딸이면 서열이 조금 높은 게 아닐텐데 그치?”

회장아빠는 살짝 비꼬듯이 말했고 차 대리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그 사이에 나는 비서님과 함께 집으로 갔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0
이번 화 신고 2017-10-09 15:26 | 조회 : 1,615 목록
작가의 말
넘나조은거

방학을 맞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래봤자 겨우 일주일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올릴게요~ 기다려 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