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잔상.

[긴상. 좀 웃지 그러십니까.]

유곽에 갔던 날 이후로 긴토키는 표정이 바뀌었다.

전에도 그리 웃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타카스기랑 치고 받는 싸움이 줄었달까 덜 활발해졌달까...

묵묵히 전쟁터에서 이름만 높아져 갈 뿐이었다.

지금은 또 한차례의 전투가 끝나고 잠을 자고있는 긴토키를 머리맡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난 먹을 필요가 없듯이 잠 역시 필요가 없었다.

그나저나 긴토키는 가뜩이나 많지도 않은 말수가 더욱 줄어들고 무표정에 눈매가 더 매서워진 것 같다.

나는 자느라 지금은 눈꼬리가 내려가있는 긴토키의 입매를 죽 올렸다.

뭐, 그 결과 미소는 커녕 그냥 긴토키의 얼굴을 반쯤 통과해버렸지만 말이다.

"으으음.... 끙"

그러자 긴토키의 몸이 뻣뻣히 굳으며 연신 신음을 흘린다.

내가 손으로 건드린 덕에 가위에 눌린듯 했다.

나는 무심코 찌푸려져 있는 긴토키의 미간을 손으로 꾸욱 눌렀다.

[아, 또 통과해 버렸다...]

긴토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져 가길래 황급히 손을 땠다.

그러자 긴토키는 몇 번 뒤척이더니 다시 편안한 얼굴로 잠에 들었다.

[긴상... 곧 만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그런 모습 좀 보이지 말라고요.]

내가 백야차의 긴토키를 알기 전, 그러니까 과거로 오기 전까지의 나 역시 나였고, 사신으로 활동했을 때, 처음 해결사를 방문해 긴토키를 만난 것은 분명히 거짓이 아닌, 확실히 이미 정해져있는 미래다.

나는 반드시 해결사로 돌아간다.

다만 아직은 미련이 남는다. 때가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로 말을 걸어도, 전해지지도 않고,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다.

얼마 전까진 글을 써 볼까 하고 붓을 들어봤지만, 애초에 잡히지도조차 않았다.

유일하게 긴토키를 건드릴 수 있다면, 입김을 불거나 어깨에 올라 앉거나 이렇게 잘 때 옆에서 알짱거려 가위에 눌리게하는게 다 였다.

하지만 가뜩이나 정신적으로 안 좋은 긴토키를 몸까지 괴롭히고 싶진 않았으므로 반경 2m의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다녔었다.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지만, 그 이상은 긴상의 몸에 무리가 가니까...]

긴토키의 머리맡에 쭈구려 앉아 장난치고 또 혼자서 중얼거리다 천천히 일어났다.

실체가 없어서 긴토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고 전투에도 도움이 될 수 없지만, 이런 나에게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지금은 전쟁 중, 긴토키가 전쟁에서 명성이 높아져가고, 양이지사의 사이에선 전설의 영웅이 되어가고 있다.

전쟁에서 영웅이라는 건,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듯도 된다.

긴토키가 조금이라도 기운빠진 약해진 모습을 보이거나, 지금처럼 무방비로 자고 있을 때, 긴토키가 죽였던 귀신들이 긴토키에게 죽었던 모습 그대로 찾아온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잔뜩 몰려오고 있었다.
배에 칼이 찔린 모습, 얼굴이 찔린 모습, 팔이나 다리가 베이거나, 목과 몸이 동강나 머리를 손으로 든 영혼들.

[거 참... 모습 한 번 다들 가관일세... 전쟁에 참가했다는 건 죽을 각오 정돈 하고 왔다는 거잖습니까. 근데 뭐 그리 미련이 남아선... 아무 것도 못하고 죽어서 한이라도 남은 겁니까.]

말은 그리 했지만, 한이 크면 클 수록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 머무른다 했다. 전쟁터에서 죽은 저들은 얼마나 오래 머물며 긴토키를 괴롭히게 될 지 모른다.

분명 안쓰럽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긴토키를 괴롭히고 있는 모습을 눈 뜨고 멍하니 구경할 생각은 없다.
그들이 천천히 긴토키에게로 다가왔다.


[저기, 당신들 사정이 아무리 딱하다 해도 괴롭힘을 방관할 생각은 없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슬금슬금 오더니, 동시에 긴토키에게 빠르게 덤벼들었다.
동시에, 나는 그들에게 기를 일으켜 모두 튕겨냈다.
그러곤 살기를 피어올렸다.

[경고했어. 꺼져.]

그러자 그 중 한 령이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덤벼들었다.

나는 빠르게 령의 앞을 가로 막고 가슴 부근에 손바닥을 대고 기의 파장을 쏘아 보내 령의 기를 흐트렸다.
령의 모습이 잠시 일렁이더니 희미해지며 곧 사라졌다.

[이미... 사고할 능력은 없는 건가.]

그렇게 막 하나의 령을 소멸시키고,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방에서 몽땅 못 나갑니다. 어차피 보내봤자, 약해지면 또 찾아 올 테고... 내가 없을 때 습격하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고...]

잠시 말을 멈추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요약하자면, 전부 소멸시켜 주마. 지금 이 자리에서.]


* * *


...힘들다.
힘을 너무 썼다. 녀석들이 경고했을 때 순순히 물러났다면, 전부 소멸시키진 않았을 텐데...

뭐, 순순히 물러날 녀석들이었다면 애초에 귀신이 되어서 찾아오지도 않았을테지만.

힘이 없다. 귀신인데도 축 늘어지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평소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왠지 떨어질 것 같아서, 평소보다 조금 가깝게 붙었다.

2m가 아닌 팔을 쭉 뻗으면 닿을 거리. 근데 어쩐지 긴토키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 너무 가까이 붙은건가?

[긴상, 제가 너무 가까이 붙었습니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긴토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나는 옆에 있는 타카스기에게로 고개를 돌려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제 막 전투 시작하려는데... 그 전에, 동료 상태를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타카스기를 맹렬히 노려본게 효과가 있었는지, 타카스기가 긴토키를 돌아본다.

"어이, 네놈 상태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데? 뒈지는 건 아니겠지?"

"닥쳐."

"말하는 꼬라지로 봐서 죽진 않겠군."

뭐하는 짓이야! 상태를 물어 보라니까, 왜 시비른ㅅ 걸고 있는거야?!

내 불찰이다.
상대를 잘못 골랐어.

카츠라, 믿을 건 너 뿐이다...

"긴토키? 자네 정말 괜찮은 건가? 안색이 그리 좋진 않은데..."

"아아, 괜찮아. 잠을 좀 설쳤을 뿐이니까."

"악몽이라도 꾼 건가?"

"아니, 그냥 단순히 잠을 깊이...... 랄까, 즈라. 내가 네 녀석한테 꿈 내용까지 말해야 하는 거냐?"

"뭐 별거 아니라면 됐네만."

카츠라는 미심쩍은 얼굴로 긴토키를 바라봤지만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선 왠지 그 눈빛이 날 질책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긴토키의 얼굴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잠자리 근처에서 긴토키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령들과 싸움 깽판을 벌였다.

용하게도 가위를 눌리거나 악몽을 꾸지 않은 긴토키에게 상이라도 줘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그 싸움은 상대 쪽에서 먼저 걸어왔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변명을 해 봈자 들리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긴토키. 전투 시작할 테니 정신 바짝 차려두게."

"네놈이나 정신차려라, 즈라."

이번 전투는 꽤 중요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쇼요 선생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듯 했다.

천인들도 보통 때보다 3배 정도는 많아 보였다.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내 예감이 잘 들어맞는다는 것도 잘 알기에 더 불안에 휩싸였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가까이... 아니, 그냥 바싹 붙었다.

딱 서로 평범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리.

긴토키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는 게 보였지만, 그냥 모른 체 했다. 긴토키의 창백함을 신경 쓰기에는 불안감이 너무 컸다.

온 몸의 털이 쭈뼛주뼛 설 정도로 불안했지만, 애써 진정시키며 긴토키를 따랐다. 여기서 긴토키랑 떨어지는게 더 위험할 거리는 판단에서였다.

[긴상, 절대 떨어지시면... 아니, 내가 잘 따라다녀야지.]

그렇게 긴토키의 옆과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긴토키를 피곤하게 만들었건만, 전투의 중반이 다 되어가는데도 특별히 위험한 동세는 보이지 않았다.

긴토키는 조금 지친 기색이었을 뿐, 백야차의 명성답게 잘 싸웠다.

[그냥 내 단순한 노파심이었나? 그럴리가 없는데...]

하지만 이대로 계속 바싹 붙어서 긴토키를 피곤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다 문득, 다시 쭈뼛한 불안감에 천인 쪽의 군을 바라봤다.

긴토키와 다른 전우들 역시 강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에 고개를 돌렸다.

[저건...]

"......!"

"... 천도중."

"......"

천도중.
삿갓을 쓰고 지장을 들고 다니는, 가히 우주 최강이라 할 만큼 한 명당 일당백의 힘을 갖고 있다고 하는 녀석들.

결정적으로 무력을 행사해 쇼요 선생님과 우리들을 떨어지게 만든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녀석들이었다.

카츠라와 타카스기는 분개해 했지만 바로 달려드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늘 선두에서 뛰었던 긴토키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곧바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김을 맛보며, 급히 긴토키의 뒤를 따라야 했다.

[긴상! 저랑 대련했던 거 잊으셨습니까! 그렇게 흥분하면 주변을 못 보게 된다고 누누히 말했잖습니까!]

버럭 외치며 급하게 긴토키의 옷깃을 붙잡았지만, 허무하게 통과해버렸다.

긴토키는 곧장 일직선으로 달려나가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당연하게도, 긴토키의 검은 녀석이 들고 있는 지장에 막혔다.

나는 그런 긴토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하얀 검귀로 전장을 누볐을 때 처럼 긴토키와 등을 맞댔다.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긴토키를 피곤하게 만드는 거겠지만 그래도 긴토키에게서 멀리 떨어지면 불안했다.

[긴상, 제발 무리좀 하지 마십시오.]

아군 편을 슬쩍 곁눈질하니 타카스기와 카츠라 역시 천도중 녀석들과 고전 중이었다.

[긴상 혼자서 상대할 수밖에 없나...]

긴토키는 검을 맞댄 채로 힘을 겨루며 녀석에게 물었다.

"쇼요 선생님을 어디로 빼돌린 거냐. 감옥을 나오게 했다는 소문이 돌더군."

"뭐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곧 만나게 될거다."

"...... 무슨 뜻이지?"

녀석에게선 대답이 없엇고, 옆에서 다른 천도중 하나가 갑자기 기습을 했다.

[긴상, 옆!]

다행히도 기습은 제 때 막았다.

[......!]

하지만 방금 이야기를 나눴던 천도중이 다시 한번 지장을 날렸고, 이번에는 제 때 막지 못한 긴토키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무슨 힘이......]

성인 남성 한 명을 허공에 떠올릴 수 있는 힘. 과연 헛으로 우주 최강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게 아닌 건가...

나는 대강 눈대중으로 긴토키가 떨어질 지점을 계산해 살폈다.

[......!]

긴토키가 떨어지는 지점에 천도중 한 명이 지장을 거꾸로 세워 창처럼 들고 있었다.

허공에서는 떨어지는 지점을 바꿀 수 없었고, 뒤로 밀려나 듯 허공으로 떠오른 긴토키는 뒤를 확인하지 못 해, 몸을 비틀지 않았다.

그대로 둔다면 몸의 중앙을 관통할 위치였다.

[긴상!]

나는 확인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날듯이 뛰어가 지장을 쳐냈다.

하지만 쳐냄과 동시에 후회로 물들었다,

[아...!]

아무 생각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한 짓이었다.
그러면 안되었다.

내 몸이 통과하기 때문에 녀석의 얼굴에 입김을 불거나 어깨에 올라타, 녀석을 잠깐이라도 놀라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터.

[어... 라......?]

하지만 손이 통과하는 끝 무렵에 무언가 손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장의 궤도가 반쯤 틀어졌다.

지장은 긴토키의 옆구리를 스쳤고, 다행히도 옷깃만 찢어졌다.

긴토키는 옆으로 몸을 틈과 동시에 궤도가 갑자기 어긋나 당황하고 있는 녀석을 단숨에 베었다.
그리고 다급히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카오루?!"

나는 내 손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다가, 긴토키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긴토키의 옷깃을 붙잡으며, 더듬거리는 물었다.

[기, 긴상... 호, 혹시 지금... 제가.. 보입니까?]

하지만 내 손은 옷깃을 무참히 통과해버렸고, 긴토키는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 두리번거렸다.
바로 앞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긴토키가 위험했었단 걸 알고, 카츠라가 다가왔다.

"긴토키, 무슨 일 있는 겐가?"

"그리운 향기... 아니, 느낌이...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어."

"응?"

"아니, 아니야... 카오루의 잔상을 봤어...... 녀석은 더 이상 이곳에 없는데..."

"긴토키, 자네 정말 괜찮은 겐가? 역시 후방으로..."

"아니, 다시는 볼 일 없을테니 전방에 남지."

옷깃을 통과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을 때부터 다시 마음을 접었는데. 기대를 접었는데, 잔상이라는 말에...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이 마치 나한테 직접 말하는 것 같아서, 가슴 한 켠이 시큰거렸다.

[그래도 이 상태에선 긴상을 수호하는 수호령 정도로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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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19 15:44 | 조회 : 2,01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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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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