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아야메를 만나다.

긴토키는 날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야메와 나의 관계를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긴토키는 타카스기랑 카츠라를 불러 모아 이번 전투가 끝나고 나면 전에 갔었던 유곽에 가기로 결정했다.

나도 긴토키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혼으로 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나이기에, 이렇게 따라다니는 것 외에 가능한 일은 없었다.

전쟁터... 지금 내겐 칼이 없었다. 몸이 사라지기 전에는 검을 쥐고 있었는데 육체랑 같이 사라져버린 건지 지금은 갖고 있지 않았다.

"죽지 마라, 즈라."

"내가 할 말이네, 긴토키."

"귀병대가 선두를 친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엄청나게 많은 적을 앞에 두고 셋이서 선두에 서서 달려드는 모습은 꼭 불에 달려드는 부나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진 나도 저기에 있었는데... 내 모습도 저렇게 보였을려나.

막상 저기에 있을 때는 못 느꼈었는데, 지금의 상태가 되어 한 발자국 물러나서 보니, 확실히 보인다.

너무 무모하다.

그러고보니 내 몸이 사라지기 전에 카츠라랑 작전을 짰는데, 지금 실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거, 조금 수정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카츠라한테 얘기 안 했나?

... 아무래도 조금 삐걱대는 전투가 될 듯 하다.

"비율은?"

"약, 2대 3정도..."

"우리가 3?"

"그렇긴 하다만... 상대는 전투선이 있으니, 우리가 나서서 최대한 수를 줄여야 하네."

"뭐, 언제는 안그랬남?"

긴토키가 살짝 질린 얼굴로 한숨 짓는다.
조금은 피곤해 보였다.

[긴상, 피곤해도 정신 놓으시면 안됩니다.]

나는 긴토키의 얼굴에 살짝 입바람을 불었다. 그러자 긴토키가 창백한 얼굴로 부르르 떤다.

"히이이익?!"

"왜그러는가?"

"아니, 갑자기 왠 한기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효과는 확실했다. 괜히 미안해졌다.

[그, 그러니까 제대로 정신 차리고 다치치 말란 말입니다아!]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변명을 나도 모르게 버럭했다.
아아, 쪽팔려서 얼굴이 폭팔할 것 같다. 아무도 못 볼테지만. 그건 다행이다...

방금 일 덕분에 어느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야 천천히 내 모습을 살핀다. 딱히 시야가 낮아지지도 손이 투박해진 것도 아니었다.

아저씨가 아닌, 카오루의 모습 그대로였다.

[신기하네... 이래봬도 아저씨였는데 말이지. 단순히 몸 속에 들어온 게 아니라는 건가... 진짜 환생?]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었다.

난 카오루의 몸이 갓난 아기었을 때부터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왜인지는 몰라도 아마 정신이 갓난 아기라는 점이 아닌 것...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태어났던 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에 없다는 말이 더 맞겠지... 카오루는 환생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아기의 몸을 빼앗은 걸지도...

[혹시... 설마... ]

원래 세계에서의 기억 중 하나가 얼핏 떠올랐다.
귀신을 보는 사람을 알고 있는 지인 중 한명이 지나가듯이 한 얘기가 있었다.

분명, 혼이나 귀신은 살아생전 가장 강렬했던 기억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고... 그래서 교통사고나 살인같은 사고사를 당한, 한이 남은 인간은 사고사를 당했던 끔찍한 모습을 그대로 갖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나도 한이나 미련이 남은 종류라는 건가... 그건 그렇고, 그 때 거짓말이나 농담으로 가볍게 치부해버린 말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묘하네.

아저씨였을 때 자살한 것 보다 카오루였을 때 남으려고 한 게 더 강렬한 기억이었나?

한 참을 생각에 빠져 멍하게 긴토키를 따라다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땅거미가 지고, 전투가 거의 끝나 있었다.

혹시라도 한기 때문에 전투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시야에 들어 올 정도만의 거리를 유지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전투가 완연히 끝난게 보이자 긴토키에게 바짝 다가가 그를 살폈다.

[긴상, 다친 곳은 있습니까?]

딱히 답을 원한 것도 눈을 마주치길 원한 것도 아니었다. 거의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고맙게도 카츠라가 내 질문을 해준다.

"긴토키, 자네 다친 곳은 있나?"

"없어. 그보다 즈라, 전투가 끝나면 유곽에 같이 가자고 했던 거, 잊진 않았겠지?"

"그보다 역시 오늘은 좀 쉬는 게-"

그 말에 긴토키의 표정이 차갑게 굳는다.
거 참, 눈빛만으로 즈라 죽이겠네...

"......"

"... 자네 표정을 보니, 가는 게 좋겠군."


* * *


"끄응..."

"왜 그러는 건가, 긴토키."

"어깨가 좀 무겁달까... 쑤신달까..."

그래, 좀 쑤실거다. 내가 타고 있으니까.
혼이 되어버린 것 중에서 또 괜찮은 한 가지는 몸이 가볍다는 점이다.

마구 날라다니는 건 불가능하지만 몸이 가벼워져서 조금만 점프를 해도, 이렇게... 긴토키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다.

뭐, 어깨를 뺏긴 상대는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는 듯 했지만 말이다.

"늙었군."

"동갑이거든? 바보냐, 타카스기"

"역시 돌아가 쉬는 편이 낫지 않은가?"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피곤한데 역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긴상?]

처음엔 긴토키를 따라가서 아야메를 보고 싶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임신한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영혼이 들어가 있는 자아일테고... 아니, 이건 그냥 핑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아야메를 보는 게 꺼려졌다.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미래에서 아야메의 죽음을 봤다. 그리고 과거에 와선 아야메의 죽음을 피하게 할 지도 모르는 방법을 긴토키를 위해 포기했다.

그런 아야메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지금은 내 목소리... 내 모습을 볼 수도 없을 텐데...

허무감만 남을 것 같다.
이런 일방적인, 아무 의미도 없는 만남.

[돌아가잔 말입니다, 긴상. 피곤하잖습니까. 피곤하죠, 긴상?]

아무리 어깨 위에서 짓눌러도 돌아가질 않았다. 끈질기다.

어차피 가 봤자, 얻을 것도 없을 텐데.

"이상하네... 전투가 끝났을 땐 팔팔하고, 몸도 가벼웠는데 이상하게 갑자기 그런단 말야..."

뜨끔했지만 애써 모른체 했다.

뭐, 어쩔건데?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을 텐데.
그러니까... 돌아서는 순간 바로 내려간다니까?

이렇게 피곤하면서 뭐하러 가려고 그러는지... 내가 긴토키를 따라가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긴토키를 보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그의 절망을 곁에서 지켜볼 자신이 없다.

"하하하, 긴토키 자네 귀신이라도 붙은 거 아닌가? 갑자기 오한이 들거나 갑자기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던가."

"즈라, 장난하냐? 귀신이 어딨어?"

"그래. 저런 검 밖에 모르는 바보한텐 귀신도 떨어져나갈 거다."

"죽여줄까, 타카스기?"

"네가 죽고 싶은 거겠지."

장난으로 시작해서 마무리는 칼질이다.

[... 긴상 피곤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다행히 카츠라가 제때 말린다.

"다들 그쯤으로 해두자고. 유곽에서도 그렇게 싸울 건가?"

카츠라의 그 한 마디에 둘 다 칼질을 그만 둔다.
거 참. 그냥 단순히 유곽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 긴토키...

"아, 킨토키. 귀신이 붙었을 땐..."

"됐다니까. 귀신이 있을 리 없다니까? 전쟁터에서 죽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귀신이 있다면 난 이미 귀신들한테 붙들려 지옥으로 떨어졌겠지."

카츠라는 손을 내젓는 긴토키에게 억지로 다가갔다.

"간단한 거라네. 그냥 단순히 어깨를 털어내는 걸세."

툭툭.

둘이서 투닥거리다...

......어어?!

[...... 뭐야?]

... 정말 긴토키 어깨에서 굴러 떨어졌다.
흙바닥에서 엎어진 채 벙찐 얼굴로 카츠라와 긴토키를 올려다봤다.

긴토키 역시 고개를 한 바퀴 돌리고 어깨를 툭툭 치더니 놀란 얼굴로 카츠라를 바라봤다.

"에?! 정말 괜찮아졌어? 뭘 한 거냐, 즈라!"

"아아니, 단순히 어깨를 털은 것 뿐이다만..."

카츠라 역시 정말 효과가 있었는 줄은 몰랐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어이... 정말이냐... 귀신 진짜 있었던 거야?"

"서... 설마. 진짜로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필시 우연이라네..."

"그, 그렇겠지? 하, 하하... 아, 하하..."

... 당분간 어깨에 올라타는 짓은 자중해야겠다.

.
.
.
.

... 아야메가 있는 유곽은 꽤 멀었다.

병사들을 병영에 대기시켜 놓고, 약 삼십 분 가량은 걸은 것 같았다.

도중에 다시 긴토키의 어깨에 올라탈까 하고 슬쩍 올려다 보다가 아까 일도 있고 해서 관뒀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유곽에 도착했다.
내 몸이 태어나기 전 유곽. 내가 알던 모습의 유곽이 아니었다.

이곳은 아직 그리 비싼 유곽은 아니었다.
기예를 보이지 않는 곳은 아니었으나, 기예보단 술과 몸을 파는 곳에 가까웠다.

타카스기와 카츠라는 이미 돈을 지불하고, 기녀를 지명해 방을 골라 잡았다.

긴토키도 곧 골라 잡겠지? ... 나가있어야 하나? 나 애초에 뭐하러 왔지?

"이노우에를 지명하지. 은자 두 냥이면 되겠지?"

"이노우에라니..."

"저번에 지명했던 여자인데."

"저번에... 은발 사무라이께서 지명하신 아이가...... 아! 아야메를 말씀하신 거군요. 기명을 얘기 하셔야지~ 예입, 알겠습니다! 안내해 드리죠. 따라오십시오."

긴토키는 천천히 얍삽해 보이는 주인장을 따라갔다.

나도 잠시 따라가야 고민했지만, 그래도 과거에 있을 때, 한 번 쯤은 아야메를 봐두고 싶어서 이내 긴토키를 따라나섰다.

[뭐... 도중에 나오면 되겠지...]

안내하는 주인장을 따라 걸은지 일 분 조금 안되었을까, 주인장이 갑자기 어느 방문 앞에서 멈췄다.

"이 방?"

"예입!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납죠. 아, 시간을 추가 할 때 쯤에 다시 올라옵죠."

"아니, 그냥 하룻밤을 보내지. 도중에 방해받는 건 싫으니까. 은자 일곱 냥이면 충분하지?"

"어이쿠, 그러시다면야... 좋은 밤 보내십쇼."

은자를 받고 물러서는 주인장의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나는 슬슬 불안해져 긴토키를 올려다봤다.

[... 얘기만 나누는 거 아니었습니까, 긴상?]

긴토키는 말을 거는 나를 지나치고,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이불이 깔끔하게 깔아져 있었고, 한쪽에 술상을 앞에 둔 채 한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긴토키는 그녀 앞에 조용히 앉아 술잔을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술을 따랐다.

"이노우에... 저번에 네가 알려준 이름."

긴토키가 먼저 말을 걸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긴토키... 님이십니까?"

그 덕에 아야메의 얼굴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얼굴보다 훨씬 젊었다. 아직 소녀의 티가 얼굴에 남아있었다.

[못해도... 십대 후반, 아니면... 이십대 초반...]

나는 긴토키에게 그런 취향이 있냐고 빈정거리려다 긴토키 역시 비슷한 나이 대이기에 입을 다물었다.

긴토키는 술잔을 단숨에 털어마시더니 아야메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야메는 그의 예의 없는 행동에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놀란 기색을 지우고 술울 따랐다.

"오늘은 하룻밤을 보내자고 찾아온 게 아냐."

"... 그럼 무슨... "

"사람을 찾으려 하는데,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 얘기 할께요."

긴토키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손으로 이마를 짚어 눈가를 가렸다.

그리고, 떨리고 억눌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찾으려는 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형제같은... 소중한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사라졌어."

"......"

"......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녀석은 자신이 사라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어. 그것도 사라질 날까지도."

"......"

"그 녀석은 끝까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라졌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적에게 협박이라도 받은 거냐며 다그치듯 물었지만, 아니라고만 했어. 거짓말로 보이진 않았지."

나는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긴상... 전...]

긴토키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다시 손을 내렸다. 아까의 일로 확실히 피해가 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대신해 아야메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래. 그 녀석이 자신이 사라질 날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지? 그 녀석은 항상 우리가 유곽에 갔을 때, 혼자 빈 신사에 남아서 우리가 돌아 올 때까지 자지 않고 밤을 새웠어, 아침까지. 내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안심한 얼굴로 잠을 잤지."

"......"

"그 때 깨달아야 했어.. 녀석이 말을 못하는 일이었다면, 내가 깨달아야 했던 일이었어... 그 녀석은 열심히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깨닫지 못한 거였어, 바보같이."

얼굴을 반 쯤 가리고 있는 손 밑으로 물이 흘렀다.
긴토키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인 채, 한 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토해내고 있었다.

그가 안쓰러웠다. 항상 그의 굳센 모습만을 봐왔는데, 그가 무너진 모습을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무심코 그를 껴안으려다 다시 멈칫했다.

이번에도 역시 아야메가 대신해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자책하지 말아요. 방법이 있으시니까, 절 찾아오신 거죠?"

"그래. 단순히 유곽 뿐이었다면 녀석이 사라진 날에 갔었던 유곽에 갔을거야. 하지만 얼마 전에 알게 된 녀석의 이름 때문에 널 찾아 온 거고,"

"... 이름?"

"... 녀석의 이름은 이노우에 카오루. 너랑 성이 같아. 혹시 알고 있는 거라든가 관계라도 있는거야?"

"그런...... 죄송해요... 정말..."

아야메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연신 사과만 거듭했다.

손을 내린 긴토키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이미 알고있는 대답이었지만, 씁쓸함에 고개를 돌렸다.

[무의식 중에 기대라도 한 걸까나...]

그 후 긴토키는 계속해서 추가로 술을 주문했고, 골아떨어질 때까지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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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16 00:16 | 조회 : 2,145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아, 귀신이 생전 강렬했던 기억의 모습이라는 것은 정말 귀신을 본다던 사람을 알고 있는 지인이 얘기해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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