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쇼요 선생님의 죽음.

나는 욱씬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내 손을 유심히 살폈다. 분명히 지장을 쳐냈을 때, 마지막에 손에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긴토키의 옷깃을 잡아챘지만, 여전히 통과해 버렸다.

[제길... 아까처럼 그 느낌을 다시 한 번만 써낼 수 있다면, 글이라도 쓸 텐데...!]

그렇게 내 손을 살피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결국 손을 내렸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긴토키는 지금도 싸우고 있었다.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확실히 천도중은 너무 버거웠다. 긴토키 정도의 실력자가 한 명을 겨우 상대하는 격이었고, 덕분에 우리 쪽이 잔뜩 죽어나가는 추세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입김이나, 어깨에 올라타는 식으로 적의 순간적인 당황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보조를 해도 그건 잠깐 뿐이라,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할 수 있는 이 역시 긴토키 정도의 실력자들 뿐이었다.

[카츠라!]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카츠라가 녀석에게 당했고, 사로잡혔다.

[죽이는 게 아니라, 사로잡았어? 인질극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의아함도 잠깐, 전투는 계속 흘러갔고, 다음은 타카스기였다.

[타카스기... 도?]

그렇게 한 명씩 사로잡혀갔다.

[그럼... 다음은...]

나는 급하게 긴토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긴토키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불아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은 긴토키였다. 카츠라와 타카스기도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긴토키의 엄호가 우선이었다.

나는 긴토키 옆에 바싹 붙었다.

둘은 싸우며, 얘기를 나누었다.

눈에 띄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씩 긴토키기 밀리는 게 보였다.

"... 카츠라랑 타카스기는 놈들에게 끌려간 건가? 무슨 속셈인거지? 인질인가?"

"비슷하지. 어때, 백야차. 네 녀석도 이만 순순히..."

"웃기지마! 그 녀석들이라면 그리 순순히 잡혔을 리 없고, 잡혔더라도 네 놈들 측에서 감당이 안 될껄?"

[내가 어떻게든 잠깐이라도 틈을......]

위태로운 긴토키를 보며 잠깐이라도 틈을 만들어야겠다고 궁리할 즈음, 녀석이 입을 열었다.

"네 녀석들의 스승을 만나고 싶지 않은 건가?"

"...... 뭐?"

[... 지금 저 녀석의 입에서 스승이라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녀석이 충격을 먹은 긴토키를 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의 스승을 만나고 싶지 않은 거냐고 물었다."

"......!"

[쇼요... 선생님......]

"얌전히 투항해라. 백야차, 사카타 긴토키."

"......"

긴토키가 멍하니 그를 보다가 들고있던 칼을 떨군다.
나는 그런 긴토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가슴이 내려 앉는 걸 느꼈다.

[... 검을 놓지마, 긴토키.]

"......"

이건, 함정이다. 물러설 수 없는 미끼로 혹하게 만들어 모두 처리하려는 함정. 머리속이 새하햬졌다.

[설사 쇼요 선생님이 계신다 한들, 우리 모두를 얌전히 풀어 줄 것 같습니까? 분명 피를 보게 될 거란 말입니다!]

나는 자꾸만 통과하는 긴토키의 옷깃을 애써 붙잡으려 헛손질을 해대며 악을 썼다.

긴토키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고, 천도중은 그런 긴토키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했다.

[긴상... 제발....!]

내 목소리는 끝까지 닿질 않았다.
내 간절함이 부족한 걸까.
이 정도로는 안된다는 걸까.

... 끝까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 * *



긴토키는 묶이지 않은 채로 어느 한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떨리는 몸을 이끌며 긴토키의 뒤를 따랐다.
아직,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도착한 장소에는 천도중 무리들이 잔뜩 에워싸고 있었는데, 긴토키가 가까이 오자 길을 터 주었다.

타카스기와 카츠라 역시 묶인 채로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 바로 앞에는...... 그렇게 애타게 찿던 쇼요 선생님이 무릎이 꿇려진 채로 묶여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 쇼요 선생님."

긴토키가 선생님을 부르자, 천천히 고개만 돌려 긴토키를 바라봤다.

"긴토키..."

한참을 눈을 맞춘 채 서로를 바라보다가, 쇼요 선생님이 먼저 살풋 웃었다.

"결국, 긴토키도 잡혀 왔군요?... 그런데, 카오루는 없는 건가요?"

"그 녀석은 여기에 없어.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자리에서 저항한 흔적 외에는 아무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었어, 말 그대로 사라진 것 처럼."

"... 그런가요..."

나는 이때까지 긴토키의 등 뒤에 서 있었다가 앞으로 나왔다. 비록 선생님이 보지 못 하더라도, 나 만큼은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앞으로 나오면서, 내 모습이 완연히 드러났다.

나는 이런 순간까지 얘기를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 씁쓸해져, 조금 슬픈 눈으로 쇼요 선생님을 바라봤다.
그 때였다.

[...어?......]

"......!"

선생님과 내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우연인가......?

계속 마주보고 있다간 또 쓸데 없는 기대감이 생길 것 같아, 고개를 떨구었다.

"카오루?"

어?

순간 잘못 들은 건가 하고, 번쩍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여전히 똑바로 내 눈을 마주보고 계셨다.

[... 제가, 보이십니까?]

선생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저와의 약속을 위해서... 계속 아이들 곁에 머무르고 있었군요, 카오루."

그런 선생님에게 나 대신 긴토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카오루는 이제 여기 없어. 가버렸다고. 말없이 사라졌어."

"......"

쇼요는 그저 미소지으며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긴토키는 그를 잠시 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천도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지금 뭐하자는 짓이지?"

"스승과 동기. 둘 중에 하나를 골라라."

"... 뭐?"

"이 녀석들을 살리고 싶다면 스승의 목을 치라는 소리다."

"......!"

타카스기와 카츠라가 바닥에 엎어진 채, 긴토키를 올려다본다.

카츠라가 거의 애원 하듯이 말한다.

"긴토키, 그럴 필요 없네. 차라리 모두..."

"... 모두 다 죽자고?"

"......"

쇼요 선생님은 우리를 죽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리곤 나지막히 말했다.

"긴토키... 모두를 부탁합니다."

"......"

그 말과 동시에 긴토키가 검을 빼들어, 천천히 선생님에게 걸어간다.

긴토키의 눈빛은 각오를 다졌는지, 매정해 보일 정도로 단호한 눈빛이었다.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긴토키의 손으로 쇼요 선생님을 죽게 만들어선 안되었다. 쇼요 선생님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 긴토키에겐 아버지 이상이었다.

그리고 쇼요 선생님은 분명히 날 봐주었다.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물어봐야할 게 산더미였다.

아직 보내선 안되었다.
적어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긴토키는 점점 가까이 선생님께 다가갔다.

"그만둬! 긴토키! 그만두라고오!"

타카스기가 광기어린 표정으로 절규한다.
나 역시 다가가 쇼요 선생님 앞에 서서 긴토키를 가로 막았다.

[긴상, 제발 다른 방법을... 선생님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다같이...]

고개를 돌리니, 쇼요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빙긋 웃는다.

환한 웃음인데도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그 웃는 얼굴이, 마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너도 알고있지 않느냐고 묻는 듯 한 얼굴처럼 보였다.

선생님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 우리를 대신에 잡혀갔을 때 부터.

나는 선냉님의 의지에 타협하려는 나에게 고개를 도리질 치며 다시 긴토키를 바라봤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긴상, 제발 검 내려놓으십시오. 아직, 선생님과 해야할 얘기가... 선생님은 절 볼 수 있단 말입니다...!]

긴토키는 검을 번쩍 들었다. 눈에는 무심함이 가득했고, 그 눈 조차도 날 향하고 있지 않았다.

긴토키는 이 상황에서도 날 보지 못한다. 원망스러웠다. 날 보지못하는 긴토키가, 이 상황이, 무력한 내 자신이.

[아.....!]

"긴토키! 하지마, 하지 말라고오! 긴토키이이!"

카츠라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고, 타카스기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토했다.

칼날이 햇빛에 반짝이며 춤을 췄고, 내 몸을 갈랐다.
정확히는 내 몸을 통과했다.

붉은 피가 흩날렸다.
바닥에 붉은 꽃이 환하게 번져간다.

그 순간이 너무 고요하고 깔끔해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선생님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꿇은 채 당당하게 웃음 짓던, 전혀 위축감도 느끼질 못했던, 그 몸이 밧줄에 묶인 채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마치 환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쇼요 선생님이 무슨 꿈이라도 꿨냐는 듯 물어올 것만 같았다.

[그래, 전부 꿈이야. 과거로 온 것 자체가 꿈인거야. 일어나면 난 해결사에 있는 거야. 이건 환상이니까... 곧ㅡ]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점점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가는 흙을 만졌다.

축축하고, 따뜻했다.

아니, 그렇게 느꼈을 뿐, 실상 아무런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그러니까 이건 전부 허상...]

나는 고개를 숙여 무릎을 꿇은 바로 밑을 바라봤다.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웃고있었다.
만족한 듯이 웃고 계셨다.

나에겐 그 표정이 마치 고통스러운 얼굴은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마지막 의지로 느껴졌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이제 편히 쉬세요, 애쓰지 마세요... 선생님, 선생님... 소요 선생님.]

나는 그런 선생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어루만지는 손이 덜덜 떨렸다.

눈가가 흐릿해지고 볼 위로 물이 흘러내렸다.
가슴 어림깨가 묵직해져 가슴을 그러쥐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이거... 전부 거짓말.... 거짓말이야아아아! 긴토키이이이!]

나는 벌떡 일어나, 긴토키를 죽일 듯한 기세로 으르렁대며 돌아보았다.

[......!]

하지만 곧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긴토키는 웃고 있었다.

모든 걸 다 잃은, 허탈한 자의 웃음이었다.
동시에, 울고있었다.

유곽에서 나에 대해 아무런 소식을 얻지 못하고, 체념해야 했을 때 처럼의 억눌린 울음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쇼요 선생님을 만났고,
이 중에서 누구보다 가장 쇼요 선생님을 따랐고,
이 중에서 가장 쇼요 선생님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

그런데 그 쇼요 선생님을 결국 자신의 손으로 끝내야 했다.

[긴상.]

나는 긴토키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어 눈물을 닦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통과해버렸다.
긴토키가 나로 인한 한기에 몸을 움츠린다.

나는 다리가 풀려 주저 앉았다.

"카오루... 난 아무래도 둘 다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선생님도, 동기도. 둘 다 지키려다 둘 다 잃었어."

나는 긴토키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아니, 해준다 한들 닿지도 못할거다.

오늘, 이 세계에서 나는 방관자일 뿐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
.
.
.

며칠 뒤, 깔끔히 정리된 스승의 시신을 보며 셋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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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20 21:56 | 조회 : 2,291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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