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시끄럽고 말 많은 놈.

"이야... 그건 그렇고, 그 백야차의 호위무사라 불리는 하얀 검귀가 이런 어린 아이였다니. 뭐, 소문 상으로는 대강 떠돌고 있었지만 과장된 헛소문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등장부터 시끄러운 녀석은 날 이리저리 둘러보며 신기한 듯 관찰했다.

"어린 아이 아닙니다."

"모든 어린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발언은 삼가주시죠, 긴상?"

사카모토... 라는 사람에게 방금 회수한 신발을 웃으며 들어올리자 긴토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침 범벅이 된 신발을 사카모토라는 사람에게 대강 닦고, 신발을 신으며 말을 이었다.

"이래보여도 저기 흰 머리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저기 성질 더러워 보이는 인간이랑 머리를 질끈 묶은 장발과 동기입니다."

"흰 머리..."

"성질 더러워 보이는..."

"머리 질끈 묶은 장발..."

셋이서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아니, 타카스기는 조금 충격받은 얼굴인가.

"호오~ 다들 별명이 있구만 그래~ 저기, 난? 나는?"

"시끄럽고 수상한 놈."

"에에에엑? 수상한 놈은 아니지 않나?"

"저희들은 전부 동기라서 말입니다. 갑자기 들어온 인간은 수상할 수밖에."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라구... 아, 근데 나이가 많다고 했지?"

"뭐... 적어도 저기 있는 흰머리보다 나이가 많달까..."

과거로 왔을 때, 열 살의 모습으로 대강 대여섯 살 정도 된 긴토키를 만났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그거 병 아닌감?"

당황해서 병이 아니라 말할려는 찰나 셋이 빠르게 선수를 쳤다.

"정말 병이었던건가"

"아프다는 건가?"

"치료는 가능한 건가?"

급격한 관심을 보이는 셋에 수상... 사카모토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그 왜소증 말야. 간혹 나타나는 희귀병같은... 목숨에는 지장 없지만 조금 불편한..."

"아ㄴ... "

왜소증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금 사카모토가 말한 왜소증이 아니라면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왜소증이라 알고 있는게 나을 지도 몰랐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소증인가 보구만~ 와하하하핫!"

"그게 웃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다시 올라가는 신발에 이번에는 그가 먼저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무심코 오른팔을 드는 바람에 얼굴을 찌푸리며 팔을 내렸다. 겨우 피가 멈춘 듯 한데, 꼬매는 건 할 수가 없어서 살이 붙기까지 함부로 움직이면 안될 듯 했다.

어쩌면 다음 전투에선 빠져야 할 지도.

"그럼 영원히 저 키로 살아가야 하는 병인 건가?"

타카스기가 동정의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긴토키나 카츠라면 몰라도 넌 기분 나빠.
아냐, 긴토키도 의외로 나빠질지도.

"글쎄~ 나도 그다지 아는게 없어서. 단지 상인 집안이라 떠도는 소문을 잘 알 뿐이지. 아마도 치료 불가능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까나?"

멋쩍은듯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 없는 투로 그가 대답했다. 그러자 셋은 왠지 측은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이를 갈며 한 명 한 명 노려보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사는데 지장 없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리고 내일 또 전선에 나가려면 푹 쉬어둬야 하니까, 이만 조용히들 해주시죠?"

"어이, 그 몸으로 나가려고? 그냥 내일은 본거지를 지키는 건 어때? 빈 신사지만 뺏기면 보급이 어려워지니까."

"그건 다른 사람의 역할이잖습니까. 제 역은 전선에 나가 싸우는 것. 가뜩이나 전투선이 늘어서 부상자가 늘었습니다. 더 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긴상이나 제가 나서야 한다는 것 쯤은 긴상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긴토키랑 말씨름을 하고 있자니 카츠라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자네 역시 부상자가 아닌가."

"......"

순간 할 말을 잃어 콧잔등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뚱한 말투로 다시 제안했다.

"... 그나마 나은 후방에서 서겠습니다. 이것만큼은 양보 못하겠군요."

"그럼 나도 후..."

"긴상은 전방에 서십시오. 전투선은 누가 부숩니까."

내가 급하게 긴토키의 말을 잘라먹자, 일그러진 얼굴로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사카모토의 말에 다시 한 번 가로막혔다.

"그럼 내가 후방에서 카오루랑 같이 전선에 서지 뭐. 그러니까 그렇게 열 올리며 싸우지들 말어~"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마시죠. 수상하고 시끄러운 놈."

"에에~ 너무하잖어~ 적어도 '수상한' 은 빼주지 그래? 그리고 이름밖에 안 알려줬잖아~".

"이름도 가르쳐 드린 기억은 없습니다만."

"에이,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나도 자기 소개 했잖아. 성은 뭔데?"

"저쪽부터 카츠라 코타로, 타카스기 신스케, 사카타 긴토키."

"그래서一 넌?"

"... 카오루."

"에... 끝? 성은?"

"없습니다."

주변에선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고, 사카모토는 당황한 빛은 커녕 뻔뻔하게...

"그래? 뭐, 성 따위 별 거 있나~ 이 참에 새로 짓는 건 어때? 뭣하면 내가 지어줄까?"

이름을 지어주겠단다.
나는 어쩐지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화에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며 고쳐 말했다.

"...... 성이 있기는 있습니다."

"뭐?!"

"성이 있었나?"

"성이 있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군."

사카모토보다 쇼요의 제자 셋이 더 흥분했다.

"그런데 사정이 있어서 안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복잡해지니까."

"사정? 얘기하기 곤란한건감?"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 사정은 말고 그 성이란 것도 얘기해줄 수 없나? 역적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은 말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사정이라는 말에 관심이 수그러졌는데, 사카모토가 다시 질문하는 바람에 다시 관심이 쏠렸다.

셋에게는 '사정' 이라는 말만 꺼내도 서로 질문을 하지 않도록 길들여놨었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자 셋도 더 이상 묻질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카모토라는 녀석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려도 자꾸만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역시 시끄럽고 수상한 놈.

그냥 차라리 역적이라 하고 입을 막아버릴까. 양이지사가 역적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 또 질문이 길어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긴토키의 성을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
아! 아야메!

"역적은 아니고, 이노우에... 카오루 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는 부르지 마십시오. 사정은 됐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도 마십시오."

과거로 건너오기 전 잠시 사카타 카오루란 이름을 썼었는데 그 덕분인지 이노우에 카오루란 이름을 잊고 있었다.

어쩐지 그리워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불리고 싶진 않았다.

가슴에 묻었으니까.

긴토키를 붙잡기로 했으니까.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잊고 싶은 기억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이노우에가 아니다.


* * *


나와 사카모토를 제외하고 모두 전방에 나가 싸웠다.

후방은 전방만큼 치열하진 않지만 중요한 부분이긴 했다. 후방이 막혀버리면 물자를 지원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괜찮은 실력자를 여럿 배치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쓸데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후우......"

"지친 건감?"

"그냥 좀... "

"몸 상태는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게 아녀~ 확실히 말해줘야 대처를 하니까 말여."

"그냥 좀 어깨가 쑤셔서 말입니다. 말할 시간은 주셔야 않겠습니까. 그리고, 상인 집안이라면서 뭡니까, 이 상황은."

사카모토가 끼어들지 않도록 지친 와중에도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한 상황은... 사카모토가 거의 혼자서 적들을 싹쓸이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정도면 긴토키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와하하하핫! 내가 한 실력하지~"

"역시 수상한 놈."

"에엑?!"

"상인 집안이라면서 긴토키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수상한 놈이라는 겁니다. 이 정도의 실력으로 어떻게 감추고 상인을 한답니까?"

"아니... 딱히 감춘 건 아닌데..."

시끄럽게 떠들다가 적을 마주친 순간에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적들을 싹쓸이 하고 있다.
어깨를 다쳐 크게 휘두르지 못하는 내 몫까지 확실히 베어넘기며 내 상태까지 살피고 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한 놈."

들리지 않게끔 혼자 중얼거리면서 적을 베고, 검을 찔러 넣었다.

푹.

어깨가 평소보다 힘이 덜 들어가서 평소보다 힘을 더 실어서 적을 찔렀다. 확실히 힘이 더 들어가니 체력이 두배로 방전된다.

"......!"

적을 찌른 검이 한순간 빠지지 않았다.

잠시 몇 초를 허비한 순간, 옆과 뒤로 적이 공격해 들어왔다.

옆에서 들어오는 공격은 팔을 하나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비껴서 팔을 찌르게 했고, 뒤에서 오는 공격은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옆구리만을 스치게 했다.

찔러 넣었던 검이 빠지자 마자 옆구리를 베이게 한 녀석을 먼저 베었다.

그리고 팔을 찌르게 한 녀석을 베려는 순간 녀석이 팔에 꽂힌 칼을 뽑는 바람에 흔들려서 한번에 끝내지 못했다.

"아... !"

다음 순간 내가 베일 것을 예상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고통이 뒤따를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멀쩡함에 정면을 마주하자 그가 앞에 서 있었다.

턱, 촤악.

그가 녀석의 공격을 막고,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내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싱긋 웃는다. 그의 웃음에 당황해 버벅거렸다.

"부, 분명 조금 전에는 저기 멀리서..."

"아아, 위험해 보여서 날라왔지~"

"확실히... 배신할 생각은 없나 보내요. 그냥 내버려 뒀으면 전 완벽하게 목이 뎅겅했을 테니."

"오! 그럼 수상한 놈이라는 별명은 사라지는 건감?"

"아니지, 어쩌면 신뢰를 사게 한 다음에 배신할 생각이려는 걸지도..."

내가 심각하게 중얼거리자 그가 내 중얼거림을 듣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말야. 설령 동료들에게 버림 받을지 언정 내 손으로 동료들을 버리지 않아."

나는 답지 않은 그의 진지함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진지함도 잠시.

"그러니까 수상한 놈은 좀 빼주면 안되려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럼 시끄럽고 말 많은 놈으로 하죠."

"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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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10 01:38 | 조회 : 2,057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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