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쪽지를 남기다.

그렇게 또 한차례 전투가 끝났다.

지난번의 전투처럼 꽤나 다쳤다. 미처 아물지 못했던 상처들은 터지기도 했다.

지혈은 대충했지만 피를 꽤 흘려서 휘청거리는 바람에 사카모토가 날 업게 되었다.

부축하기에는 서로 덩치가 비슷하지 않아서 그가 불편하다기에 그냥 걷겠다는 나에게 거의 억지를 부리며 날 들쳐 업었다.

의외로 사카모토는 거의 상처가 없었다.
아니, 그의 실력이라면 의외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빈 신사에는 금방 도착했다.

사카모토가 날 업고 왔기에 제일 늦을 줄 알았지만, 역시나 전방에 있는 녀석들이 꽤나 고전하고 있는지 우리 쪽이 오히려 제일 먼저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빈 신사에 사카모토와 나만 둘이서 있으려니 말을 걸기도 어색해서 그냥 눈을 감았다.
녀석들이 오기 전까지 조금 잘 생각이었다.

"카오루."

"......"

아니, 도대체 이 인간은 입을 가만히 둘 순 없는거야? 피곤하지도 않은가?

"자남?"

"... 안 자니까, 말하시죠."

"내가 전투보단 자원 조달 하는 것에 더 비중이 높다는 건 알간?"

"...... 제가 보기엔 전투, 자원 조달 둘 다 비중이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뭐, 그렇다고 해 두죠."

그러자 와하하하핫! 그런가?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그였다. 머리가 울릴 정도의 시끄러움에 이마가 살풋 찌푸려졌지만, 그에게 진 빚이 있기에 한 마디 하려다가 꾹 다물었다.

"그래서 하고자하는 말은 뭡니까."

"응?"

"더 할 말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아아, 그게 말이야. 원래는 긴토키에게 먼저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카오루. 너 나랑 같이 갈 생각 없는감?"

"...... 네?"

뜬금없이 같이 떠나자는 말에 순간 잘못들은 건 아닌지 감고 있던 눈을 번쩍뜨며 반문했다.

"너한테는 좁은 지구보단 우주가 어울려. 그리고 이미 이 전쟁은 글렀고. 아마 승산이 없다는 게 정답이겠지. 나는 말야, 우주로 나가 천인들을 설득하고 교류하며 상인 일을 해볼거야. 긴토키한테도 물어보겠지만 일단 너한테 먼저 물어보는 거야. 나랑 같이 우주에 나갈 생각은 없는감?"

"전 상인이 아닙니다."

"상인 일을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날 도와달라는 것 뿐인데."

"긴토키가 가지 않는다면, 저 역시 가지 않습니다."

"아직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긴토키가 간다면 가는 건감?"

"물론. 하지만 제가 장담컨데, 긴토키가 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저희에게 이 전쟁은 승산이 없다고 포기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전쟁 따위, 나라 따위 어찌되든 상관 없습니다. 저흰 저희들만에 무사도가 있으니까. 애초에 저희에게 소중한 이를 구하기 위해 일어선 겁니다."

"... 이거이거 형식적으로 물어는 보겠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겠군."

흔하지 않게 그가 같이 가자고 진지하게 말했지만,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기에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를 바라봤다.

조만간 그와 헤어질 것 같은 느낌. 아니, 아무래도 확실히 헤어질 듯 했다.

그가 들리지 않게끔 혼자서 검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긴토키의 근처에서 볼 수 없었구나. 미래에서도 계속 우주에서 상인 일을 하고 있는 건가? 돌아가게 된다면... 물어봐야지."


* * *


"어디가는 겁니까, 긴상. 그리고 그 외 세 분들."

왠지 나 몰래 빠져나가는 그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일침에 모두 뜨끔한 얼굴로 날 돌아봤다.

"와하하하핫, 이거 들켜버렸네~"

"......"

"아니~ 우리끼리 친목을 다지자~ 고 말야... 그러니까 자던 잠 더 자는게 어때?"

"아, 저도 친목을 아주, 심히, 격렬히, 다지고 싶어졌습니다만, 긴상. 어떤가요? 남자 다섯이서 친목을 다지는 건-"

그런 식은땀을 삐질거리며 그런 말이 먹힐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것들아.
밤놀이라도 가는 건가...

"유곽에 갈 거다."

퍽!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 말하면 어떡하나, 타카스기!"

"뭐, 어때. 카오루도 우리랑 똑같은 나이 아닌가. 알 만한 건 다 알고, 원래라면 같이 가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만?"

애초에 유곽에 간다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뭐, 전쟁터니까 여자가 그리운 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만...

"...... 유곽엔 저 몰래 언제부터 가게 됐습니까?"

"그게 말야, 넌 아무래도 들여보내 주는 게.... 응? 같이 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딱히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것보다 대답은?"

"... 몇 달 전부터."

"하아......"

생각이 복잡해져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몰래 다녀와서 화난거냐?"

"네? 아뇨. 아니, 네. 화났습니다. 다음부턴 데려가지 않더라도 확실히 말해 주세요."

"... 그래."

"그럼, 다녀오십시오. 대신 너무 늦진 마십시오."

내 말에 다들 침울해졌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신나서 뛰어가듯이 걸어가는 넷의 등 뒤를 보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넌 몸은 이제 괜찮냐? 누워서 쉬는 게 좋을 텐데. 섬세함이 떨어져 나갔다고 들었지."

"와하하하하! 걱정마! 섬세함이라면 탯줄과 함깨 진작 떨어져 나갔으니까."

"알면 닥치고나 있을래? 모두가 너처럼 일년 내내 발정기가 아니거든? 사정이란게 있거든?"

"와하하하! 하긴 발정기 맞지! 왜, 지난번에도 유곽에 갔을 때, 너랑 타카스기가 같은 여자를 지명한 적이 있었지?"

도대체 어째서 저들은 가는 길에도 저렇게 시끄러운걸까... 그보다 사카모토는 동기가 아니라서 어울리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나보다.

...과연, 그런 곳으로 같이 가는 것이 남자들끼리의 친목 다지기라는 건가.

"아마 여자 쪽에서 타카스기가 좋다느니 해서 한참 다퉜지? 혹시 지금도 다투는 게 그때 이후로 계속인 거 아냐?"

쉬익!

"위험하네~ 하마터면 유탄이~"

이런 시간에, 이런 장소에 유탄이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확실하게 사카모토의 입을 입막음 시켰다.
아니, 그건 무리인가.

"아,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까 그 여자는 하나도 재미없었다고 그랬나? 타카스기는 입 꾹 다문 채 눈에 핏발 세우며 술만 퍼 마셔서 따분해 죽는 줄 알았대."

쉬익!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칼이 날라갔다.

"야쿠르트 사왔다. 닥치고 마셔."

"히익! 네녀석들 뭐하는거야!"

"넌 빠져."
"넌 닥쳐."

아니 어떡하면 유곽에 가려는 중에 저렇게 싸움이 생길 수가 있는 건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도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즈라, 이거 안되겠는걸. 장기간에 걸친 교착상태로 다들 스트레스 폭발 직전이야."

"아니, 폭발시킨 건 너고!!"

넷이 어울리는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났다.
정말...... 단순한 인간들이야. 보고 있으면 이쪽도 단순하게 즐거워진달까.

점점 그들의 등이 멀어져갔지만,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
.
.
.

모두들 유곽으로 가버리고 텅 빈 신사에 나 혼자 남았다.

쇼요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받았었던 책을 꺼내들었다. 긴토키도, 타카스기도, 카츠라도 받았던 책이다.

소중하게 품에 넣고 있었다.

문득, 내가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이 책은 어떻게 될까 고민이 되었다. 아마 과거에서 받은 책이니 가지고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까 유곽에 간다고 했을 때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마, 아야메를 만나서 같이 자는 순간 난 사라지겠지.

어떻게 사라질 지는 모르겠다.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번에 사라져야 했을 수도 있고, 이번에 사라질 수도 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번에 사라질 지도 모른다.

"... 갈 거면 말 하고 가. 갑자기 사라지는 건 싫어... 라고 했었지."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흘렀는데도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말도 잘 배우지 못해 더듬거리며 한 말이었다. 잊을 리가 없었다.

나는 울컥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종이와 붓을 꺼냈다.

그리고 먹을 갈았다.

스윽, 슥.

차분하게 먹을 갈자 울컥했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먹이 다 갈아지자, 붓을 천천히 적셨다.
새까맣게.
흰 종이 위에 붓을 올렸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써내려갔다.

[저는 미래에서...]

곧바로 꾸겨서 화로에 처넣었다.

[긴상, 절 기억해 주...]

다시 꾸겨서 불쏘시게로 만들었다.

[제가 보이지 않는다면 저는...]

역시 꾸겨서 잿더미로 만들었다.

... 이러길 몇 십분간 반복하다 결국 한 마디밖에 못 적었다.

[기다려 주세요.]

간단하지만 확실했다.

한참 글귀를 바라보다가 종이를 고이 접었다.
그리고 쇼요에게 받았던 책 사이에 껴 두었다.

내가 사라졌을 때 제대로 발견했으면 좋겠는데...

"긴상은... 제가 사라지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얼마 전에도 내게 고맙다고 그랬었다. 쇼요만큼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고 그랬었다.

.....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 저도 아직은 헤어지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적어도 쇼요 선생님을 구하고, 모두가 웃는 모습까지 보고 헤어지고 싶단 말입니다. 제가 어떡해야합니까? 긴상, 저 어떡합니까? 갑자기 사라져서 헤어지게 되는 건 저도 싫단 말입니다."

아무리 묻고 외쳐도 텅 빈 신사에선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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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12 00:44 | 조회 : 1,949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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