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누구냐 넌.

약속 장소는 텅 빈 절이었다.

근방에서 전쟁이 터지자 살던 이들은 피난을 간 것 같았다.

나는 텅 빈 절 안, 벽에 기대 앉았다.

머리 속에선 그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 자를 죽이고 싶었다.

내가 느꼈던, 내 어미가 느꼈던, 내 가족들이 느꼈던, 겪었던 슬픔과 고통을 그에게도 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버렸다.

나에게서의 과거는 그에게 미래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명분 삼아 그를 죽이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그를 지금 죽인다면 아야메가 살 수 있다. 유곽의 식구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동료를 아무 이유 없이 죽인 자가 되어버린다.

아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사신이며, 살인자며, 시체 먹는 악귀의 미친개라는 둥 얼마든지 그런 식으로 불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좀 더 꺼려지는 부분은, 이 전쟁에서 그 유이토라는 녀석이 '활약을 하냐' 였다.

일종의 나비 효과. 작은 효과라도 무시 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는 지금은 우리 편이었다. 그가 얼마만큼의 활동을 할지는 모르겠다. 긴토키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을 보면 크게 활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작은 활약이 긴토키의 목숨을 구할지, 아군의 목숨들을 구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점을 떠올리고 나선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다.

아마 긴토키를 만나기 전 사신이었다면, 앞 뒤 재지 않고 그의 목을 따버렸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쇼요도, 긴토키도, 긴토키의 동지들도 모두 소중했다.
아야메가 소중한 만큼 그들 모두 소중해져버렸다.

끼익.

방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긴토키였다.

"어이어이, 뭐야. 진짜 심각한 고민인거냐?"

"......"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자, 긴토키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내 옆에 앉아 벽에 기댔다.

"널 알아 온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무것도 얘길 해주지 않으니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잖아.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라는 긴토키의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움찔했다.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네가 정말 나랑 비슷한 나이대인지도 모르겠고. 그... 나이를 먹지 않잖아? 넌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부터 늘 어른스러웠으니까. 어릴 땐 그런 면을 동경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까 너무 큰 짐을 지워준 것 같기도 하고."

"...... 그런가요."

"뭐, 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도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거야.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니까."

"긴상. 헛소리 좀 하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소중한 사람을 포기하면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을 포기하면, 아야메가 살 수도 있어.

"... 살릴 수도 있다라... 가능성이 있다는 거냐?"

사람의 죽음이 정해진 운명, 필연같은 게 아니라 비껴갈 수 있는 거라면 가능했다.

유이토가 죽는다면 아야메는 산다.

"100퍼센트는 아닙니다."

"포기한다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데?"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가볍게 다치거나 심하면 죽거나 어쩌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지도."

"나라면 그 어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죽은 사람보다 남은 소중한 한 명을 붙잡겠어. 랄까... 애초에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헛소리가 사실이 된다는 전제 하에 말이야."

"...... 그렇군요. 죽은 자는 보내야겠죠, 이만. 개인적인 증오는 잠시 접어둬야겠군요. 그게... 맞는 거겠죠?"

미안, 긴토키... 그러면 안되는데.

주륵.

"그게 무슨... 너 우는 거냐?"

"됐습니다. 이제 고민은 끝났으니까. 새로 온 동료에게 인사부터 해야겠습니다. 아니, 초면에 살기를 뿌려서... 사과부터 해야하나."

"정말 고민은 끝난거지?"

"...... 네. 이만 나가죠. 긴상."

"너 말야, 울고 싶을 땐 제대로 울라고. 묻는 게 곤란하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저 앉아 울기보단 앞으로 나아가야죠. 선생님을 구해야하니까. 우는 건 그 다음입니다."

긴토키를 제대로 마주하기가 힘들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나는, 긴토키와 아야메의 목숨을 저울질 했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음에도-

"넌... 정말이지, 고맙다. 전부터 계속 말하고 싶었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게 쇼요 선생님이었다면, 넌 그걸 실천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사람이야. 누구보다 옆에서 지금까지 날 지켜봐줬으니까."

긴토키는 한참을 바라보다 낯간지러운 말과 동시에 갑자기 껴안았다.

난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데...

"... 낯간지럽게 무슨 짓입니까."

잠시 바둥대다가 조용히 마주 안았다. 역시 단순한 힘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긴상, 근데 그거 아십니까? 제가 나이가 더 많습니다?"

"시끄러."


* * *


우리는 점점 수가 불어났다.

나와 긴토키, 타카스기의 귀병대, 카츠라의 양이지사 뿐만 아니라 쇼요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거기다 양이지사가 되겠다는 무사들도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수가 늘고 또 늘었다.

동료가 는다는 것은 그만큼 전력이 높아진다는 것.

천인과 손을 잡은 막부가 점점 불어나는 세력에 가만히 있을 것 같진 않다.

전력이 늘 때마다 동료들이 늘 때마다 안심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막부와 천인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대응해 올지 예측하기 힘들어서 불안했다.

촤악!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긴토키가 내 배후의 적을 처리했다.

"전쟁터에서 딴 생각하지마!"

"죄송합니다. 일단 이번 전투부터 끝내야겠죠. 평소처럼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긴상!"

"아아, 죽지마라!"

"긴상이야말로 죽지마십시오."

언제나처럼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검을 휘둘렀다. 긴토키를알아온지 어언 십 년이다. 서로 손발이 맞는 사람은 우리 이상으로 찾기는 힘들었다.

처음 만났던 곳도 전쟁터.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각.

전쟁터에 있을 때 만큼은 죄책감이 지워졌다. 자신이 살인마라는 것도 지워진다. 본능적으로 살기위해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나면 확실히 자각하고 속죄하며 살겠지.

긴토키가 해결사를 운영하는 것도 이런 피 튀기는 전투에서 벗어나기 위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긴토키는 누구보다 강한 하얀 야차, 백야차. 나는 그를 호위하는 검에 미친 하얀 검귀, 백검귀.

그게 지금 세간에서 불리고 있는 별명이다.

어째서 내가 호위 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로 옆에서 붙어다니는 건 사실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손발이 가장 잘 맞으니까.

"아직 전투가 끝날 기미는 안보입니다, 긴상!"

"그러게 말이다. 천인 놈들... 쓸데없이 체력만 좋아선."

"상처가 갈수록 늘어가는데 이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어떻게든 끝내야지, 우리 승리로. 그래야 구할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시대의 전투는 하루 이상 끌지 않는다. 하루가 끝날 무렵 서로 물러나 쉰다. 그리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밤을 보내면 그 다음날 또 무장하고 임전 태세에 들어간다.

당연하게도 한 번에 끝날 핵같은 것도 없고, 총이나 대포도 그리 많지는 않은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게 이 시대의 전투 방식.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력이 중요하다.

서걱.

살 베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동시에 오른쪽 어깨 부근이 데인 듯 후끈해진다. 다행히, 베일 때 자각한 덕분에 뒤로 물러나느라 심각한 상처는 아닌 듯 했지만, 그래도 꽤 깊게 베인 듯 했다.

"카오루! 괜찮냐!"

"괜찮습니다! 신경쓰지말고 싸우십시오!"

긴토키는 고전 중이다. 적들은 아직 물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지금 당장 제대로 치료하기는 글렀다.

대충 옷가지를 부욱 찢어 임시방편으로 지혈을 했다.
조금 움직이기 불편했지만,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다시 검을 들었다.

지금 검을 놓는 순간 발 밑에 널린 시체가 될 게 뻔했다.

"긴상! 아무래도 이 상태론 방해가 될 듯 하니, 후방으로 빠지겠습니다!"

"어이, 심각한 부상이냐! 해가 저물어가니 곧 물러날 듯 싶은데!"

"그럼 그냥 남겠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옷가지를 한 번 더 찢었다. 오른 팔에 힘이 크게 들어가지 않는다. 이러다간 검을 놓칠 것만 같아서 손잡이와 손을 천으로 놓치지 않도록 이어 감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고전하고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수가 많이 늘었지만 그만큼 많이 죽고 있다.

일개 인원으로 맞붙는다면 서로 동등하겠지만 막부와 손잡은 천인에게는 우주선... 그들의 전투선이 있었다.

전투선과 맞먹는 긴토키 정도 되는 실력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곳을 살피니 다카하시 유이토... 그도 보였다. 그는 착실하게 우리 편으로서 적을 처단해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저 정도의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변해버린걸까.

아니다... 어쩌면 급작스럽게 전쟁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평화로운 시대로 변해버린 세상 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 탓으로 돌리더라도 곧 일어날 그 사건에 대해서 그의 죄가 사라지지 않기에 내가 그를 용서할 일은 없을 거다.

단지, 긴토키를 보며 참아낼 뿐. 복수, 개인적인 증오는 접어 뒀을 뿐.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내가 복수를 성공시킬 일은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겠지.

바뀌지 않은 과거는 그대로 내가 아는 미래로 흘러갈테니까.

"카오루! 한 눈팔지 말라니까!"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저희 너무 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 어쩔 수 없잖아!"

달리 더 나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긴토키의 마지막 말을 이상으로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긴토키의 말대로 지금은 눈 앞에 적을 베는 것에 신경을 기울여야 할 때였다.

잡념도 지워버리고 집중하려는 찰나, 한 쪽이 매우 시끄러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힐끗 쳐다보니 밀리고 있던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대강 살펴보니 긴토키 정도의 실력자가 나타난 것 같았다.

"또 증원인가...?"

하지만 곧 고개를 돌렸다. 눈 앞에 적에게 또 당할 뻔했다.

이젠 정말 집중해야 한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은 전투가 끝난 다음에.

.
.
.
.
"끅... 좀 더 살살 할 수는 없습니까?"

"없네. 정말이지 이런 엉망진창인 지혈 방법을 잘도 쓸 생각을 했구만, 자네."


쉬는 곳은 근처 빈 신사였다.
여기서 꽁꽁 싸맸던 천을 풀고 다친 어깨를 내보이자 카츠라가 기겁했다.

"그래도 아까는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카츠라가 대충이라도 외상을 치료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세를 기울게 한 장본인도 같이 오게 되었다.

"와하하하핫, 와하하하... 홥."

시끄러워서 신고 있던 신발을 날려 던졌더니 정확히 입에 골인했다.

"시끄러워, 좀 닥쳐. 머리 울리니까."

"에... 자네가 반말하는 건 오랜만이네. 어지간히도 열받았나 보군."

치료하던 카츠라가 움찔하며 말했다.

"어이어이, 이건 좀 너무한걸~ 신발이라니~ 그래도 아군이 될 사람한테. 아, 이미 아군인가~ 와하하하핫, 와합!"

다시 시작되려는 녀석의 웃음에 다시 한 번 남은 신발을 벗어서 던졌다.

"긴상, 타카스기. 저 녀석 뭡니까. 누구냐 넌."

"글쎄. 아까 우릴 돕던데."

"가세하려는 녀석들 중 한명이겠지, 저 녀석도. 실력은 꽤 괜찮은 것 같더만."

결국 아직 소개는 안했다는 거군.

"아, 사카모토 타츠마다만~ 상인 집안이지만 어쩌다보니 양이지사가 되어버려서~ 이왕 이렇게 되버린 거 댁들에게 가세하려고. 와하하하핫!"

사카모토 타츠마? 들어본 적이 없는데... 긴토키의 전우 맞나? 이런 실력에다가 이렇게 우리와 서로 얘기를 나눌 정도로 많은 이들을 이끌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전에 해결사 긴토키에게선 이름을 들어본 적도 만난 적도 소개 받은 적도 없다.

해결사 긴토키와 있던 시기가 그리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엄청 사이가 틀어져버린 타카스기까지 만났었다.

그런데 사카모토 타츠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정말, 긴토키의 전우인가?
아니, 곧 전우가 되는 건가?
나중에 배신이라도 하는 건가?
도중에 죽기라도 한다는 건가?
타카스기 이상으로 위험한 녀석이 되는 건가?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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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08 22:36 | 조회 : 2,476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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