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주로 나갈 준비.

긴토키가 서류를 작성해 주기 전,
나는 먼저 골목길 어귀로 들어가 망토를 쓰고 가면을 머리에 걸었다. 돈주머니를 챙기고, 소도는 상자에 넣어 어깨에 매었다.

혹시 경찰에게 걸릴까봐 소도를 밑에 깔고 천을 깐 후, 악기를 넣었다. 아야메와 이별하고, 다시 집을 뒤지면서 발견한 악기다.

샤미센... 이라고 했나? 나는 다룰 줄 모르지만, 아야메는 꽤 잘 다룬다고 소문이 자자했었다. 지금은 유품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우주로 나가기 전에 긴토키에게 맡겨두는 게 나을 것 같다. 부서지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긴토키도 유품이라고 하면 내가 다시 가지러 올 때까지 함부로 다루진 않겠지.

아까 긴토키에게 샤미센을 보관할 상자를 하나 사두라고 하길 잘한 것 같다. 이대로 가져가 긴토키에게 맡기기만 하면 된다만...

... 우주에 가기전에 긴토키에게 악기를 맡기고 가면, 그 뒤는 악기로 위장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긴토키에게 악기를 맡기기 전에 차라리 한 번 들켰으면 좋겠다.

물론 가장 좋은 건 그냥 우주로 나갈 때까지 들키지 않는게 가장 좋다만, 사람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들킨다면 그냥 차라리 악기가 있을 때 들켰으면 좋겠다.

어깨가 무겁다.
이제 긴토키를 만나고 같이 서류를 작성하고, 악기를 맡기고, 나는 우주로 나가면 된다.

어느 행성부터 가게 될려나. 좋은 이든 나쁜 이든, 일 그러니까 조카가 말해준 이들과 만나게 되면 좋겠다. 이기적인 생각일까?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는 느낌에 불안한 느낌을 받으며 길을 걷는 도중, 결국 또 그들과 만났다.

진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로, 진선조 제1부대 대장 오키타 소고.

어째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들키는 게 나을 것 같다 했다만, 이렇게 예고도 없이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저놈의 경찰들은 그렇게 할 일이 지지리도 없나.

"... 제발 모르는 체 해줘...... 후우, 미행까지 당했는데, 그냥 지나쳐 갈 리 없겠지?"

상대도 날 발견하더니 곧장 이쪽으로 온다.

오지마. 오지마. 훠이~! 저리 가라고! 저리가!

속으로 되뇌었건만 결국 그들은 계속 다가와 내 앞에 섰다. 다행히도 그들이 날 알아채기 전에 망토와 가면을 둘둘 말아 보따리처럼 손에 쥐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건 작업복이다. 뭐, 어차피 날 본 사람은 죄다 죽었기에 내 생김새를 보고했을 리는 없겠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만약에 그들에게 현장을 들켰을 시, 나는 작업복에 가면을 쓰고 있을테니까. 지금은 절대 들켜서는 안된다. 적어도 해결사 근처에서는. 가뜩이나 외모도 비슷한데, 정말 해결사까지 연루 될 지도 모른다.

"아? 그 꼬맹이잖아. 미.. 아니, 축제에서 만났었지?"

일부로 미행이란 걸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부장님. 이미 알고 있거든요.

"아, 아저씨는 그때 칼차고 다니던 나쁜 아저씨네요."

"... 어이, 나쁜 아저씨 아니거든?! 지금 입고있는 옷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꼬맹아. 우리 경찰이거든?"

히지카타가 열받은 얼굴로 얄밉다는 듯이 내 머리를 한 손으로 꽉 붙잡는다. 어린애답게 좀 칭얼대주자 금방 놔주긴 한다. 아무래도 우는 어린애가 더 열받겠지.

양시지사나 무장 경찰이나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데. 나라에서 인정해준 공무원이냐 공무원이 아니냐로 갈린 것일 뿐, 사람 베는 건 똑같지 않나.

거기서 더 최악은 민간인을 베냐 안 베냐지. 뭐, 민간인을 베는 쪽은 아니니 최악은 면했네.

"... 그나저나 자신의 몸통만한 상자를 매고 있는데 대체 뭘까요~?"

소고는 보자마자 상자에 시선이 꽂히더니 기어코 질문을 던진다. 왠지 조금 놀려주고 싶은걸?
나는 살짝 경계하는 척 했다. 그리고 뒷걸음쳤다.

"왜, 왜요오..."

그러자 이번엔 히지카타가 나선다.

"저기, 꼬마야. 미안한데, 잠깐 상자 좀 볼 수 있을까?"

예스, 히지카타마저 걸려들었어!

"시, 싫어요."

둘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히지카타는 내 어께를 누르고, 소고는 매고 있던 상자를 벗겼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다.

... 당연히 샤미센밖에 없었다. 소도는 샤미센 밑에 깔아둔 천 밑에 고이 모셔뒀으니, 당연히 들추지 않는 이상 보일리가 없다.

"무게가 조금..."

소고가 의아한 얼굴로 갸웃하며 샤미센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이건 좀 위험한데... 여기선 내가 좀 큰 소릴 쳐도 되는 입장 맞지? 어쨌든 저들은 심증만으로 물건을 뒤졌는데, 찾는 물건은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만 넣고, 돌려주세요! 소중한 거란 말이에요!"

"... 샤미센이? 네가 샤미센을 다룬다고?"

"제가 아니라, 어머니의 유품이란 말이에요! 그만 돌려주세요! 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갑자기 상자에 대해서 묻질 않나, 다짜고짜 사람을 잡고, 강제로 물건을 뒤지지 않나. 정말 경찰 맞아요?!"

내 갑작스러운 큰소리에 소고는 상자에서 시선을 거뒀고, 히지카타는 조금 뜨끔했는지 겉으론 내색하진 않았지만, 담배를 조금 신경질적으로 큼큼거리며 뻑뻑 빨아댔다.

"미, 미안하다."

"네?"

안 들리는데요~

"그게, 그러니까! 큼... 짐 멋대로 뒤진 거 미안하다. 우리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지."

"... 알면 됐어요."

"...... 잠깐만. 애초에 짐을 뒤진 건, 네놈이잖아, 소고! 사과해, 네놈도 사과하라고!"

"에이~ 뭘 그런 걸 다 따지고 그러세요? 혹시 부끄러우신가?"

"... 시끄러!"

결국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헤어질 수 있었다. 소고는 약간 이상한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딱히 내 행동에 뭐라 할 말은 없었는지 그냥 넘어갔다.

딱히 거짓말을 한 게 없으니까. 다만 칼이 있다고 말을 안했을 뿐이다.

"아, 꼬맹아. 헤어지기 전에 한가지만 묻자. 너 저 해결사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거냐?"

"... 그건 왜요?"

"그냥. 그 재수없는 놈과 외모가 좀 닮았는데다가, 네 신분을 정확하게 확인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게다가 우연히 거기서 나오는 걸 봤으니까."

우연히가 아니라 미행한 거겠지.

"글쎄요. 그런거라면 신분 확인은 제대로 못하시겠네요. 그냥 의뢰인이거든요."

"그럼 네 이름만이라..."

"제 이름이 왜 궁금하신데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자, 히지카타는 머리를 짚으며 어렵사리 말문을 꺼내지만 차마 어린애에게 범죄자로 의심된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에둘러 말한다.

"이 상황에서 그게 너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거니까."

아야메 성을 밝히면 그들이 신상정보를 찾는 순간 내가 양이지사를 죽이고 다니는 이유를 제공해주는 꼴이 되고, 긴토키의 성을 밝히면 애매한 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어느 쪽을 밝히던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

"엄마가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 가르쳐주는 거 아니랬어요~"

"...... 경찰에게는 알려줘도 된다, 꼬맹아."

"그런거 몰라요~"

"......"




* * *


"음... 긴상은 말야... 꼭 우주를 나가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나갈겁니다."

"아니아니아니, 꼭 그렇게 고집부리지 않아도 말야. 지구에서 할 건 많다고?"

이 아저씨, 도대체 뭘 바라는거야.

"약속까지는 아니지만, 어머니랑 대화한 내용을 지키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야, 약속도 아닌 이상 지킬 필요는..."

이 아저씨가 아까부터 무슨 진상 아닌 진상을 부리는거야?!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아까부터. 것보단 일단 종이는 주시죠. 찢어지겠습니다. 혹, 나머지 의뢰금을 안드릴까봐 그러십니까? 의뢰금은 챙겨놨습니다."

"인마, 긴상을 뭘로보는 거야?! 긴상은 돈만 밝히는 그런 글러먹은 아저씨까지 가진 않았거든?!"

"아. 아니면, 제가 이름을 쓰는데 불안해서 그러십니까? 걱정마시죠. 우주를 나갈때만 잠시 빌리는 것 뿐. 그 이후는 계속 이노우에 카오루로 살아갈겁니다."

"분명 아버지였다는 건 안지 얼마 안됐지만, 묘하게 기분나쁘다?"

다 좋았다. 검을 소지한 걸 들키지도 않았고, 긴토키에게 성을 빌려 여권과 보호자 작성도 했다. 그리고 의뢰금만 건네주고 헤어지면 되는데, 아까부터 건네받아야 할 서류와 여권을 서로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래, 알겠는데 종이 좀 놓으라고. 찢어지겠다고, 놓으라고오!

"아니, 이제 이름같은 건 어찌되든 좋아. 한 가지만 사실대로 대답해."

"그러죠."

"너, 사신이냐?"

"... 사람인데요. 사신으로 보입니까? 제가 사신이었다면 그쪽 목숨줄이 이미 달아났을 겁니다. 만나서 꽤 유쾌한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아니, 내가 말하는 건 요새 소문을 몰고 다니는 소리소문 없이 양이지사를 죽이고 다니는 '사신' 이냐는 거다."

사실대로 얘기해야하나? 뭐,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알아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겠지.

"양이지사들에게 당하고 복수했단 얘기를 하면서 각오는 했다만, 왜 이제와서 묻습니까? 이미 눈치채신 것 아니셨습니까?"

조금 당황했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물었다.

"... 양이지사에게 복수하는 건 관둬라. 아까 진선조녀석들을 봤는데, 뭔가 꾸미는 것 같았으니까."

"... 저도 압니다. 아마 제가 어린애라는 것까지 알아낸 것 같더군요.
하지만 거기까지. 더 이상의 정보는 넘길 생각 없습니다. 이젠 양이지사에 이어서 진선조까지 신경을 좀 더 쏟아붙고, 조사 할 생각입니다."

그러자 긴토키는 체념한 듯 종이에서 손을 뗐다. 손을 떼면서도 내가 가는 게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잡으려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잡지 못한다.

... 딱히 아는사이도 아닌데, 정들 시간조차 없었고. 근데 뭘 그리 아쉬워하는지. 꼭 그리워하는 표정이다. 도대체 언제 봤다고 그리운건진 모르겠다만.

"거기까지 말한다면 더 할 말은 없다만... 너 혹시 어린애인거 일부로 들켰냐?"

"아니오."

"어이어이? 그럼 그렇게 들켜줬단 식으로 말하면 안되지."

"... 그럼 어떻게 말해야하는 겁니까?"

"... 애초에 말야, 너 10살 맞냐? 도저히 10살의 말투가 아냐."

"그래서 존댓말을 하고있습니다만?"

"너무 딱딱한 말투라니까? 속에 애늙은이라도 있는거 겁니까, 요녀석아."

이젠 하다하다 말투까지 시비다. 도대체 왜이리 우주를 나가는 것에 대해 붙잡고 늘어지는 건데?

그래도 조금 뜨끔했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가 지금 긴토키의 나이다. 거기다 새로운 인생의 십년.

긴토키보다 적어도 10살은 더 많다. 아마 긴토키는 내가 진선조에게 연기했던 말투를 바라는 거겠지.

하지만, 연기가 아닌 이상 못하겠다. 그냥 원래 성격이란 말이다. 내가 회사원이었을 때의 말투.

긴토키에게까지 어린애 연기를 할 필요는 못 느끼겠다.

무엇보다 긴토키도, 나도, 아직 준비가 안됐다.
아빠가, 아들이 될 준비가.

"그냥 철이 좀 일찍 들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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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31 01:47 | 조회 : 2,007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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