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름 좀 빌려주시죠.

나는 계속 해결사 건물을 응시했다.

느껴졌던 시선도 신경쓰였지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들어가 그를 확인하고 원망도 좀 해보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아저씨가 아닌 꼬마였다면 날 책임지라고도 하고, 도와달라고도 하고, 엄마의 복수를 해달라고 찡찡거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 먹을대로 먹은 내가 그런 낯부끄러운 짓은 죽어도 못할 것 같다. 아마 저 간판에 걸린, 해결사에 이름에 맞는 의뢰를 할 수 있기 전까진 들어갈 명분을 못 만들 듯 하다.

참 나... 눈 앞에서 아비라는 자가 있는데 보지도, 만나지도, 불러보지도 못한다.

...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젠장... 의뢰다운 의뢰를 내 상황에서 어떻게 갖고와.."

아마, 평생 만날 일은 없을 듯 하다.

젠장... 아야메에 대해서 얘기해 주고 싶은데... 아야메가 너무 불쌍하잖아. 내가 아니면, 아야메가 도와줄려했던 남편이라는 자는 아야메의 존재 자체를 잊고 살 텐데.

뭐, 엄밀히 따지자면 애초에 남편이었던 적도 없지만은...

다시 답답해져오기 시작하는 감정을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고 쳐들어가서 바짓단을 붙잡고 늘어지기 싫다. 내가 혼자해야해. 지금까지 그랬다.

... 내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다시... 다시, 양이지사를 알아봐야겠어. 이번에는 조금 더 조심해서. 좀 더 자세히 조사해서."

그럼 좀 안전해지겠지. 지금까지는 너무 대충했다. 그래서 들킨거야.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으면 돼.


* * *


"거 봐요. 제 말이 맞죠~? 히지카타씨?"

저 멀리서 카오루를 미행해온 히지카타와 소고.
히지카타는 얄미운 소고의 면상을 날리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말아쥔다.

"시, 시끄러. 임마, 집이 없는 것 같다고 죄다 '사신' 일 것 같냐?!"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계속 미행을 해봐야겠네요?"

젠장, 저 면상을 한 대만 갈겼으면...!

하지만 딱히 소고의 말이 틀린 것도 없기에 말아쥔 주먹만 부들거린다. 대신, 말머리를 돌렸다.

"전에 말한 그 덫은?"

"뭐, 준비는 해놨는데요... 걸려드는게 시간이 좀 걸리려나? 게다가 저 녀석이 범인이라면 아까 우리가 떠든 것 때문에 더 힘들걸요? 정보가 흘러들어간건데, 몸을 사리지 않을까요?"

"...... 어린애인거 알아낸거 말이냐?"

"네."

갈 길이 멀었다. 당장 체포를 하고 싶지만, 증거도 없거니와 심증도 애메했다.

저 꼬맹이가 양이지사를 죽여야할 이유가 얼마나 될까?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평범하게 자란 아이가 굳이 양이지사를 쫓아다니며 죽일 일이 어딨을까.

"끙, 우리가 언제까지 미행해야 하냐? 야마자키라도 붙이면 되는데! 네녀석 혼자 하던가!"

"그럼 그러는 도중 눈 앞에 있는 범인을 놓치잖아요. 히지카타씨."

"범인은 무슨! 심증밖에 없는데."

"그니까 쫓으면서 증인과 증거를 찾아내는 거죠."

진지해지는 소고의 모습에 히지카타는 신음을 삼키며 말한다.

"그런데 네놈이 언제부터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했냐? 땡땡이치기 바쁜 놈이."

"너무하시네요. 할 땐 제대로 했다고요? 히지카타씨야말로 너무 고지식하다고요.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이 한 둘은... 아무튼, 저기 가는데요?"

"끄응..."


* * *


... 누군가 아까부터 계속 따라온다.

아까 그 여자애를 집중하며 뒤쫓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뭔가 뒤통수가 따끔거리면서 아닌 듯 한게, 어중간한 녀석이 아니다.

아니, 하나가 아니라 둘 같은데? 골목을 돌때 뒤를 살펴 봤을 때 날 잡을려고 기를 바짝 세우고 다가 오는 이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면서도 시선은 날 놓치지 않고 있다.

잠깐. 어디서 봤나 싶더니, 아까 부딪혔던 남자잖아.
분명 히지카타, 소고... 였나?

젠장. 저들은 경찰이다. 섣불리 따돌리면 내가 미행을 눈치채고 달아난게 되고, 저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게 되고, 심증을 더 굳히게 되버린다.

안 돼. 그럼 얼굴이 드러나버린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나은건 그들이 나가 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면 된다.

하지만 생각하보니, 아까 아빠 엄마 연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까 한 말이 거짓말이 되버린다. 그들의 말을 듣고 지어낸 거짓말.

"... 오늘 운수 되게 없네. 아니, 운이 없는 건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 인거 아냐?!"

답답한 속에 이어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생각 좀 해보자... 어떻게해야... 저들을 떨어뜨리지?... 아...!"

...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무언가 잊은 척 연기하면서 다시 돌아가서 그 건물로 들어가면 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들과 해결사는 안면은 알고 지내는 사이다.

얼마만큼 믿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결사 안까지 들어와서 잡으려들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의뢰라... 뭘 의뢰해야 돼?

아무튼 연기나 하자.

"아아아! 맞다!"

동시에 몸을 돌려 해결사 방향으로 거의 달리다시피해서 돌아왔다.

그들을 지나쳐 오면서 슬쩍 살펴보니, 당황한 기색은 있어도. 이상한 걸 눈치챈 느낌은 아니다.

"... 다행이다. 눈치채진 않았어."

... 의뢰는 내가 하고 싶은 걸로... 복수는 의뢰 해달라고 안 할거야. 그건 내가 하고 싶어서,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거니까, 남이 해주면 의미가 없어.

몇 년이 미뤄지더라도 그자를 찾는 건 내가 해야돼. 앞으로 양이지사들을 죽일 수 없더라도 그는 찾아서 끝을 봐야돼.

근데... 내가 하고 싶은게 뭐가 있었을까... 나, 그 날 아야메에게 뭐가 하고 싶다고 했지? ... 잊고 있었는데. 겨우 1년전 일인데. 뭐였더라.

아, 맞아. 나 그때 우주여행 한다고 했었나?

"그게 뭐야. 우주여행이라... 현실성이 너무 없는데?"

우주 여행이라 나쁘지 않다. 일단... 티켓 같은 걸 구해야겠지? 그리고 여권도 있어야 할려나? 보호자가 필요하겠네. 안되면 그 백야차에게 이름만이라도 빌려야겠어.

일단은 생물학적으로라도 내 아비니까.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건물 2층으로 올랐다.

똑똑똑.


* * *


"... 의뢰?"

"네, 아주 간단한 겁니다."

"그건 그렇고... 너말야, 부모님 안 계시냐? 누군지 몰라도 흰 머리는 그리 흔한게 아닌데 말야. 그리고 이 긴상은 말야, 아주아주 비싸서 보통 사람들도 의뢰하기 힘들다고? 부모님 모셔와야 한다고? 엄마나 아빠라던가..."

"적당히 좀 하세요! 통장 잔고 안 보여요! 이번 달도 폭탄 맞았다고요! 지금 어떤 의뢰라도 받아야 할 마당에! 가게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요?!"

"월급이란 걸 받아본 적도 없어서 문제다해."

안경을 쓴 소년과 아까 차이나 복을 입은 여자애가 타박을한다. 그럼에도 긴토키라 소개했던 사내는 태연자약하게 코를 파며 되받아친다.

"긴상은 좀 더 성실해질 필요가 있어요!"

"시끄러! 누가 뭐래도 이 긴상은 말이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인생을 끝낼거란 말이다."

나는 이들의 말다툼을 잠시 즐기며 보다 말했다.

"엄마 없어요."

"... 응? 어, 없어?"

그러자 긴토키라는 사내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말한다. 조금 당황한 모습인가?

"그, 그럼... 아, 아빠라던가...?"

조금 울컥 화가 치민다. 내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안 닮은 건가? 그의 말대로 흰 머리가 흔한 것도 아닌데. 현실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이 자리에서 폭로해 줄까?

... 관두자. 얘기해서 뭐하나.. 책임져달라 하리?

쾅!

나는 탁자에다 발을 올리고 무릎을 궆혀 상체를 얼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칼이 있었더라면 가져다 위협을 했으리.

"저는 말입니다... 아버지라는 작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제 부모 얘기는 삼가주시지 않겠습니까? 슬슬 의뢰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아, 어... 옙."

"사카타 긴토키씨, 당신의 성을 빌리고 싶습니다."

"... 에?"

"이름 좀 빌려주시죠."

"... 에에에에에?!"

5
이번 화 신고 2017-05-28 22:54 | 조회 : 1,955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