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축제에서의 미행.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다.
옷도 부탁해서 깨끗이 세탁한 상태였다.
마을은 축제(まつり)분위기였다. 아직 날도 밝은데 가게는 벌써 개업했다.

축제라... 그러고 보니 이번 생에서는 축제를 즐겨 본 적이 없었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즐겁다. 축제나 좀 즐길까?

관두자. 얼마전에 한 명을 미처 처리하지 못해 내 정체가 새어 나갈 뻔 했다.

축제는 됐고, 혹시 모르니까 얼굴이나 좀 가릴 수 있는 가면 같은 거나 사둬야겠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가면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대충 가면을 훑어보다 눈과 코, 얼굴의 반만 가리는 고양이 가면을 들었다. 나쁘진 않지만 하얀 면에 알록달록하다 싶은 빨간 선. 너무 화려하다.

고양이, 여우, 토끼... 대부분 동물가면에 축제에 어울리는 화려한 가면이다.

나는 물끄러미 가면의 무늬를 감상하다가 한숨을 한 번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심코 옆을 보았다.

"해골...?"

보통 얼굴 전체가 가면이거나, 턱만 없는 다른 가면과는 다르게 얼굴의 마스크처럼 코와 잎만 가려지는 형태의 가면이었다.

... 어쩐지 중2병 컨셉인 것 같은 가면이지만 다른 알록달록한 가면과 비교해서는 단순하긴 했다.

"저런건 일본 전통 가면이 아닌데... 하긴 우주선에 천인까지 있는 세계에 뭐는 없겠냐니만은... 아저씨! 저거 주세요."

가면가게 아저씨에게 값을 지불하고 바로 얼굴에 쓰려다 도로 허리에 달았다.

"굳이 지금 쓸 필요는 없겠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놈들이 나타날 일도 없는데. 어차피 얼굴도 모를테고."

아직 낮인데도 거리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축제를 즐긴다. 하나같이 행복하고... 무엇보다 가족과 연인, 친구로 가득하다.

부럽다. 어딜 둘러봐도 혼자 멀거니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뻘쭘해진 기분에 도중 발걸음을 돌리려다가, 자꾸 눈에 밟히는 아이가 보였다. 대여섯쯤 됐을까.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아무래도 길을 잃은 듯하다. 주위엔 사람이 꽤 있었지만, 아이는 우물쭈물하며 말 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

나는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흠칫하며 날 올려다본다.

"꼬마야, 혹시 길을 잃었니?"

"으으응! 오빠도 길 잃었어?"

"... 아닌데?"

애당초 돌아갈 집이 있어야 길을 잃지. 나는 방긋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아줬다. 같은 어린 아이의 입장이어서 그랬는지 아이는 별 경계심 없이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아이의 손에선 나와 다르게 달콤한 냄새가 났다.
나는 내 손에서 피냄새가 나는 것 같아 무심코 반대편 손의 냄새를 맡았다.

... 다행히 피냄새는 나지 않았다.
안심하며 손을 내리고 아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 집이 어딘지 알아? 돌아갈 곳이라던가."

"아니... 몰라."

"그럼 조금 전까진 어디있었어? 아니면, 어디 가려던 곳은 있어?"

"가려는 곳 있었는데... 까먹었어. 조금 전까진... 집에 있었는데?"

뭐야, 이 아이 납치된 거 아냐? 아니지, 순간이동했냐?

"그럼 집에 나와서는? 어디로 갔는데?"

"여기. 축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지, 집에 가고싶어..."

이제 아이는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아아... 우는 아이 달래는 건 피곤한 일인데.

"뚝. 엄마, 아빠 오면 집에 갈 수 있어. 누구랑 있다가 길을 잃었어?"

"어, 엄마. 아빠는 어딨는지 몰라. 아빠 찾으려고 했어."

"그래? 그럼 일단은 엄마를 먼저 찾을까?"

"응..."

그렇게 아이의 손을 잡고 축제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아이와 먹을 걸 사먹고, 구경했다. 가끔씩 놀이에도 어울려줬다. 내 돈이 사라져간다. 엄연히 따지자면 내 돈은 아니다만...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리에? 리에야!"

한 남자가 아이를 부른다. 아이가 그 쪽을 돌아본다.

"아, 아빠아...!"

아이. 아니, 리에는 아빠에게 달려가 안긴다. 꽤나 좋은... 따뜻한 모습이다. 보고만 있어도 훈훈해진달까...

"아. 혹시, 네가 리에를 데리고 있어준거니?"

"... 네."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아뇨, 리에가 얌전해서 힘들지 않았어요."

"그래? 리에, 기특하네~ 아, 그런데 혹시 너도 길을 잃은거니?"

"글쎄요, 잃은 걸지도..."

무심코 생각을 하고 있던 말을 그대로 대답해버렸다. 급하게 입을 닫았지만 그는 이미 들은 것 같았다.

"어쩌지? 아저씨랑 같이 부모님 찾아 볼래? 부모님이 어디 계셨는지 기억나니?"

"아뇨... 괜찮아요. 가는 길 기억났어요. 그럼 저 먼저 가 볼께요."

나는 달리다시피 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앞도 안 보고 달리다가 누군가와 부딪쳤다.
달려온 건 나지만 상대는 성인이라 내가 나가떨어졌다.

젠장, 꼴볼견이겠지. 갑자기 내달려 오더니 들이받고 나가떨어지는 꼴이라니.

"아... 죄, 죄송합니다."

상대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 손을 붙잡고는 일으켰다.

"조심해라."

달아올라 화끈거리는 얼굴을 숙이고 옆으로 시선을 피하고 있는데,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칼이 보였다.

두근.

칼이라면 혹시 진선조인가...?
하지만 그는 어두운 검정색 유카타를 입고 있었다. 색으로 따지자면 축제를 즐기려 입고 온 색은 아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을 느꼈다.
뭐야... 그럼 양이지사인데. 온건파? 과격파? 어떻게 해야 하지?

연기를 하는게 낫겠어. 정보를 빼낼려면.
미행은 칼이 없어서 조금 불안해.

근데, 양이지사 주제에 뭘 그리 당당히 걸어다녀? 아, 어차피 사람이 많으니 굳이 잡히는게 더 힘들겠군.

두근두근.

아...... 어린애 연기는 처음인데, 안 들킬려나? 아까 꼬마를 떠올려! 어떻게 했지?
맞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지? 멀리서 내가 다가올 때까지. 그럼 두리번거리는 것부터...

아, 망했어요. 처음부터 망했어. 너무 당당하게 뛰어와서 부딪혔다. 지금에 와서야 두리번거려봤자, 도망치는 거라고 의심할 것 같다.

이렇게 된거, 이왕 소매치기라도 해봐? 아냐! 감방가려고 미쳤지! 일단 그냥 정보고 뭐고 도망치자.

도망치면 의심하려나? 어디로 도망쳐야되지?

"뭐하냐, 꼬맹아. 왜이리 두리번거려?"

"으아니요... 그게... 아까 칼 든 사람을 봤어요."

으아...! 뭐라는 거야.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이가 칼을 들고있는데에!

"뭐?! 칼 든 사람?! 어디서 봤냐, 꼬마야?!"

어... 그쪽이요. 왜 칼을 들고 있는 그쪽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데?
그는 흥분해서 내 어깨를 붙잡더니 흔들거렸다. 아아, 목이 빠질 것 같다.

"그게... 저어기.."

이러다 어깨는 뽀사지고 목은 빠질 것 같아서 아무 곳이나 짚어 손으로 가리켰다.

... 근데 내가 손으로 가르킨 곳에도 진짜 칼든 사람이 서있다. 삿대질하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스러워서 조용히 손을 접어 내렸다.

"아, 뭐냐. 소고냐? 여기서 뭐하냐."

"히지카타 씨 야말로 여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꼬맹이를 붙잡고. 취조합니까?"

"아니, 칼 든 사람을 봤다는데 너였나보군. 아, 꼬마야. 가도 좋아."

다행히 금방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목과 어깨는 멀쩡했지만 머리가 핑 돌았다.

"아... 네. 근데 왜 아저씨들은 칼 들고 있어요? 아빠가 칼 든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랬는데... 그, 그... 양..양이.."

"양이지사."

"아, 맞다. 양이지사."

"어이, 소고. 너 아저씨 됐다?"

"닥쳐, 히지카타."

"너 지금 반말...! 하아... 아무튼, 꼬마야. 아저씨들 나쁜 사람 아니다. 아저씨들은 경찰이야."

... 설마 진선조인가. 제복을 안 입고 돌아다닐 줄이야. 일이 없는 날인가? ... 그러고 보니까 축제지 참.

게다가 히지카타와 소고라...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내가 진선조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리가 없으니, 조카가 얘기해준 이름었겠지? 그 정도로 중요한 인물었나?

"그런데 꼬마야, 부모님은 어디계시니? 어디가는 중이니?"

"뭐하냐, 소고. 애갖고 취조하냐?"

"잊었어요? 히지카타씨. 이번 사건이 어린애인데요?"

... 이번 사건이 어린애?

"아저씨, 어린애요?"

"아, 별거 아니다, 꼬맹아."

진선조가 움직일 정도의 사건이라면 내가 한 일이 맞는데, 나 말고 다른 어린애가 일으킨 사건이라도 있나? 그것도 진선조가 움직일 정도로.

... 있겠냐.

뭐야... 어린애라는 걸 어떻게 알아냈지? 미처 죽이지 못한 양이지사라도 남았나? 아냐, 다 처리하고 숨을 쉬는지 전부 하나하나 확인했어.

조금 잔인하지만 시간이 없을 땐 확인사살이라도 했어. 뭐야, 어느 부분에서 알아차린거지? 양이지사 외의 증인이라도 있나? 일반인이 숨어들었던 적이라도 있는 거야?

다, 당분간은 움직이면 안되겠어. 어린애인거 하나 알아냈다고 당장에 큰일은 없겠지만, 이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까지 이용하겠지.

조금 조용해질 때까지만... 자중하자.

"이거 봐. 애가 우물쭈물 겁먹었잖아."

"그래요? 근데 이 꼬맹이, 진짜 길 잃은 거 아니에요? 게다가 뭔가 형씨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백발이 흔한 것도 아닌데."

아, 나 별로 겁 안먹었는데. 우는 척이라도 해야 되나. 자, 네가 이때까지 상대해온 어린애들을 생가하며 어린애처럼 굴어!

"길... 안 잃었는데에... 저 잡혀가요?"

"안 잃었다잖아. 안잡아가니까 그만 가봐, 꼬마야."

"네에......"

그들을 지나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이번만큼은 잡혀갈까 무서워하는 꼬맹이로 보이겠지. 뭐 실제로도 그렇지만.

그런데 소고라는 자가 날 빤히 바라보는 건 기분 탓인가... 연기가 너무 지나쳤나? 일단 이들과 거리를 벌려야겠어.

그들을 지나쳐 빠져나와 한 참을 걸었다. 딱히 갈 데가 없다. 차라리 그들이 양이지사였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서 정보라도 다시 빼오려 할 텐데... 뭐, 진선조라니...

툭.

"아, 죄송합니다."

"괜찮다해."

음...?!

가볍게 스친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특이한 말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낮이라 그런지 유카타가 아닌 옷을 입고 있었는데 차이나 복에 보라색 우산을 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은혼인 세계에서 내가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조카가 얘기했던 인물일 거다. 그것도 중요한 인물.

가만 보니, 나도 이미지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분명 그 백야차 옆에 붙어 다니던 인물 아니던가?

그 차이나 복을 입은 여자애는 혼잣말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냐해... 나만 평상복을 입고 있다해.. 긴쨩한테 가서 유카타 하나 사달라고 졸라야겠다해."

집에 가는 건가?

나는 기척을 지운 채 그 차이나 여자애를 멀리서 쫓았다. 한 블럭 차이로 미행을 하면 좋지만, 내 희미한 기억 상, 저 여자애는 싸움을 잘 하는 걸로 알고있다. 그래서 한참을 떨어져서 쫓아갔다. 딱 보일락 말락 한 거리다. 조금만 집중을 떨어뜨리면 놓칠 거리.

그렇게 또 한참을 걷더니, 멈춘다. 그러고 어느 건물로 들어건다.
나는 그 여자애가 들어간 건물을 살펴봤다.
단순한 술집같은데... 윗 층을 올려다봤다. 저 간판 역시 본 적이 있다.

"해결사...?"

방금... 저 건물 안에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친 기분이 들었는데, 기분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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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26 01:39 | 조회 : 1,84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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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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