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보고 싶어서.

"카오루."

아야메... 살아있었구나.

눈앞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환각은... 아니겠지, 부디.

먼저 말을 건넨 건 아야메였다.

"카오루, 많이 걱정했니?"

"걱정... 안했을 리가 없잖아요! 도대체, 왜 손을 잡은 거에요!"

"... 멀리서나마 조금이라도 그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 얼굴도 딱 두 번밖에 보질 못했지만...... 사랑했거든, 널 가지게 되면서 더더욱."

아야메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에 더욱 답답해졌다.

"그라면..."

"네 아버지, 백야차라 불리던 분 말이다. 그 분도 양이지사였다고 들어서, 같은 양이지사를 도운다면 조금이라도 그 분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단다."

이 얼마나 바보같고 미련한 사랑을 도대체 몇 년이나...!

...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이렇게 모든 걸 잃어가며, 모든 걸 바쳐도 그에게는 직접적인 도움도 못 되고!"

그 백야차란 사람이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닿지도 않는 이 일방적인 당신의 미련한 사랑은... 누구한테 보답받나요.

이를 악물었다. 말해봤자 아야메만 가여워질 뿐이다.

아야메는 그럼에도 알고 있다는 얼굴로 나를 마주본다.

"그래도... 네 아버지잖니."

"아뇨. 얼굴도 본 적 없어요. 그저 피만 섞였을 뿐, 남이랑 다를 바 없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 마세요. 사랑하지 마세요. 이제는 저와 당신을 생각해요.

나는 아야메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붙잡으려 했지만 이내 말없이 손을 내렸다.

내 말에 아야메는 그저 또 웃을 뿐이었다. 사랑해서 그런거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러게... 그 사람을 위해서 모두를 희생시킨게 되버렸네... 모두들, 가족같은 사람들인데..."

기분 탓인지, 아야메는 꽤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다. 정말 피곤하겠지. 모든 걸 다 잃었다. 재산도 가족도. 괜찮을 리 없잖아. 말이 심했다. 나까지 아야메를 피곤하게 만들잖아.

"죄송해요. 말이 심했어요, 피곤하실텐데..."

"죄송할 필요까진 없단다. 누구보다 네 입장을 잘 알고있으니까. 원망할 마음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겠지. 그야, 얼굴 한 번 본 적 조차 없으니까. 그나저나 어디서 쉴까?"

"유곽.... 에서는 못 쉬겠네요. 근처 여관을 잡아... 아, 돈도 없구나..."

당황스러웠다. 유곽은 불타고 있었고, 돈은 칼을 가져올 때 여관에 죄다 쏟아 부었다.

"후훗."

"... 지금 웃을 때가 아니거든요?! 이거 꽤나 심각한 상황인데!"

소리내어 웃었지만 아야메는 여전히 생기가 없어보였다. 그게 이 상황에선 당연한거겠지만.

나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나무 밑에서 쉬고계세요. 많이 지쳐보여요. 일단... 전 여기 시신부터 수습할게요."

나는 근처에서 삽을 얻어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애초에 오후 쯤 도착했다. 일이 끝나고 땅까지 모두 파고 나니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화장을 하면 좋지만, 보통 한 사람을 뼈만 남기고 깨끗히 화장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화력이 필요하고, 그 화력에 맞춰 장작을 계속해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쌓아 올려야한다. 아주 많이. 그게 한 사람 분이다. 지금 여긴... 시신들이 너무 많다.

땅을 파기 시작한 손에서 검을 잡으며 생겼던 굳은살이 갈라졌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적어도 가족 같았던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다.

좋든 싫든 가족처럼 십 년을 함께 보낸 이들이었다.

그들을 하나하나 묻었다.

그들의 피가 손과 팔다리, 온 몸에 묻었다.

다시 울컥해지는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울어선 안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일이 모두 끝나면 모두를 위해서 울어줄거다. 울고 울고 또 울어서,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모든 것을 묻었다. 눈물까지.



습격했던 사무라이들은 다른 큰 구덩이를 파서 죄다 다같이 묻었다.

벌써 한밤 중이다. 나는 나무 밑에 있는 아야메에게 다가갔다.

"수습은 다 끝났어요. 그나저나 어디서 쉬어야 할까요..."

"카오루... 유곽에 있는 내 방 알고 있니?"

"당연히 알죠. 맨날 청소했는데."

"거기에 들어가서 방문 앞으로 세번째 다다미를 들어올려 보면, 바닥에 구멍이 있을 거야. 거기에 그를 만날까봐 혹시나해서 모아 두었던 돈이 있단다. 아마 꽤 될 테니, 살 곳을 찾을 때까지 그 돈을 쓰는 게 좋겠구나."

"다행이네요. 그럼 갔다올게요."

"불에 타서 건물이 약해진 상태니 혹 무너지지 않는 지 조심해서 들어가렴."

"네."

말을 끝내자마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건물은 많이 약해져있었다만 이래봬도 난 9살이다.

평균적으로 9살은, 키130에, 몸무게 25.

건물은 충분히 내 몸무게를 버텼다. 덕분에, 무사히 아야메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재가 쌓인 바닥을 손으로 한 번 쓱 쓸었다.

"어디보자... 엑, 켁.. 컥, 콜록콜록."

젠장... 걸음을 땔 때마다 재가 그윽하게 올라온다. 거기다 아직 열기가 전부 빠져나오지 않은 곳도 있었다.

재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애써 눈가를 찌푸리며 손으로 눈 앞을 휘적댔다.

"그러니까 방문 앞에서 세번 째 다다미... 하나, 둘, 셋... 여기다!"

세번째 다다미를 끙끙거리며 들어올리자 아야메의 말대로 꽤 많은 돈이 있었다. 나는 죄다 보따리에 쓸어담아 세로로 둘둘말아 몸통에 대각선으로 묶었다.

"후우, 꼭 크로스 백 같네... 아니지. 이거 고무신 신을 시절에 매고 다니던 보따리 아니야? 아니... 지금 실없는 소리를 할 때냐. 빨리 나가야지."

돈을 들자마자 위태로운 건물을 바로 빠져나왔고, 건물에 압상사 하는 일은 없었다.

돈을 들고 나무 밑에 있는 아야메에게 다가갔다.

"... 돈 찾았어요. 여관부터 잡을까요?"

"글쎄다... 모처럼 유곽일을 못하게 됐으니까... 카오루랑 마을 거리로 나갈까?"

"지금 밤이에요. 여긴 큰 마을이지만, 그래도 시골이고, 수도에 있는 거리가 아니라서 문을 다 닫았을 거예요."

"그런가... 난 카오루랑 뭔가를 한 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 흔하게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거리에서 같이 걷거나 먹을 걸 사준 적도 없고... 대화도 거의 나눠본 적이 없으니까... 어머, 나 엄마 실격이구나?"

아야메의 마지막 말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얼굴은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애썼다.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사먹어 보면 되죠. 대화는 지금하면 되고요. 여관은 됐어요. 내일 잡죠. 나무 밑에 앉아서 대화해요. 하루 정도 날 새는 건 괜찮잖아요... 괜찮나?"

나는 아야메가 먹는 것과 일찍 자는 걸 중요시 한다는 걸 알기에 슬쩍 아야메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아야메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웬일이래... 그래, 하긴 오늘은 평범한 날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잠을 자려 누워도 잠이 안왔으리라.

차라리 날을 새고, 피곤에 쩔어 아무런 생각 없이 기절하는 것처럼 자는게 낫다 싶었다.

"음... 뭐부터 대화하는 게 좋을까요? 먼저 질문하실래요?"

"그래. 카오루는 커서 뭘 하고 싶니?"

"꿈, 직업같은 거요? 글쎄... 아직 안 정해봤는데... 아, 그냥 단순히 언젠가 해보고 싶다.. 라는 건 있어요."

"그래? 카오루가 하고 싶은 게 뭘까?"

"음... 일단요, 우주선 타고 우주 밖을 나가보고 싶어요. 여러 별이나 종족도 보고 싶고... 전투 일족이라던 야토 일족도 궁금하고. 여긴 조카가 말한 것 처럼 꽤나 특이한 세계관을 갖고 있으니까."

"조카?"

"으아뇨! 친구, 친구! 친구가 얘기했어요!"

"음? 네 또래가?"

"네. 정확히 친구의 가족... 어른이 말씀하셨어요."

"그렇구나."

조카 때문에 들킬 뻔 했다. 이눔의 조카는 다른 세계에서도 날 곤란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고, 연이 닿는다면 아빠라는 사람도 만나보고 싶어요. 가족이 되달란 소리는 안 할거예요. 그냥 멀리서만 어떤 사람인지 볼 거예요. 만난더라도 제 정체는 감추고."

"훗, 그렇게 궁금하니?"

예, 일단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었으니까요. 라는 말은 꿀꺽 삼켰다.

"네. 궁금하죠. 남이래도 일단 이름이라도 아버지니까."

내 말에 아야메가 환하게 웃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면서 그렇게 순수하게 기뻐하는 아야메를 보면서 뜨끔했다. 난 그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의 아들이 나라길래 그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한 거 뿐인데.

"다행이다... 카오루는 해보고 싶은게 많구나... 그럼 언젠가는 나를 떠나겠지?"

"그래도 지금은... 곁에 있고 싶어요."

"카오루... 혹시 말이다. 이번 일 혹시라도 자책하지 말아. 그건 네 탓이 아니었어. 넌 그저 내 심부름을 해줬을 뿐이야."

욱씬.

가슴이 다시 답답해져온다. 왠지 울컥하는 기분에 목이 막혀온다.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래, 원인은 내가 아니겠지. 하지만 내 행동으로 인해 결과는...

"그렇지만... 일찍 올 수 있었음에도 제가 칼에 미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건... 그건 제 탓이, 맞아요."

"일찍 왔으면 너도 말려들었을거야. 검에 미련을 버리고 왔다면 검도 없었을 텐데, 네 몸도 지키지 못했을거야."

"... 그래도, 그래도...... 이깟 검 때문에 식구들의 목숨이...!"

울컥한 심정에 검을 번쩍 들어 내동댕이 치려했지만, 아야메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젓기에 들어올렸던 검을 다시 내렸다.

"아니, 이 검은 엄마 물건이야. 이제는 네게 줄게. 꼭 지니고 있으렴. 법적으로 네 몸을 지킬 수 있는 성인이 될 때까지라도.. 아니면 폐지령이 내려지지 않은 우주에서는 쓸 수 있을거야."

검을 나한테 준다고... 어째서?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 아야메는?

"아직은 곁에 있고 싶다고 했는데... 어디 떠나세요? 검을 왜 저한테... 나중에 주세요."

나는 억지로 검을 아야메에게 쥐어주려 했다. 그러자 아야메는 몸을 슬쩍 피하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왠지 다시 불안해졌다.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야메는 천천히 조용하게, 그러면서도 또박또박 분명히 말했다.

"아가, 카오루. 엄마는 없어......"

...... 뭐?

"네가 오기 전에... 정확히는 네가 왔을 때, 이미... 이미, 숨이 멈췄어..."

아야메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른다. 나는 그저 헛웃음만 지었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없다고? 숨을 멈춰?

"거짓말... 그치만, 그치만... 이렇게 눈 앞에 있는데... 아까부터 계속 같이 있었는데...!"

아야메는 할 말이 더 있는지 말을 하려했다. 하지만 내가 귀를 막으며 거부했다. 고개를 도리질 치며 주저 앉았다.

듣고 싶지 않아.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야."

"카오루, 아가..."

아야메의 손길이 내 팔에 닿았다. 생각보다 차갑고 마치 물이 스쳐지나가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른 번쩍 든 순간, 아야메와 눈을 마주쳤다.

"아가, 엄마 말 좀 들어주겠니?"

아야메의 차가운 손길에 놀란 나 때문인지, 아야메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손길을 거뒀다.

나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메의 말이 진짜라면... 어쩌면, 아야메의 말을 들을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는 홀린 듯 귀를 막고있던 팔을 내렸다.

"나는... 너를 가지면서,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서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양이지사인 그를 도왔어."

아까 얘기했던 거였다.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란 인간까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아야메가 이렇게 고생한 걸 그는 알까?

"문제는 몇 년 전에 터졌단다."

아야메는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잔뜩 얼굴을 찡그렸다. 얘기하는 게 고통스러운 걸까, 내가 알게되는 게 고통스러운 걸까.

아마 둘 다 겠지.

"그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돈의 흐름, 유통을 경찰에게 꼬투리를 잡히게 되었단다. 꽤나 큰 돈이었거든. 그치만 증거가 불명확해서 그냥 넘어가게 됐지만, 그 뒤로 계속 우릴 주시하게 되었지. 그러자 그는 다른 범죄를 저질러 눈을 돌리게 하라 했단다."

솔직히 듣고 싶지 않다. 가족이 죽었어야만 했던 이유 따위...!

"그게 그 검이지. 일부로 실전용으로 의뢰한거야. 하지만 겉으로는 장식용으로 보이게 해서 넘어갈 수 있게끔. 그리고 그는 말도 없이 유곽에 처들어와 우리를 말살시켰단다. 다른 범죄는 그저 핑계였지. 그걸로 너희를 버리지 않을거라는 우리를 안심시키는 계기."

"아... 아아!"

"그러니까, 그건 정말 네 잘못도 아니었고,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어."

"어째서! 어째서요!"

"네가, 네가...... 살아있으니까, 살아남았으니까...!"

"......!"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숨이 탁 막혔다. 나는... 아야메를...

"죽는 순간에도 너만은 살았을 거란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근데 네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은 순간......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아가..."

"나는...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못난 어미라서, 대화조차 제대로 나눈 적 없는 어미라서, 미안하고 미안해서 눈을 감고 싶지 않았어... 잠깐만이라도 좋으니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어......"

아야메는 울면서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이렇게나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는데, 아무것도 몰랐어..."

동이 틈과 동시에 아야메의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며 아야메의 뒤로 떠오르는 해가 비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요... 너무 일러요. 아직 해가 다 뜨지도 않은 새벽인데... 아직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아야메는 나를 안으려다 내가 놀랄까 걱정하는 건지 멈칫했다.

그런 아야메를 향해 먼저 끌어않았다.

"... 사랑해요,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엄마."

내 말과 동시에 아야메가 놀란 기색이 되며 조금 더 희미해졌다.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카오루, 내 아가."

아야메의 모습이 거의 사라져간다. 아야메가 마지막 힘을 다해 귀에다 대고 말했다. 마치 바람 소리 같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만,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카하시 유이토.. 를... 조심... 하렴...]

아야메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내 걱정을 하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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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20 00:41 | 조회 : 1,887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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