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야메의 심부름.

오늘은 처음으로 장거리 심부를을 다녀오게 되었다.

이미 의뢰 했었던 물건을 찾아오는 거였다. 누구를 보내야하나 고민하는 아야메에게 내가 가겠다고 나섰다.

나이도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9살이고 슬슬 마을 밖을 나가 볼 참에 좋은 심부름거리가 생겼기에 자처해서 나섰다.

그래도 최소 다녀오는데 이틀은 걸리기에, 날혼자 보내게 된 아야메의 얼굴엔 걱정이 가시지 않았지만 내 완강한 고집에, 말리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래서 아예 꼼꼼히 준비하고 체크시켰다.

"카오루, 노잣돈은 챙겼지? 여벌옷은? 아, 도시락을 한 끼 정도는 싸주는 게 좋으려나? 그리고, 혹시라도 무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덤비지 말고, 피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아, 맞다! 가게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 어딘지는 알고 있지?"

"노잣돈 챙겼고, 여벌옷 챙겼어요. 도시락까지 챙기면 어깨에 맨 주머니가 무게를 못 이기고 터져요. 무서운 사람을 만나면 알아서 판단해서 행동할게요. 이름과 지역도 안 잊었어요. 걱정 마세요. 잘 다녀올께요. 이틀이지만 건강히 계세요."

몰아붙이는 듯한 아야메에게 그대로 몰아붙이 듯 대답했다. 그럼에도 아야메는 어딘가 못내 불안한 눈빛이다.

"남아있는 사람은 걱정말고 너나 잘 다녀오렴."

"네에, 네에~"

길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일일이 대답해서 안심시켰다.
장거리라곤 하지만, 바로 옆옆마을이다. 내 걸음으로는 갔다가 오는데 이틀이다. 그래도 마을을 떠나보는 건 처음이기에 설렜다.

서른 살에 이런거에 일일이 설렌다는 건 그다지 기쁜 일은 아니지만... 카오루, 일단 나는 9살이고 첫 장거리 심부름이니 설레고 싶었다.

누가 뭐라해도 외관은 완벽한 9살이니까.

뭐, 아무튼 의뢰한 물건은 관상용 검으로, 단검에 가까운 소도라고 했다.

폐도령이 내린 이후로는 경찰, 공무원 이외의 칼을 드는 이는 양이지사 뿐이라 대장간도 검을 만드는 곳은 허가받고 하거나 불법이 있는 집도 있었다. 관상용으로 의뢰했다만, 지역에 따라 이것마저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우린 시골 지역이라 해당사항에 들지 않나보다.

이틀거리니까 오늘 해가 저물기 전에 도착해서 칼을 받고 머물 여관을 찾아야한다.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평지지만, 시골이기에 포장되지 않은 길이 많았다. 그건 그것대로 나름 걷는 맛이 있었고, 무엇보다 시골이기에 공기도, 풍경도 좋았다.

그러다 도착한 마을 어귀에서 공짜로 마을 주민에게 인사했다고 주먹밥을 얻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인심 있는 마을은 어디든 있는 법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아침 이후 처음 먹은 끼니였다.
뭐, 저녁밥 먹었다 치지 뭐.

의뢰를 했던 마을에 도착해 대장간을 찾았다. 나도 참. 처음 오는 길을 네비게이션 없이 한 번에 찾은 게 기특하다.
비록 옆옆마을이지만.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계세요?"

"무슨 일로 온 거니, 꼬마야?"

대장간에는 쇠를 내리치고 있는 약간 나이든 아저씨와 그의 일을 거들고 있는 젊은 청년이 있었다. 내가 다가오자 청년이 다가와 묻는다.

"아, 의뢰했던 물건을 가져가려고요."

"의뢰?"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되묻는다. 어쩐지 신뢰가 안 가는데.

"이노우에 아야메의 이름으로 관상용 소도 한 자루 의뢰했는데요."

"아, 그 칼 말이구나. 어쩌지? 아직 만들고 있는 중인데. 우리는 최고의 칼을 만드는 대신 좀 오래 걸려. 절대 급하게 만들지 않거든."

그래서, 거두절미하고ㅡ

"... 언제 쯤 완성되는데요?"

"아마... 내일 늦은 오후에 완성될테니, 저녁에 찾으러 오면 될 거야."

"그럼 내일 모래쯤에 집에 도착할테고... 아야메, 걱정텐데. 알았어요, 그럼 내일 저녁 쯤 다시 올테니까 이번엔 제발 완성 해주세요. 여관 이틀 잡는데 좀 돈이 빠듯하거든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꼬마야."

대장간을 나오면서 아까 마을을 걸어올 때 봐뒀둰 여관을 찾았다.

이틀을 잡는데 약간 돈이 부족했지만, 이튿날 새벽에 아침을 먹지 않고 나오는 합의 하에 가격을 깎았다.
너무 늦어 저녁을 먹는 대신, 목욕과 잠자리를 택했다.
히, 저녁비도 깎아달라 해야지.

다음 날, 아침에 곧바로 일어난 나는 내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조반을 가져다 줄 때까지 조금 늑장을 부렸다.

이불에서 꼬물대는 건 꽤 행복하다.
늦잠을 자볼 생각이었으나, 원래 일어나던 시각에서 다시 자려니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이불 속에서 꼬물대다가 아침을 먹는 듯 마는 듯 하고 대장간으로 갔다.
아직도 깡깡대며 만들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은 없었고 결국 마을 거리로 나왔다.

거리를 지나 밭이 있는 곳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밭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도와주고 끼니를 얻어먹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고 대장간으로 뛰어가다시피 향했다.
대장간에 들자 어제와 비슷한 풍경의 완성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완성 됐죠? 이제 정말 가야 되요. 말씀도 안드리고 하루를 더 묵어서 걱정할거란 말이에요."

"거 참. 성격도 급하네. 자, 완성됐다. 가져가라. 대금은 가져왔지?"

"네. 여기요."

나는 청년에게 미리 따로 챙겨뒀던 대금을 건네고 검을 받았다.
검을 든 상태로 천천히 뽑았다.

관상용 검이랬는데 제법 날카로운 예기가 흐른다. 게다가 관상용에 비해 치장도 거의 없고 모양도 단순했다.

검면을 살펴보니 창포꽃 무늬가 음각되어 있었는데, 보통의 관상용 검처럼 글이나 무늬가 전체 검면에 음각된게 아니라, 손잡이 방향 쪽 검 끝에만 작게 음각되어있었다.

...... 이거, 관상용 맞아?

"이거 진짜 관상용이에요?"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더니 청년이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맞아. 다만 실전용에도 가능하다는 거지."

이 인간이 웃으면서 위험한 소릴 하네?

"저희 유곽에선 양이지사 일 같은 건 안 합니다만?"

"에이, 살다보면 쓸 날이 한 번도 없겠냐. 가끔씩은 쓸 데가 있는 법이지."

뭐, 임마?

"이거 저희 어머니 관상용 검인데요. 기생에게 검을 휘둘게 해서 범죄자 만들 일 있어요?!"

청년의 유들유들한 태도에 열이 뻗친 내가 버럭 소리지르자 청년이 얼굴을 찡그린 채 말한다.

"아, 거 참. 소리지르기는. 여자도 검 휘둘날이 한 번도 없겠냐? 고집부리기는... 알았다, 알았어. 애초의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은 우리 쪽 잘못이니... 이리 줘."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청년에게 검을 건넸다.

"어쩌시게요?"

"어쩌긴 뭘 어째. 다시 만들어야지. 뭐 본체는 만들어졌으니, 검면을 무디게 만들어 예기를 좀 없애고, 무늬를 검 끝까지 음각해야지. 치장도 좀 더 하고. 그런 관상용 검 말한 거 아냐?"

"맞아요. 얼마나 걸리는데요?"

"뭐, 본체는 만들어졌으니까, 추가만 하면 될 일이니, 길면 삼일?"

"...... 감사히 가져가겠습니다."

청년의 손에서 검을 빼앗다시피 돌려받았다.
일주일이라니, 난 그동안 어디서 머물라고.

게다가 아직 아야메에게 하루 더 머물었다는 말도 못했다. 똥 줄 빠지게 기다리고 걱정하겠지.

그렇다고 검을 받으러 왔는데 온 의미 없이 빈 손으론 절대 못 돌아간다. 뭐하자고 이 고생을 했는데.

까짓거 검이 예기도 흘리고 무늬나 치장을 안 할 수도 있지. 관상용 검도 그럴 수 있는거야, 암. 그렇고 말고.

그렇게 반 쯤 울며 겨자먹기로 검을 받아들었다.

아, 여관비는 이미 냈으니, 일단 오늘 자고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 조금이라도 일찍가서 아침에 도착하면 좋겠지만, 그럼 날 새서 가야한다. 그냥 자고 새벽에 출발해 저녁에 도착하는 게 나았다.

"하아... 아야메가 좀 걸리는데. 밤에 올지 낮에 올지 모른답시고 잠도 안자는 건 아니겠지? 에라이.. 걱정할 시간에 빨리 자서 체력보충하고 내일 새벽에 빨리 가면 되겠지."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며 나름 괜찮은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나저나... 이 관상용의 탈을 쓴 실전 검을 아야메한테 줘도 될려나? 하긴 뭐, 줘봤자 방 안 장식용 밖에 더 하겠냐니만은... 근데 그러다가 진짜 베이면 어쩌나.. 이렇게 예기가 흐르는데."

대장간을 나오자마자 한 껏 노려봤다.

가만, 저 대장간 허가 받은 거 맞지? 허가 받았다고 했는데, 이거 불법 아냐? 확 신고해버려?

"진짜 겉으로는 허가 받은 척 뒤로는 양이지사들과 내통하는 거 아냐? 요새는 대장간도 줄었으니.... 뭐, 양이지사든 뭐든 피해만 안 오면 되겠지? 아, 젠장 괜히 불안하네."

뭐 적이 되도, 반항만 안 하고 순응하고 취조나 조사에 응해주면 그들도 다짜고짜 공격하거나 검을 겨누진 않는다.

진선조 같이 검쓰는 걸 좋아하는 험악한 애들이 많아도 일단은 그들도 공무원이고 경찰이니까.

잠깐. 이러니까 진짜 내통하는 것 같잖아. 검 하나 샀다고 같은 편으로 몰리는 상황도 웃기다.

이게 다 이 망할 검 때문이야.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할 건 지금 아무것도 없고, 내일 새벽 빨리 떠나는 수밖에 없다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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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17 02:35 | 조회 : 1,97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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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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