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장에 다니다.

그렇게 소리없이 터진 울음은 거의 새벽녘이 다 되어, 기력이 딸려 멈출 수 있었다. 아야메가 올 시간이 다 되는 바람에 급히 찬물에 눈물을 닦았지만 눈이 부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걱정대로......
아야메가 급히 달려들어와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카오루! 설마 운거니, 아파서?"

"별로 아프진 않는데... 아, 눈이 좀 부어서 아프긴 한데."

부은 눈으로 억지로 배시시 웃자, 아야메의 얼굴이 더 일그러진다. 아... 웃는 게 문젠가?

"혹시 아까 그 얘기... 때문이니? 네 아버지... 그, 그러니까... 그게..."

"아... 아버지는 애초부터 없어서 그닥 남 이상으로 생각되질 않아서요. 그냥 낮에 맞은 눈이 아파서."

이 편이 그래도 마음이 편하겠지. 나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서 소외감이 느껴져 울었어요 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래도 날 걱정해 주는 어머니, 아야메 덕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쩐지 다른 의미로 울 것 같았다.

"아직도 아프니? 얼음찜질은 했어?"

"아. 아뇨."

"가만 있어보렴."

아야메는 급히 달려가더니 얼음을 넣은 주머니를 가져와 내 눈 주변에 갔다 대었다. 다른 기생들은 잘 준비를 마치고, 벌써 잠자리에 누웠다. 해가 밝아온다.

"아... 차가워!"

"가만히 있으렴....."

주륵.

아야메가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울기에 조금 놀라며 아야메의 얼굴에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았다.

"미안하구나..."

"네?"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해주고도 옆에 있어주지 못한 어미를 탓하렴. 어릴 때부터 혼자서... 울지도 못하고, 어미를 찾지도않고 혼자서..."

"저, 진짜 그 말 때문에 운거 아니에요."

그리고 솔직히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한데.

"하지만 카오루. 넌 이제 7살이야. 아직은... 투정을 부릴 나이야. 네가 빨리 성숙해지고 철이 들면 들수록,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혼자서 해내고 있구나... 하는 죄책감에 볼 때마다 미안해져. 고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마, 아가."

정말 그것 때문에 운 게 아닌데. 아... 하지만 아비라는 작자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나서 온 멘붕이니 완벽히 틀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더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 네, 아버지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봤어요. 도무지 남으로밖에 안 느껴져서 고민했어요. 근데, 이젠 정말 필요 없어요. 어머니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내 말에 조금 슬픈 표정을 짓는 아야메였지만, 눈물은 더 이상 흘리지 않았다. 그런 아야메를 속여서 양심에 찔렸지만, 다른 고민은 결국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야메의 허락이 필요했다.

"어머니,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 말하렴."

"저, 7살인데... 검도 도장을 다니고 싶어요. 뛰다보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아서요. 몸도 지키는 겸..."

"그러니? 일찍 말하지 그랬니. 내일부터라도 다닐래?"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그렇게 내 한마디에 도장을 다니는 게 결정됐다. 내가 도장을 다니기로 한 이유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내 몸 하나 지킬 기술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몸을 좀 움직이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다.

거기에 내 엄마인 아야메를 지켰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여기는 현대의 일본이 아닌, 사무라이가 날뛰는 세계다.

뭐,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 우주인이 오고 막부가 정권을 넘기고 폐도령을 내렸다 했다.

그러니까, 태어나기 10년 전 쯤 우주인이 들어오고, 내가 태어날 쯔음에도 양이전쟁에 많은 사무라이가 피를 흘렸다는 거다. 이쯤만 들어도 충분히 평화로운 세계는 아니다.

뭐, 지금은 나름 평화롭다지만, 양이지사는 아직도 존재하니까.

"주무세요. 도장은 제가 알아보고, 내일 등록할게요."

"그러려무나. 근데 오늘 밤 새지 않았니, 카오루?"

"... 갔다올게요."

나는 아야메의 뒷 말이 이어지기 전에 재빨리 거리로 나왔다. 뒤에서 아야메가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애써 무시하고, 검도도장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쥐잡 듯 뒤져서 겨우 도장 하나를 찾았다.

폐도령이 내린 이후 점점 없어져가는 도장들 중 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가던 도장이었다. 이때까지 망하지 않은 걸 보면 폐도령 이전에는 꽤 큰 도장이었을 거라 생각됐다.

두꺼워보이는 대문을 손으로 한번 훑어보고는 대문을 두드렸다. 조금 기다리자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왔다.

"꼬맹아. 너 누군데 여기 앞에서 알짱거리냐. 여긴 너 같은 애가 함부로 장난치는 데가 아니다. 에비!"

겁을 주기 위해 잔뜩 찌푸린 험악한 얼굴로 에비를 했나 본데, 눈 하나 깜짝 할 필요 없었다. 겨우 저런 거에 놀랄 나이가 아니니까. 차라리 겁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화를 냈다면 움찔했겠지만...
그저 한번 웃어줬다. 그게 기운이 빠져 헛웃음이 됐지만.

남자는 내가 놀라긴 커녕 헛웃음을 지어버리자 민망한지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허, 험...... 무,뭐... 볼 일 있냐?"

"네. 여기 등록하려고요. 애는 안 받나보네요. 겁주는 거 보면."

고개를 모로 들고 팔짱을 끼며 간보듯 말하자 남자의 얼굴이 굳는다.

"......?!"

"그렇죠?

"아냐아냐아냐. 거 참 성격도 급하긴, 어서 오렴. 이리 들어와. 아이도 받는 단다."

그에 나는 아저씨를 따라 들어갔다. 도장은 꽤 넓었다. 다만 수련생이 없었다.
뭐, 수련생이 없으면 직접적으로 코치를 받으니 좋겠지.

"그나저나, 특이한 머리색이구나. 흰머리에 붉은 기가 감도는 검운 눈. 너, 기생집 아들, 카오루지?"

"... 맞습니다. 뒷조사?"

"...... 뭐?!.... 풋, 푸하하하하하! 뒷조사라니.. 뒷조사래...! 이거 어린애 맞구만!"

나는 달아오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버럭 소리질렀다.

"그럼 뭡니까!"

딱히 이 근방까지 돌아다닌 적도 없는데!

"아아, 그렇게 화내지마라.. 소문 때문에... 동네 애들과 몇 번 마주쳐 싸웠다며? 소문이 자자해. 못 말릴 정도로 성격이 더럽다고."

"무슨 근거로요, 소문?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이죠. 게다가 그쪽 아이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아아, 그건 잘 모르겠다만, 소문이 틀렸다는 것 하나는 인정하지. 더러운게 아니라 고집이 세고 성격 급하고 겁도 없는 녀석으로. 아, 하나가 아니네."

그러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머리는 왜 긁는 거지? 생각보다 더러운 아저씨네.

"... 아무튼 등록은 내일 할 겁니다. 어머니도 오시기로 했으니 상의하셔서 수련비 정하세요. 그리고 수련생은 저 뿐입니까?"

"아니 꼬맹이 몇이 더 있다. 어른은 없다. 가르치는 나 뿐이지. 폐지령 이후 수가 꾸준히 줄더니 지금은 꼬맹이들 밖에 없구나. 꼬맹이들이 졸업하고 나면, 이제 이 도장도 끝이겠지."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아련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

"그런가요? 그럼 마지막이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가르치고, 가르침 받으면 되죠."

"하, 하하하. 네 말이 맞긴 한데... 거 참, 남의 도장이라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라니..."

"남의 도장이라뇨. 저도 곧 다닐 도장인데요. 이 도장의 수련생이 될 예정이라니까요. 걱정말라는 뜻입니다. 제 이름을 날리며 도장도 뜨게 될 테니."

"거 참.. 겁도 없는 녀석이... 포부가 크다 해야할지, 뻔뻔하다 해야하는 건지. 설마, 생각이 없는 건 아니겠지?"

"......"

"... 화났냐?"

ㅡ화났다기보단 재미없는데요.

"... 그럼 내일 봬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곽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가벼웠다. 오늘은 좀 일찍 자야할 것 같았다.

밤을 새서 머리가 아프다.


* * *


아야메와 같이 도장을 방문했다. 아야메는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곤 곧 돌아가고 나와 아저씨가 남았다.

"허어... 이쯤이면 올 때가 됐는데."

"누가요?"

"너 외의 수련생들 말이다."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쾅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사부님! 저 왔어요."

"그래, 이눔아. 문은 발로 차지 않아도 열린다 했는데, 왜 자꾸 발로 차는 거냐."

"손으로 여는 건 힘들어서요. 어, 사부? 누가 있네요.... 아앗!"

아... 그 예의 시끄러운 놈. 나 외의 수련생이 저 녀석이었어?
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뭐, 왜. 늙은아."

"사부! 저 하얀 놈이 왜 여깄어요!"

"떽! 이제 입문하게 된 수련생이다. 친하게 지내라. 너에겐 사제가 될 테니."

늙은이 곁에 서 있던 다른 애들도 같이 수근거린다. 이 꼬맹이 패거리들이 버릇없이!
... 참자. 난 어른이니까.

"아무튼! 수련 시작한다. 다들 죽도 들어! 카오루도 애들 따라하거라. 어차피 다들 기초만 배우니까."

"넵!"
"사부! 죽도 없어요!"
"아! 여깄잖아, 바보야."
"빨리 들어."

역시 애들이라 그런지 죽도하나 드는데도 꽤나 시끄럽다. 이러니 기초에서 넘어가질 않지. 저것들 검 들기 전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명상같은 거 먼저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아니나 다를까..

"에잇! 다들 검 놓고. 올라와 앉앗! 명상 수련이다. 너무 정신 사납다, 이것들아!"

"에.."
"에이.."
"면상 재미 없는데."
"명상이야, 바보야."

나는 픽 웃으며 아이들을 따라 올라가 앉았다. 그러고 어느정도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죽도를 들었다.

수업은 꽤나 간단했다.
위에서 내려치는 거, 가로로 베는 거 등등 간단한 것들이었으나, 쉽지는 않았다.

걸음과 허리를 세우고 일치시켰다. 나는 죽도를 들고 내려치면서, 내려친 부분을 거의 일정하게 내려쳐, 보통 사람들이 하기 힘든 걸 해냈다며 칭찬을 받았다.

솔직히, 집중만하면 못하는 건 거의 없었다.
다만, 애들이 너무 산만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들어오자마자 며칠만에 다른 애들과 다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에 오기가 생긴 애들도 죽자고 달려들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얼떨결에 내가 아이들을 끌고가는 꼴이 됐고, 사부는 이런 날 무척 좋아했다.
대련도 가끔 할 수 있었는데, 꽤나 재미있었다.

"후후후후, 네가 이 세키님을 이길 것 같으냐."

"아, 네 이름이 세키였냐, 늙은이. 어쩐지 욕이 생각나는 이름이네."

그러면서 한국어를 좀 섞어 놀리자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열받아서 어쩔 줄 몰랐다.

"야, 너 방금 욕한거지."

"아닌데? 네 이름이 욕이었냐?"

"이게 진짜, 사형한테!"

"사형같은 소리하고 있네."

"뭐야?!"

참고로 세키라는 애는 도발을 좀 해주면 애답게 앞뒤 안가리고 달려들었다. 허점 투성이었다.

그러고 몇 번 내리쳐주자, 보호구를 썼기에 그다지 아프진 않았지만 더욱 열받아 달려왔고, 상황은 계속 반복됐다.
그에 사부가 말렸다.

"세키!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그럼 계속 진다."

"하지만 쟤가..."

"참아. 차분히 덤벼도 질 것 같은 애한테 열받아 앞 뒤 안가리고 달려들면 어떡하자는 거냐."

"이익!"

하지만 어린애가 참으라는 말 한마디로 참아질까. 세키와의 대련에서도 계속 이기고 나머지 애들도 이길 만한 애가 없자 드디어 사부랑 대련을 했다.

확실히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 답게, 매서운 기세를 피어올린다.

"카오루, 나에겐 얕은 수는 안 통할거다."

"알고 있어요."

나는 웃으며 머리 쓸 필요 없이 움직였다. 싸움에는 머리를 쓸 필요 없다.
그저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몸이 알아서 계산하는 대로.

처음에는 당연히 졌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어느정도 맞붙게 되었고, 일 년 정도를 넘어서자 엎치락 뒤치락 하게 되었다.

나는 몇가지 조언을 받았다. 검에 감정을 실지 말라는 것 과 실전에서 쓸만한 기술을 대련에서 쓰지 말라는 것. 그러면 그저 막싸움과 다를 바 없다나.

상황에 맞게 변환하는 건 좋지만, 너무 위험한 기술도 맗이 쓴다는 거다. 그러면서 소질있고, 능력있는데, 그런 실전용 검술은 어디서 배웠냐고 타박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기술이었다.
상황을 이용하는... 실전이 아닌 곳에선 비겁하다 할 수 있는 흙 뿌리기, 발걸기 등을 시작해서, 양손으로 잡고 있다가 부드러운 방향전환을 위해 한 손으로 쓴다거나, 양손을 번갈아가며 쓰는 것. 등등.

이런 기술들은 사부를 당황하게 하기 쉬웠고, 이런 수법을 썼을 땐 대부분 이겼으나 대련에선 쓰지 말라며 크게 혼났고, 사부도 대처해가기 시작하며, 이기는 게 줄기 시작했다.

6
이번 화 신고 2017-05-12 02:52 | 조회 : 2,173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