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애들은 귀찮다.

성, 이노우에. 이름, 카오루.

이노우에 카오루.

아버지가 없어,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 정확히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짐작했었다.

말을 하고, 걷기 시작했을 때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자니, 죽었으려니 했다.

하지만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짐작가는 아버지만 한 둘이 아니다.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정신 건강에는 좋다.

... 인정하기 싫지만, 내 어미 이노우에 아야메는 기생이다. 일본 유곽의 게이샤가 내 어미다.

기생인 아야메는 무척이나 바빴다.

특히 밤에.

물론 내 어머니란 자는 아무에게나 몸을 내줄 정도로 몸값이 싼 기생은 아니었다.

다만, 악기나 춤은 추기에 아침이 되면 여지없이 피곤한 얼굴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곤 한다.

난 유곽을 싫어하는 편이다.

방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식으로 있는데, 건물이 원래 그런 건지 벽이나 문이 얇은 편이었기 때문에 가끔 소리가 들려서 잠을 자지 못할 때도 있었다.

차라리 그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만 애석하게도 정신연령은 아저씨.

그래서 어느정도 말이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된 작년부터는 신사... 절 같은데서 몰래 자기도 했다.

밤에만 몰래 나갔다가 몰래 들어오는 편이어서 들킬 일은 없었다.

이제는 만 7살, 이젠 낮에도 허락을 맡고 놀러다닐 수 있었다. 그래봤자 유곽 근처 거리었다. 하지만 충분히 내 또래들을 볼 수 있었다.

"뭐하고 노는거야? 나도 같이 놀아도 될까?"

그러자 아이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 중 나보다 한두살 정도 많아 보이는 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싫어, 저리가."

"......"

"너, 기생의 아이라면서? 그리고 그 흰 머리는 뭐야? 혹시 네 아버지는 머리가 흰 할아버진 아니겠지?"

이 싸... 꼬맹이 말하는 꼬라지보소?

"뭔, 개소리야? 그리고... 내 머리가 뭐, 어쨌다고?"

"누구보고 개라는거야?!"

"... 말하는 꼴이랑 행동이 딱 개같은데?"

"흥! 덩치도 쪼끄만게!"

나보다 덩치 큰 꼬맹이가 내 성질을 복복 긁는다. 그래, 노는 거 때려치자.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친구 복 없는 건 확실하군.

"넌 커서 좋겠네, 애늙은아. 겨우 한 두살 차이가. 야, 지금은 한 두살 차이, 어른 되면 별 차이 없다, 아그야. 같이 늙어가는 처지일 뿐."

내 말에 주변에 애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늙은이란 단어가 좋은가?

...아, 아쉬운건 일본어로 욕을 할 줄 모른다는 건데, 애들한테까지 욕을 할 필욘 없겠지.
아무튼 이 늙은이가 얼굴을 붉히더니 다짜고짜 와락 달려든다.

... 그래, 내가 말한 한 두살 차이... 지금은 엄청난 차이다. 덩치 차이가 너무 심하다.

무슨 거대한 무언가가 날 덥치는 기분이다.

퍽!

막상 눈앞에 커다란 덩치에 잠시 넋을 잃자, 곧바로 눈두덩이를 맞았다.

어린 녀석이 먼저 날 한 대 쳤다. 기분이 꽤나 더럽다.
이런 어린애 따윈 두렵지도 않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데, 개소리!

아. 꼬맹이를 상대로 진심으로 화내는 어른은 꼴볼견... 근데 지금은 나도 꼬맹인데?

퍼퍽!

난 얼굴을 맞았고, 난 녀석의 명치와 복부를 쳤다.
덩치 차가 났지만 급소였기에 어느정도 타격은 있었고, 녀석은 끅끅대더니, 일어나서 도망쳤다.

"괴물이다!"

"우와와와!"

이 한마디까지 내뱉어주면서. 우와, 삼류 히어로물에서 악당이 할 만한 소리를.

머리를 짚으려다 급히 손을 내렸다.

빌어먹을, 눈두덩이가 화끈거린다.

...이래서 애들이 싫어. 더욱이 버릇없고 제멋대로인데다 시끄러운 꼬맹이는 더더욱.

아무래도 어울리는 건 예상했던대로 그른 것 같다.

뭐, 어차피 애들과 술래잡기하고 그러는 나이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지금 이제와서 어울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흰머리... 거리를 보니, 확실히 흔한 머리색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거울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단 말이지. 아니, 애초에 이 시대에 거울은 있나?"

귀 옆으로 휘날리는 흰 머리를 애써 무시하며, 비척비척 걸어서 유곽으로 향했다.


* * *


"어머! 친구들과 싸웠니, 카오루? 얼굴 좀 봐... 시퍼렇게 멍이 들었네. 얼음찜질 좀 하려무나."

"아, 네. 혹시.. 얼굴을 비출만 한 거 있나요?"

"그런 시퍼런 얼굴 봐서 뭐하게?"

"... 그냥요."

아야메는 내게 화장할 때 쓰는 거울을 내밀었다. 구리 거울은 아니다만 그렇다고 현대에서 쓰는 거울만큼 선명한 건 아니었다.

... 도대체 이건 무슨 거울이지. 이걸로 얼굴을 비추고 살다간 없던 우울증도 생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거울을 들고 찬찬히 살폈다.

... 그리고 내팽겨치듯 거울을 아야메에게 돌려줬다.

"거 보렴. 그러게 멍든 얼굴을 굳이 보겠다고."

"어머니, 한 가지만 물을께요."

아야메는 거울을 받아들며 미소짓는다.

"별일이구나. 말을 땔 때도 한 번도 뭘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는 애가."

"아버지 누구에요."

"....!"

"솔직히 어머니는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근데 얘기해 주질 않아서 굳이 묻질 않았는데, 알고 싶어요."

"가, 갑자기?... 자, 잘 모르겠는데."

"죄다 흰 머리에 붉은 기가 도는 검은 눈. 알비노가 후세한테까지 전해지는 것 까진 잘 모르겠는데... 애들 반응을 보니까 흔한 것도 아닌데, 어머닌 저랑 닮지 않았어요. 그럼 아버질 닮았다는 건데. 아니면, 어머니는 친 어머니가 아닌건가요?"

"아냐! 넌 배아파 낳은 내 아이가 맞아, 카오루."

아야메가 급하게 소리치듯 대답했다가 너무 흥분했다싶은지 이번에는 좀더 부드럽게 말을 했다.

"그리고 배아파 낳지 않든 배아파 낳았든 중요한 건 내 아들이란 거지, 그건 변함 없는거야."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알고계시는 거죠? 흰 머리에 붉은 눈의 사내를 잊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이름은 모르겠다만... 백야차라고 불렸던 사내란다. 혹... 아버지
를 찾을 생각이니?"

"...... 아뇨, 나중에요. 지금은 그냥 궁금했던 것 뿐이니까요."

그러자 아야메는 안도하는 건지,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쉰다. 그리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지금은 낮이니까 말이다.

나는 거울을 다시 든다. 검은색 눈에 약간 붉은 기가 돈다. 머리는 흰색에 약간 웨이브진 반 곱슬이다. 어미가 직모니까 아비가 곱슬이겠지. 어쩐지 아비가 죽었을 것 같은 느낌은 안든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어디서 봤더라, 이런 얼굴. 꽤나 튀는 외모니 실제로 봤다면 절대로 잊었을 리 없을텐데 말이지.

게다가 백야차라... 그것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이다. 그것도 불과 얼마 전...... 맞아, 조카가!

'삼촌도 참, 내가 몇 번을 말해! 주인공이라고, 주인공! 주인공을 까먹으면 어떡해? 진짜 볼 마음 있는 거야? 백야차, 사카타 긴토키! 내 최애니까, 좀 기억하라고!'

새하얀 백발에 악성 곱슬머리! 백야차, 사카타 긴토키! 조카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 주인공!

"어아아아아아?!"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자 아야메와 그 옆에서 같이 자던 동료들을 죄다 깨웠다.

"뭐야, 누구야?!"

"카오루! 뭐야?!"

"나가! 좀 나가라고!"

"아아... 깼어, 깨버렸다고."

"카, 카오루... 나가서 친구들이랑 노는 건...아, 벌써 노을이 지네.."

아야메가 땀을 삐질거리며 수습하려했으나, 기생들이 다시 잠들긴 애메한 시간이었다.

"아, 젠장. 카오루 녀석."

"이걸 때릴 수도 없고, 진짜."

"다들 일어나! 준비하자!"

다들 한 번씩 노려보고 나갔다. 하지만 악의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다.

일단, 유곽에서 해야하는 일을 마쳤다. 청소와 잔 심부름 시중드는게 끝이다. 그러고 정작 일할 시간인 밤에는 잔다.

그나저나 사카타 긴토키... 기억났다. 기억 나버렸다.
지금의 나랑 왠지 느낌이 비슷했다.
게다가 아야메가 백야차라고 했다.
말도 안돼. 사카타 긴토키는... 그 백야차는... 일본의 애니 주인공이다.

난 지금까지 이곳이 단순히 시공간이 뒤틀려 발전된 과거의 일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속이라니.
......그 조카가 대강 내용만 알려준... 그리고 난 이미지만 봐온.. 그 백야차.

잠깐만. 나 지금 상상병이 도지고 있어. 애초에 난 그 애니메이션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내가 애니메이션 속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하지만 과거 일본에 흰머리와 붉은 눈을 가진, 백야차라는 인물이 있었을까?

없다.

"거짓이야. 뻥이야. 설마."

그래, 맞아. 외국인이 좀 섞여들어왔을 수도 있잖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빨리 쇄국정책을 폐지했으니 어쩌면...

근데 외국인 중에서도 알비노는...

흔치 않다. 일본에서 이렇게 조용하게 있을 수 있을까?

아니다.

이게 뭐야. 만화 속? 원작파괴? 아니, 생생한 현실에서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거고.

물론 조카만한 또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보고 싶다는 상상정도는 하지...... 다들 그러잖아? 그런데... 서른살이었던 아저씨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오고 싶어하는 꼬맹이들을 재치고 들어올 수가 있어? 아니면 정말 새로운 세계가 성립 된 건가?

뭐, 이제와서 단순히 일본의 과거나, 애니메이션이나 상관없겠지만...

아냐! 너무하잖아! 그럼 난 애니메이션의 일부가 되는거야?

아니, 아냐... 내가 이 세계로 날라와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차원으로 구성이 된 게 맞는 거야.
그 만화 작가가... 만화에 없던 주인공을 이제와 새로이 짜서 원작파괴가 되어있지 않은 이상.

아아, 모르겠다.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는데. 난 여기서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면 돼. 그거면 돼. 이제 생각은 그만하자.

"그럼 난... 내 미래를 내가 개척할 수 있는 건가? 조종된 삶을 살고 있는 건가? 백야차를 필연적으로 만나야되는 건 아니겠지?"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쓸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는 게 좋았을텐데."

한 번 암울한 생각을 하니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왜 하필 나야? 왜 나를 환생시킨 건데? 자살한 사람은 나 말고도 차고 넘치는데. 게다가 난 은혼에 대해서도 잘 몰라! 특별한 것도 재주도 없는 평범한 회사인인데! 아니, 어찌되든 다 좋아. 근데... 왜, 왜! 이 망할 놈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건데?"

급기야,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다. 이거... 긴장할 때나 스트레스 받을 때 자주 오던 증상들이었는데.

아기 때, 배고파도 어미가 올 때까지 울음한 번 터뜨린 적 없었고, 배변을 보고도 울지 않아, 어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바람에 엉덩이가 다 헐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울지 않았고, 그 때문에 아야메와 다른 동료 기생들을 걱정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운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은 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울하다. 외롭다. 무엇보다 어쩐지 허무해졌다. 암울한 감정이 북받쳤고, 아기 때, 살아남아야겠다는 다짐이 조금 무너져내렸다.

기어코 소리 없는 눈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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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10 02:51 | 조회 : 2,590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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