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부탁(1)

점심시간에 찬규 녀석이 괜한 소릴 해서 양호실 간 것만 빼면 별 일 없이 종례까지 시간이 흘렀다.
강우는 박하과 찬규, 해성이와 주로 같이 하교하는데 도중 길이 갈리기 때문에 상점가에서 헤어진다.
“엽!”
“힉! 아, 강바다 너~!”
갑자기 어깨에 뭔가 올려지는 감각에 깜짝 놀라 흠짓하면서 몸을 돌렸는데 거기에는 바다가 킬킬거리며 웃고있었다.
“너, 따라왔었어?”
“응.”
“근데 왜 그냥 몰래 따라오기만 했어? 같이 가도 상관 없었는데.”
“그거야~ 너와 둘이서만 다니고 싶었으니까 그렇지.”
“사람 다 돌아다니고 있는 도로 한복판에서 부비적 거리지 마!”
내가 다 부끄럽네!
“우리 강우 매정해졌어~!”
“밖에선 다 보이잖아. 근데 시율이는?”
“그 녀석은 서점에 갔어. 문제집 다 풀었다고 새로 사야 한다 그러던데.”
“문제 1000개 있는? 그런 걸 어떻게 푸는 거람.”
점점 보면 볼수록 이해는 안되고 글자와 백지만 보이던데.
“그치? 나도 보면 머리 아프던데. 응? 왜?”
“…….”
이게 전교 3등이라고 말을 막 하네?
“훙!”
“으헉! 아, 왜 때려?!”
“얄미워서!”
나야 그렇다 치고 시율이는 진짜 노력 많이 한다. 그런데도 그냥 조금 복습만 하다 끝내는 녀석보다도 결과가 안 나오니 시율이는 나보다도 더 얄밉다 느끼겠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좀 많이 띠꺼웠어.
“우씨~ 뭔데 갑자기….”
“시율이가 들었으면 쥐어 박았을걸?”
“어… 아~ 그래서 화났구나~. 근데 시율인 몰라도 니가 그렇게 화내면 안되잖아.”
“나도 시험 기간 동안엔 해!”
“네~ 당일치기.”
이걸 그냥….
“그 얘긴 됐어. 아무튼 마침 잘 왔으니까.”
“잘 왔다니?”
한 사람이라도 많으면 편하니까.
“저번 주에 장 못 봤잖아. 그러니까 짐 드는 거 도와줘~.”
“아아~ 갑자기 팔이…!”
“오늘 저녁 굶을래?”
진짜 냉장고 텅텅 비어서 이젠 김치와 물 밖에 없는데.
“난 그렇게 먹어도 잘 먹는데 그래도 내일 장 봐야 한단 말야.”
“그러면 오늘은 삼겹살 먹을래~!”
“고기가 싸면 해줄게. 그리고 장 본 것도 제대로 들어주면.”
“짐 들긴 싫어~. 무거운 걸.”
나도 싫어! 누가 좋아서 드냐?
“그러면 너만 찬물과 밥, 김치 뿐이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강우님! 저에게 맡기십쇼!”
“응. 믿을게~.”
시율이도 같이 있음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생각해보니 바다와 단 둘이서 방과 후에 다니는 건 오랜 만이기도 하고.
“근데 뭐뭐 살 거야?”
“어… 우선 평소에 필요한 식재료는 다 사 놔야지. 세일하면 더 사놓고. 시율이도 있었음 좋았는데. 가능하면 많이 사 놓고 싶었거든.”
“시율이 녀석… 설마 이럴 줄 알고 서점에 간다고 한 건 아니겠지?”
“시율인 빠진 적 없거든?”
괜히 들기 싫어서 별 생각을 다 하네.
“그럼 가기 전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뭔데?”
“따라오면 알아~.”
“뭔가 불안한데…….”
하지만 뭐 이상한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고 따라간게 이 날 내 최대 실수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바다가 공중화장실로 데려가서 터무니 없는 짓을 요구했을 때였다.

“역시… 넌 이런 얼굴이 가장 귀엽다니까….”
“…….”
“강우야. 지금 기분은 어때?”
“…….”
“대~ 답~!”
“읏~! 다, 당연히 부끄럽다고!”
이, 이 멍청이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이런 미친 짓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바다가 공중화장실로 데려가서 요구한 부탁은 며칠 전 시율이가 산 로더를 넣은 채 다니라는 부탁이었다. 왜 이딴 걸 학교 내에 가져왔는지도 그렇지만 이걸 가져올 생각부터 한 것 자체가 미친거지! 저번 주에도 하루 종일 넣은채로 학교에서 지냈는데다 이 녀석이 심심하면 세기를 조절하면서 작동시키니까 진짜 죽을 맛이었는데!
……근데 넣은 나도 나다. 미쳤지 내가…! 흑…….
근데 거기서 괜한 소동 일으키면 나하고 바다는 더 이상 이곳을 돌아다니지 못하는데 어쩌겠어! 경찰서에 가는 것보다도 그게 더 큰일인데.
“아니, 왜 그딴 물건을 들고 다니는 건데?!”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들키면 어떻게 해명할려고!
“……하지만.”
“하지만?”
“밖에 있을 때도 그런 귀여운 모습이 보고 싶은걸~.”
“산뜻한 얼굴로 미친 소리… 흐읏~?!”
갑자기 밑에서 저릿한 감각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쾌감이 뒤섞인 감각에 순간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으으…! 진짜 짜증나……!
“괜찮아?”
“이게 누구 때문에 그런데…!”
진짜 이럴 때만 진성 변태가 따로 없네! 오늘 시율이에게 이를거다!
“그러니 평소보다 빨리 가야겠지~?”
바다의 말대로 남들이 이상하게 보기 전에 최대한 빨리 보고 가야한다!
“그래도 학교에서와 달리 이번엔 속옷이 젖을 일은 없을 거야.”
“그거야 그렇겠지! 근데 학교에서 했던 것 보다도 더 심하잖아!”
진짜 울고 싶어도 못 울겠어!
“그럼 그것까진 하지 말 걸 그랬나? 아무래도 못 참겠으면 그것만은 풀어줄게.”
“…….”
큭…! 이게! 이 상황에선 오히려 싸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돼, 됐어…. 빨리 장 보고 풀래…….”
“너도 은근 즐기고 있네 뭐~.”
즐겨~?!
진짜 집에서 두고보자!
이번엔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울릴 거야!
“우선… 야채 가게부터 가자.”
“야채 가게만 가는 거야?”
“큭…! 아니….”
진짜 다 알면서 일부러 물어보긴!
“정육점… 아니 그냥 마트부터 갈까……. 오늘 고기나 야채 싸게 팔 수도 있으니까.”
“저번에 야채는 싸게 판 적이 별로 없다고 하지 않았어?”
언제 신경썼다고!
“호, 혹시 모르잖아.”
“난 어딜 가든 상관없지만~.”
그러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내 뒷목을 쓰윽 만졌는데 로더 탓인지 평소보다도 훨씬 민감하게 느껴져 간신히 몸이 떨리는 걸 참아냈다.
“너, 너어~! 진짜 좀 이따가 두고 봐~!”
“귀엽네~.”
진짜 짜증나!
더 이상 다투다간 나만 힘드니까 빠르게 끝내기로 했다.
“하아… 역시 야채는 세일 안 하고 있네.”
“오이는 싼데?”
“오이는 아무도 안 먹잖아. 역시 야채가게를 들러야 겠네. 읏~! 야! 이번엔 왜 또?!”
“그냥~. 진지한 얼굴보다도 그렇게 표정 있는 얼굴이 좋은걸.”
“진지할 땐 진지해야 한다고! 아무튼 야채는 야채가게에서 사기로 하고 고기도 싸게 팔진 않네…….”
역시 피곤한 걸 참고 주말에 봤어야 했었다. 주말에는 세일 하는 품목이 많으니까.
“그럼 마트에선 아무것도 안 사?”
“아니… 뭐 사야 할 게 있는 것 같은데… 하아…….”
이젠 바다 녀석이 스위치를 작동시키지 않는데도 몸이 달아오르고 밑이 근질거린다. 생각보다 빠르게….
“음… 좀 심했나…. 괜찮아?”
“어? 뭐가…?”
“로더.”
“당연히 심했지…. 집에서라면 모를까…….”
겨우겨우 태연한 척 관리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너, 진짜 오늘 집에서 두고 봐~.”
“흐응~ 빼달라고 하면 빼줬는데~.”
“이 상황에서 어떻게 빼냐!”
“아니 화장실에서. 하지만 그 모습을 보니 관둘랜다. 좀 더 힘내봐~.”
“뭐… ~~!!”
가, 갑자기 이렇게 올리면…!
‘미, 미치겠네…!’
엉덩이에서 갑작스런 진동에 나도 모르게 쌀 것 같단 생각을 했는데 바다가 채운 또 다른 것 때문에 나오지가 않았다. 그건 다행인데 다른 쪽에 문제가 생겼다.
‘뭐, 뭐야 이거…! 이런 감각은……!’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어, 야! 괜찮아?”
“너, 너 진짜…!”
“자, 잠깐만! 여기서 울면 안 된다고!”
울긴 누가!
“자자. 우선 일어날 수 있겠어?”
“이, 일단은… 근데 뭐야 이거…. 뭐랄까… 엄청 욱신거리고 근질거려…….”
“그런 기능을 하게 해주는 거니까. 아무튼 못 푸니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참아 봐~.”
“젠장…….”
풀면 분명 강제로 나오겠지…!
아무튼 지금은 진짜 남들에게 티만 안 났음 좋겠다.
이런 모습 보이면 앞으로 밖에 못 돌아다닐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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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이번 화 신고 2020-01-04 23:50 | 조회 : 2,527 목록
작가의 말
순수한O2

자유연재라지만 새해를 지나 올려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2019년도에 좋은일이 많았던 분들은 2020년인 올해도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2019년도에 안 좋은 일이 많았다면 2020년도에는 그 일이 잊혀질 정도로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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