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학교에서

“아흑….”
“야, 왜 울어?”
수업시간. 나는 눈물을 흘리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해성이는 왜 우냐고 물었고.
근데 이 녀석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공 잡겠다고 무턱대고 돌진하면 어떡하냐?!”
저 돌머리에 정통으로 맞으니 얼굴이 욱신욱신 거린다.
“아~ 미안미안. 공만 쫒다가 못 봤어. 어? 너 코피난다.”
“아, 또? 아 진짜….”
어젠 자다가 바다에게 발길질 당해서 코피 났었는데.
“잠깐 화장실에 갔다올게.”
“오냐~ 빨리 막고 와라!”
생각보다 세게 맞았는지 코피가 멎을 기세가 안났다. 그래도 뭐 피닦고 막아두면 되겠지.
“…후우. 해성이 자식. 억…!”
코피가 안 나오는 걸 확인하고 화장실에 나왔을 때 한 여학생과 부딪쳤다. 여학생의 복장은 체육복이 아닌 교복이었다. 타이 색은 나와 똑같은 1학년인데….
“……흥!”
근데 날 보자 인상을 팍 찡그리곤 가버렸다. 뭐야 저거?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이번에 아이스크림 내기 걸었는데!

“아~! 진짜 바다 녀석! 진짜 끈질기네! 결국 아이스크림 못 먹었네.”
내기 축구는 결국 내가 속한 팀이 지고 말았다. 바다와 시율이는 나와 다른 팀이어서 느긋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있고. 근데 난 뭐람. 아이스크림은 커녕 코피나 흘리고.
“바다가 널 계속 막아댄 덕이지. 유달리 너만 끈질기게 잡던데? 저 녀석에게 뭐 안 좋은 짓이라도 했냐?”
“안 했거든? 그나저나 엄청나게 맛있게도 먹는구만?”
참고로 해성이와 찬규도 바다와 시율이가 속한 팀이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채 쉬고 있었고.
“근데 너 코피는 괜찮아? 저 돌머리 엄청 딴딴하잖아.”
그 돌머리란 바로 신해성. 체육시간에 저 석두를 정통으로 내 코에 박아버린 녀석이다. 아니 돌 수준이 아니다.
“코피는 이제 괜찮은데 엄청 아픈데. 저 돌머리 완전 쇠망치야.”
머리를 강철로 코팅을 했는지 원….
“돌머리고 쇠망치고 사람 머리를 그렇게 말하지 마, 이 바보들아!”
박하와 내 말에 해성이는 발끈했다. 나 참. 열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라고.
“강우야 코피는 괜찮아?”
바다가 와서 코피는 괜찮냐고 물어봤다.
“응? 어. 아픈 것만 빼곤 괜찮아. 그나저나 너 임마, 나만 끈덕지게 잡더구만?”
덕분에 축구가 아니라 러닝하는 줄 알았다.
“그거야 다른 녀석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쓰라고 바보야….”
진짜 이 녀석은….
“아무튼 그럼 됐고. 점심시간에 시간 돼? 항상 하던 것 좀.”
“또냐…. …알았어.”
“땡큐~.”
“으아~ 부비지 마! 끈적거리고 더워!”
“그래그래~.”
바다가 가고 다시 한 숨 돌리려고 하는데 박하와 찬규, 해성이의 시선이 쏟아졌다.
“왜 그러는데?”
“그냥 뭐랄까… 그냥 인사 건네는 사이 치곤 엄청 친해보여서.”
“더 나아가면 아주 부부 사이로 보이겠네.”
“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지. 게다가 또라니. 너, 바다하고 자주 만나니?”
“어? 어어…. 저 녀석 가끔 점심시간에 부탁하는 게 있어서.”
사실 뭐 같이 동거하면서 사귀니까… 그리고 박하는 바다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나와 시율이가 용납 못하고.
“…이강우.”
기척은 없는데 조용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박하, 찬규, 해성이 셋 다 움찔했지만 나는 매일 듣는 목소리니까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물었다.
“엉? 시율아 왜?”
“코는 괜찮아?”
“아~ 괜찮아. 좀 아픈 것 말곤 없는데.”
“그래. 다행이네. 근데 너, 이거 잊었잖아.“
“응? …아! 어제 숙제!”
깜빡 잊고 가방에 안 넣었구나! 큰일 날 뻔했네.
“땡큐! 고마워!”
“잊지 말고 가져가라고. 또 억울하다며 이상한 짓 말고.”
“이상한 짓이라니 너무하네. 어쨌든 고마워.”
화장실에 가는지 시율이는 밖으로 나갔고 나는 받은 노트를 확인해봤다. …라고 해도 어제 했던 대로지만.
“뭐야. 둘이 엄청 친한가보네. 같이 숙제를 할 정도면.”
해성이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어? 아아… 같이 어울리면 좋은 녀석이라고. 어제 수학 숙제가 너무 많은데다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시율이와 같이 했었어. 나보다 머리가 좋으니까.”
“그래? 나도 어제 숙제 때문에 머리 싸맸는데. 혼자 말고 같이 했음 편했으려나?”
해성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다. 이유는 간단하니까.
“쇠망치와 평범한 머리 둘이 모여봤자 답은 안 풀리거든?”
공부 못하는 머리 둘이 모여봤자 뭘 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오냐! 그 쇠망치에게 한 번 더 맞아봐라! 일로 와!”
“필요없어! 저리 가!
아직도 코피가 아직 안 멈춰서 휴지 갈고 있단 말야.
“근데 걔 공부 잘했어? 알질 못하니까 얼마나 잘하는 지 모르겠어. 보기에는 잘 할 것 같은데.”
“지는 보통이라고 그러던데. 내가 보기엔 그렇게 안 보이지만. 바빠도 평소에도 1시간 이상은 매일 노력하고 복습하니까.”
참고로 난 숙제 아니면 시험 직전에만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리고 바다 그 놈은 평소엔 조금씩 복습하는데 시율이처럼 1시간 이상을 넘질 않는다. 근데 쓱싹쓱싹 잘 한다.
“보기에는 전교 10등안에 들 것 같은 모습인데 의외네.”
“그래도 너희 셋보단 머리 좋구만. 그 중상위 전교에서지?”
“어. 정확히 몇 등인지 모르겠는데 십의 자리가 5였어.”
“전교생이 430명인데 50등 내외면 상위 아냐?”
동감이다. 그 정도면 상위권이지 어디가 보통이람?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근데 상위는 10등 안이라고 말하더라고. …난 100~150 안에서 노는데 말야.”
“뭔가 열받는구만. 나도 시험 때는 빡세게 하는 편인데.”
“난 200등도 못 넘었는데….”
찬규와 해성이가 그렇게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시율이 걔는 평소에도 열심히 한댔잖아. 시험 직전에만 열 내는 너희들이 억울해하면 쓰냐?”
안타깝게도 이건 박하 말이 맞다. 그 결과는 시율이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니까. 그걸 겨우 시험 직전에만 노력하는 나나 찬규, 해성이가 억울하다며 징징 짤 자격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라고. 우리 고등학생인데다 20살 넘어가면 이런 엉뚱한 얘기를 할 시간도 없잖아.”
“……엉뚱하다는 건 자각하고 있었구나. 조금 감동했어.”
난 진심으로 찬규의 말에 감동했다. 최소한 자각은 하고 있었구나.
“그 발단이 너하고 해성이거든? 어쨌든 대학생되면 자유롭게 놀 수 있단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넘어가는 고딩들은 없어. 그러니 놀 수 있는 기회는 고딩때 뿐이잖아.”
“뭐…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그게 시험과 공부를 뒷전으로 미룰 이유는 안 된다고 본다만.
“그러니 최대한 괴상한 짓을 하고 용서받을 때까진 즐겁게 보내야지!”
“저번 주에 보충 땡땡이 치고 PC방에서 4시간이나 노가리깐 녀석이 궤변은 일품이네.”
찬규의 헛소리를 박하는 궤변이라고 일축시켜 버렸다. 뭐, 궤변 맞지. 그게 공부를 게을리 할 이유는 안 되잖아. 나도 하는 건 더럽게 싫지만.
“4시간이나 PC방에 있는 것도 굉장하구만. 아, 나 화장실 갔다 올게.”
“벌써 다음 수업이냐… 나도 갈래.”
찬규도 따라와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다음 수업은 문학 시간인데 만만치 않은 쌤이라 늦으면 수업 내내 힘들어 진다. 질문에 대답할 사람을 늦은 사람만 집중적으로 시키니까.
툭.
“아, 미안.”
“…….”
부딪친 사람은 여학생인데… 체육시간에 잠깐 코피 막으러 화장실에 가던 도중 부딪쳤던 애다. 근데 이번에도 무지막지한 시선으로 날 째려보더니 가버렸다.
“우와… 엄청 무서운 눈인데. 너 쟤하고 뭔 원수 졌냐?”
“나도 몰라. 체육 시간에 화장실 갔을 때도 날 보곤 표정을 확 구기던걸.”
처음 본 사람에게 다짜고짜 원한 살만한 상판은 아닌데 말이지.
“……그냥 사소한 일에도 빡치기 쉬운 성격이려나.”
“그런 것 치곤 미간에 주름은 없었는걸.”
“최근부터 그랬나보지 뭐. 히스테리인가.”
서둘러 볼일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다행이도 아직 문학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세이프~ 세이프~.

조용히 앉아서 듣는 수업이다보니 별 일 없이 흘러 점심시간. 나는 약속한 대로 보건실로 향했다. 바다 녀석… 지는 가만히 있음 되지만 난 삭신이 쑤시는데……. 그렇다고 안 해줄 수도 없고.
“엽~.”
보건실에 도착하자 제 집 안방 침대에 앉아있듯 편한 자세로 바다는 날 맞이했다.
“뭘 엽~ 이야. 정말이지…. 네가 이상한 소리만 안 내면 교실에서도 해줄 수 있는건데…….”
“하지만 다른 놈들은 못 하잖아. 시율이는 요령이 없고.”
“요령이 없다기 보다는… 네가 도중 이상한 소릴 많이 하니까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거 아닐까?”
전에 ‘시율아~ 주인님 사랑해요 라고 불러줘~.’라고 말했다가 어깨 으스러 질뻔했다고 나한테 매달렸지. 근데 그 전부터 까불까불 거린데다 저 말이 결정타여서 일어난 사태였던 거였다.
“10분간만 할거야. 여기 양호 선생님도 한 성격 할 거 같으니까.”
“얼마든지 해도 돼. 점심시간 끝나기 10분 전에 오시거든.”
“나도 점심은 먹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밤새도록 자위했냐는 질문만 떠올리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내가 뭔 철면피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율이처럼 포커페이스가 있는 것도 아니요, 바다처럼 넉살이 좋거나 뻔뻔한 것도 아니다. 평범한 멘탈을 가진 나로선 갑작스런 훅을 버틸 수가 없었다.
“흐응~ 그런 말 들었구나아~. 하긴 우린 거의 항상 뜨~거운 밤을 보내니까.”
“닥치고 가만히나 있어 바보야! 나도 좋긴 하지만 남들에게 괜히 알리고 싶진 않으니까!”
“네네~. 그럼 부탁할게.”
“하아… 진짜.”
이 녀석이 또 뭔 이상한 소릴 하기전에 후딱 시작해야지.

“……진짜, 뭐야 그 놈.”
1학년인 서아연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 놈을 생각했다.
예전에 심하게 사고를 당한 건지 항상 붕대가 안 감긴 곳이 없었던 녀석으로 오늘 영어 선생님이 프린트물을 깜빡해 교무실로 향했을 때 그 녀석과 부딪쳤다. 반팔, 반바지인 여름에 입는 체육복을 입고 있어서 팔과 다리에 감은 붕대가 더 눈에 띄었었다.
“……흥!”
자각하기도 전에 콧방귀를 뀌어버리고 가버렸다. 멀어지고 나서야 깨달아 좀 놀랐지만 잊어버리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그 녀석. 이름은 모르는데 은근히 바다가 먼저 접근해 치근덕 거리는 유일한 녀석이었다.
여기저기 다쳐 병약해보이는 세상물정 몰라보이는 순딩이 같은 인상 주제에 성격은 인상에 어울리지도 않게 활기찼다.
내가 바다에게 말을 걸려고 하면 거의 바다는 그 놈에게 먼저 말을 걸어 어울렸는데 그 때마다 겉으론 툴툴대지만 남자새끼 주제에 묘하게 더 화기애애 거려서 짜증이났다.
수업이 끝나고 바다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 권유를 하러 바다네 교실로 향했는데 이번에도 바다가 먼저 그 녀석에게 다가와 치근덕거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우야 코피는 괜찮아?”

저 녀석의 이름이 강우라고 하는 구나. 이제야 알았다.

“응? 어. 아픈 것만 빼곤 괜찮아. 그나저나 너 임마, 나만 끈덕지게 잡더구만?”
“그거야 다른 녀석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게 장난끼도 있어보이는데 뭐랄까… 따뜻한 느낌도 있는 것 같았다. 친구를 대할 때와는 다른… 그런 느낌이.

“쓰라고 바보야….”

그리고 강우라는 녀석도 한심한듯 말하는 것 치곤 그냥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아무튼 그럼 됐고. 점심시간에 시간 돼? 항상 하던 것 좀.”

뭐? 점심시간에? 그것도 항상 하던 거라니?
저 녀석과 뭔가 하는 건가?!

“또냐…. …알았어.”

저 자식…! 바다와 무슨 일을 하는 건데?!

“땡큐~.”
“으아~ 부비지 마! 끈적거리고 더워!”

저 광경을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과 동시에 처음으로 저 강우라는 녀석이 부러워졌다. 저 녀석이 아니라 내가 바다와 저런 관계가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내가 아니라 바다 곁에 있어서 내 고백 타이밍을 방해한 저 밉살스런 녀석이니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자니 수업 시간 내내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려 했던 의욕이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바다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분명 권유를 해도 거절당할 게 뻔했으니까.
툭.
“아, 미안.”
“…….”
방금까지 바다와 즐겁게 얘기했던 강우라는 녀석이었다.
순간 짜증과 원망이 확 치솟았다.
대체 왜 바다가 널 그렇게 좋아하는 건데! 하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말은 안 나오고 결국 고개를 돌려 교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말하기엔 뭔가 구차하단 생각이 든 것도 있는데 …사실 다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기가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
그 후 다음 수업시간의 내용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 녀석과 바다의 모습이 생각나 제대로 듣질 못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 속이 쓰려 보건실에 갔는데.

“앗! 하아아~ 강우야… 좀만 더 쎄게…. 흣…!”
“아~ 진짜! 이상한 신음 좀 흘리지 말란 말야! 여기 학교라고!”
“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데… 절로 신음소리가 난다구우…….”
“아 그러셔~? 난 삭신이 쑤셔서 피곤하고 환장할 지경이다만?”

“뭐, 뭐야… 이 소린?”
대화 상대도 상대지만 내용이 더 눈에 들어왔다.
우선 목소리는 틀림없는 바다와 강우라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뭔가 이상하지만 쾌락에 잠긴 신음 소릴 내고 있으면서 강우에게 매달리는 듯한 소릴 하고 있었고 강우라는 녀석은 짜증은 냈지만 바다가 말한대로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체 둘이서 뭘 하길래 이런 야리꾸리한 신음소리가 나는 건데?!
설마…!

“강우야… 밑에도 부탁할게. …해줄거지?”
“앉은 채로 해주기 힘드니까 누워. 진짜… 이런 걸 왜 학교에서 부탁하는 건지.”
순간 내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섞여 최악의 상상이 그려졌다.
지금 저 두 사람이 남자끼리 사귀는 것도 사귀는 거지만 지금 양호실에서 서로…… 그런 짓을 하고 있다며언…!!

“흐아아앙~ 기분 좋다아~.”

쾅!

“잠까안! 너! 바다에게 무슨… 짓… 을…?”
신음 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박차고 그 빌어먹을 녀석에게 소리쳤다.
근데….
“하? 보면 몰라? 이 자식 안마해주고 있잖아. 이 녀석 틈만 나면 나한테 어깨 주물러 달라고 하고 허리 주물러 달라고 난리니까.”
“…흐에? 누구?”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풀어지면서도 뭔가 바보 같은 인상의 얼굴이었다. 바다는 녹는듯한 흐리멍텅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 난! 서아연이라고 해! 저… 근데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바다가 침대에 뒤로 누워있고 그 위에 그 놈이 올라타 허리를 두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안마 해주고 있다고 했잖아. 이 녀석, 어깨만 좀 주무르면 이상한 얼굴이 되고 신음까지 흘리니까 다들 이상한 눈으로 본 단 말야.”
밉살스런 녀석의 말에 머릿속에 그려졌던 상상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같은 동급생인 남자에게 부탁하고 그 부탁을 받아줘 안마를 해주는 모습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웠다.
“다른 놈들은 귀찮다고 안 해주고 그렇다고 여자애한테 부탁하면 오해사니까 내가 해주는 거지. 안 해주면 내내 끈덕지게 달라붙으니까….”
“안 해주는 니가 나쁜거지.”
“거의 매일 부탁하는 니가 나쁘다곤 생각 안 하는거지?”
“으아아아?! 허, 허리 나간다아?!”
뿌득뿌득 뼈가 눌리는 소리가 나면서 바다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 바닥을 탕탕 쳐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힘을 가해 누르면서 주무르고 있었다.
“그래도 시원하잖아? 이렇게 안마 한 번 받으려면 1시간에 3만원 정도 한다고?”
“아야야야! 사, 살살해 줘!”
“그러고선 내일도 찌뿌둥하다면서 부탁할 거잖아.”
“야! 바다가 아파하고 있잖아! 그만해!”
내 말에 강우란 녀석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근데 넌 누구야?”
“뭐?”
갑자기 누구냐는 말에 뭘 말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데 나보고 그만하라 말라야? 처음 들이닥치자마자 무슨 짓이냐고 말하질 않나. …잠깐. 너 체육시간과 전 시간에 나하고 부딪쳐서 엄청 째려봤던 녀석이잖아?”
쳇. 하필 오늘 두 번이나 부딪쳐서 기억에 남겨버렸나보다.
“그냥… 별 거 아냐. 그나저나 바다가 싫어하잖아.”
“…너 은근 눈치 없단 소리 많이 듣지?”
“……갑자기 뭔 소리야?”
“이게 싫어하는 걸로 보이냐? 아주 혼자서 극락간 표정이구만.”
녀석의 말에 바다의 얼굴을 봤는데 그 말대로 편안함에 헤벌쭉해 푹 녹아버린 얼굴이었다. 바다가 멋있는 인상 보다는 밝은 인상을 더 많이 보였지만 지금처럼 바보 같은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녀석 생각보다 근육이 잘 뭉쳐서 어지간한 힘이 아니면 누가 주무른 감각도 못 느껴. 덕분에 난 온 힘을 다해서 눌러야 하거든. 야, 그만 일어나!”
등짝을 짝 때리곤 녀석은 바다 위에서 일어났다. 바다도 기분 좋았다라고 말하곤 일어났고.
“다음은 내가 해줄….”
“됐어. 다른 사람 있는데 보이고 싶진 않거든.”
“아, 그랬지. 근데 너 어디 아파? 지금 보건 쌤이 없어서 좀 곤란한데…….”
사실 속이 쓰려서 온 거긴 하지만… 방금 광경을 보고 속이 쓰린 건 싹 잊어버렸다.
“아, 아냐…. 이젠 괜찮아졌어.”
“그래? 다행이다. 강우야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어. 오늘 반찬은 맛있는 거면 좋겠는데…….”
짜증나지만 저 녀석이 부러웠다. 나는 바다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였는데 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친해보였으니까.
“저기. 보건쌤이 없으니까 문 잠가야 하는데.”
“어? 어….”
바다의 말에 상념을 멈추고 보건실에서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은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이좋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같은 남자라면… 저렇게 스스럼 없이 얘길 나눴겠지.”
왠지 한숨만 푹푹 나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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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9-22 23:31 | 조회 : 3,283 목록
작가의 말
순수한O2

글을 쓸때 가장 쓰기 힘든 것이 바로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어요. 차라리 누군가와 싸우는 판타지라면 그런 기분이 덜 느껴지지만 이렇게 평범하게 감정이 상하거나 어두워지는 글을 쓰면 쓰기가 괴로워지는군요.

후원할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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