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주말 (3)

데이트라고 해도 우리들끼리 갈 수 있는 곳이 많지도 않은데다 애당초 살고 있는 곳이 그렇게 많이 즐길 거리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상점가나 번화가 정도인데 거기도 대부분 아이쇼핑이나 뭐 사는 정도라 즐기기엔 그랬다.
“DVD방에라도 갈 수 있음 좋은데 말야.”
바다가 그렇게 말했다.
“저번에 같이 갔는데 미성년자는 안 된다며 거부했지”
DVD방에서 거사를 상당히 많이 치루는가보다. …뭐, 그때 우리들도 단순히 DVD보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셋이서만 있는 장소에서 데이트를 하는 게 좋긴한데 안타깝게도 그런 장소가 없다.
“영화관에 간다해도 우리 셋 다 영화는 뭐 재밌는지 모르잖아. 기껏해야 TV에서 어쩌다 방영되는 영화를 본 게 전부고.”
“무엇보다 영화는 핑계고 그냥 BGM삼아서 우리 할 것만 했잖아.”
시율이가 말하는 그 할 것은 항상 하는 그것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공포영화 같은 건 예외고.
“밖에선 그런 거 못하니까 그냥 배경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네.”
“그렇지 뭐. 1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집중 안하고 잘 걸?”
그런고로 우선 영화관은 기각.
“그러면 고양이 카페는 어때?”
다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시율이었다.
근데 이 근처에 고양이 카페가 있었나?
“야. 이 근처에 고양이 카페가 있었어?”
바다도 금시초문인가보다.
“최근에 생겼더라고, 한 번 가봤는데 인적도 드물고 분위기가 좋아보였어.”
고양이라….
“고양이 만져보고 싶어?”
“어? 아, 뭐… 만지면 좋고. 못 만지면 뭐….”
근데 전에 길고양이 한 번 만져보려고 했다가 할퀴고 물리고… 아니 그 길고양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 고양이가 그런다.
“하지만 너 전에 길고양이 한 번 만져보려다 오른손 물렸잖아. 그 뒤도 막 할퀴어져서 결국 의욕을 잃었었지.”
그 때 결정적으로 의욕을 잃었던게 바다가 손을 내밀땐 갸릉갸릉 했으면서 내 손은 팍 치곤 휑 가버려서 그 날 이후 먼저 접근한 적은 없었다.
“……이번엔 카페에 있는 고양이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걸? 훈련받은 고양이니까.”
“하긴 카페에서 기르는 고양인데 길고양이처럼 막 할퀴거나 치겠어? 이번엔 괜찮겠지.”
“그러… 겠지?”
시율이와 바다의 말에 결국 고양이 카페로 가보기로 했다. 정말 괜찮겠지?
위치는 시율이만 알고 있었으니 시율이가 앞장섰고 나와 바다는 뒤에서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고양이 카페는 시율이의 말대로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다. 그 인적 드문 곳은 차도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이지만 주변에 나무와 화단이 있어 산책을 즐겨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 길목에 작지만 깔끔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가 있었다.
“…이런 조용한 곳에서 집 짓고 여생 보내고 싶다.”
그래서 무심코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아직 열 일곱인데 벌써부터 여생이 생각나는 거야?”
“시율이 말대로 분위기가 좋아서.”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외관에 맞게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목재와 바닥에 앉아서 고양이를 만질 수 있게 양탄자가 깔려있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7마리 있었는데 7마리는 제각각 생김새가 달랐다.
“어서오세요. 일행이신가요?”
가게엔 여자 직원과 남자 직원이 한 명씩 있었는데 아무래도 외모를 보면 나이가 많은 여자 직원이 이곳 사장 같고 남자 직원은 이제 대학생이 된 것 같은 인상이라 아르바이트생일 것 같았다. 참고로 우리들에게 말을 건 사람은 여자 직원이었다.
“네. 세 명이요.”
“알겠습니다. 한 명당 입장료 9천원입니다. 그리고 이 손 소독제로 소독하시고 원하는 곳에 앉아주세요.”
손 소독제로 소독하란 말에 왜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러는게 당연했다. 밖에 돌아다닌 사람들의 손이 깨끗할 리 없고 그런 손으로 만졌다간 고양이들에게 어떤 악영향이 될지 모른다. 만약에 병이라도 걸린다면 당연히 주인 입장에선 걱정이 되고.
그리고 고양이 카페는 처음인데 생각보다 동물 냄새가 전혀 안 났다. 아무리 카페라 해도 동물이 있다보니 동물의 특유 냄새가 나니까.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얌전하다. 물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긴 하는데 공격적이지 않았다.
“강우야. 바로 할퀴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멍하니 있음 안 된다.”
“…멍하니 안 있었어.”
아무리 고양이에게 다짜고짜 공격당하지 않는다고 멍하니 있진 않지. 그렇고 말고.
“…그러면서 고양이에게 계속 손을 내밀었다 뺐다 하는군.”
“헉.”
어느새?!
“이건… 아무리 카페라지만 보자마자 공격하지 않으니까 그냥….”
“그래~?”
바다가 이상한 웃음을 짓지만 신경끄고 둘이 있는 자리로 가 메뉴판을 봤다.
“마실 것 밖에 없네.”
“아무래도 먹을 게 있음 고양이들이 먹을 수도 있으니까 안 파는 거겠지. 고양이만 아니고 대개 동물들이 먹으면 위험한 음식들이 많으니까.”
“그렇구나…. 그러면 먼저 밥 먹으러 가길 잘했네.”
“응. 마실 것만으론 배가 부르진 않으니까.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마실건데 너희는?”
시율이는 단 걸 잘 안 마신다. 기본적으로 블랙이고 단 건 어쩌다 한 두 번 정도.
“나는 자바 칩 프라푸치노.”
반대로 바다는 단 걸 엄청 좋아한다. 비주얼만 봐도 어떻게 저걸 마실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난 요거트 스무디. 플레인은 전에 먹어봤으니까 망고로 해볼까.”
나는 일단 먹고 보자다.
시율이가 벨을 눌러 점원을 부르고 정한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고양이들을 쳐다봤다.
고양이는 7마리가 있었는데 두 마리는 자고 있었고 3마리는 어느 새 바다 곁에서 갸릉갸릉 거리고 있고 나머지 2마리는 시율이 곁에서 부비적 거리고 있었다.
그래. 내 옆엔 단 한 마리도 안 왔다.
“…….”
“…어… 강우야. 한 번 만져볼래?”
“……괜찮아. 이럴 줄 예상은 하고 있었거든.”
바다가 한 마릴 안아서 나에게 내밀었지만 나는 사양했다. 안 오는 녀석이 내가 손을 내밀면 어떻게 하겠는가? 뻔하지. 곧바로 손으로 내 손을 팍 쳐버릴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응. 만족하지….”
“그런 것 치곤 울 것 같은 얼굴이다만.”
말 안 해도 알 거든? 눈시울이 아프니까.
“그러니 내가 대신 달래줄게. 일로 와.”
그렇게 시율이가 말해서 난 말 없이 시율이 곁으로 가 고양이에게 버려진 쓸쓸함을 달랬다.
“아! 치사하다! 나도 낄래!”
“……고양이 버려두면 안 된다.”
내 말에 바다는 주변에 고양이들이 찰싹 붙어있는 걸 보고 주춤거렸다. 나한테 오지 않는 건 슬픈 일이지만 바다는 그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거잖아. 그런 녀석들이 바다의 관심이 끊어지면 슬프겠지.
“…역시 내 옆엔 한 마리도 안 와……. 그 중 한 마리는 방금 내가 있던 곳이었는데 빙 돌아서 다른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가버리고.”
뭐… 됐다 이미 예상한 일이거니와 지금은 시율이에게 쓰다듬어지고 있으니까 이걸로 만족이다.
“주문 하신 거 나왔습니다. 그럼 천천히 즐겨주세요.”
즐긴다라……. 지금 고양이들이 내 옆에 한 마리도 없는데요.
-냐야~
그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잠에서 깼는지 울음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안 오고 역시 빙 돌아갔고 시율이 곁으로 가버렸다.
“…….”
“……어… 음… 고양이 한 마리 만져볼래?”
“됐어! 그냥 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래!”
아무래도 난 평생 동물들에게 호감 사긴 글렀나보다. 길고양이들은 그러려니 했다. 사람 손 안 탔으니 그러려니 했다고. 근데 사람에게 길러진 고양이들조차 한 마리도 안 온다.
“……뭐, 그래도 길고양이와 다르게 먼저 선빵을 날리진 않네.”
미묘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지만 고양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율이와 바다 옆에서 갸릉 거리고 있었다. 뭐… 됐다. 오늘은 시율이와 바다와 데이트니까.
“…음. 강우야, 혹시 가고 싶은 데 있어?”
“그래! 다른 데 가고 싶은 데 있음 거기로 가자.”
“가고 싶은데? 딱히 생각이 안 나는데.”
솔직히 지금도 나쁘지 않아서.
-냐아~
그 때 마지막 고양이가 잠에서 깼다. 그 고양이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역시 우리들이 있는 쪽으로 왔다. 뭐… 이 녀석도 시율이 아님 바다 곁으로 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
내 쪽으로 오더니 옆에 기대 누웠다…?
“어어어?! 고양이가…?!”
지금 스스로 와서 기댄 거 맞지?
“드디어 강우에게 오는 고양이가 생겼어!”
“기분이 어때?”
고양이들이 있는 카페여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바다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반응으로 박수를, 시율이는 감상을 물었다.
“……그냥 자기 편해서 내 쪽으로 온 거 아닐까?”
이 고양이 눈 감고 기댄게… 아무래도 좀 더 자기 편한 곳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바보야. 더 자고 싶다면 아까 있었던 요람에서 자면 됐다고.”
“그, 그럴려나…?”
근데 이제까지를 생각해보면 고양이건 뭐건 다 피해갔잖아. 당연히 뭐 바라는 게 있다고 의심하지!
“아아… 너 엄청 굳어있거든? 우리들과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네.”
“그, 그거야 보통 긴장이 되잖아…!”
이런 상황은 처음인데!
“그래도 긴장만 하면 모처럼 온 고양이 힐링을 못 받잖아. 일단 긴장 풀고 천천히 접근해보자고.”
시율이가 등을 쓸으며 말하니 쿵쿵 거리는 심장이 조금 가라앉았다. 바다는 그런 모습을 뿌루퉁한 얼굴로 바라보다 결국 나와 시율이 곁으로 왔다.
“둘이서만 꽁냥거리냐. 그리고 고양이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안다구.”
“알았으니까 둘 다 너무 흔들지 마. 만약 이 녀석도 도망가면 농담 아니라 울 것 같거든?”
처음으로 알아서 접근해 준 고양이다. 그런데 진짜 이 녀석조차 떠나가면 엄청나게 충격받을 것 같다.
“우선 자고 있는 것 같으니까 머리부터 등까지 천천히 쓰다듬어 봐.”
“어? 어어…! 머리부터 등까지 말이지….”
하지만 엄청 떨려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너 임마 너무 떨고 있잖아. 하아… 도와줄게.”
시율이가 내 팔목을 잡아서 고양이의 머리가 있는 부분으로 끌었고 손바닥에서 고양이의 털과 피부의 감촉, 그리고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엄청 부드러워.”
고양이가… 털이 이렇게 부드러웠구나. 살갖도 그렇고.
-…냐앙?
그 때 고양이가 눈을 떠 날 쳐다봤다. 눈은 오른쪽은 노란색, 왼쪽은 푸른색인 오드아이였다. 그냥 검은색 얼룩 고양인 줄 알았는데. 근데 이 녀석… 눈을 떴는데도 다른 데로 안 간다.
-냐아~
그러기는커녕 내 품으로 들어왔다.
“역시. 네가 마음에 들었나본데?”
“지, 진짜로?”
시율이의 말에도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 한 번 물어봤고 바다가 내 등을 탁 쳤다.
“그렇다니까! 넌 너무 자신에 대한 호감에 자신감을 안 가진다니까. 봐, 이 녀석은 좋아하잖아. 다시 한 번 쓰다듬어봐.”
“어… 응…!”
이번엔 떨지 않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양이는 이번에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은 듯 갸릉거리며 내 배를 머리로 쓰다듬었다.
“…방울이 좋은 녀석이야…!”
고양이를 소개하는 판에 이 녀석 이름이 ‘방울’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스스로 다가온 고양이라 못 잊을 것 같다.
“그렇게 쓰다듬지만 말고 놀아주기도 하라고. 여기 고양이 전용 장난감도 있으니까.”
“그, 그렇지. …근데 어떻게 놀아?”
“기본적인 강아지풀부터 시작해보자고. 우선 이런식으로 고양이 앞에다 흔들면….”
“고양이 점프력 장난 아닌데?”
“그렇지? 너도 해보라고.”
“응! 방울아~.”
-…! 냥!
오오…! 내가 흔들어주는 강아지 풀에 반응해주고 있어!
“크흑… 진짜 감동이네.”
“어어? 울면 안 된다고?”
“그렇게나 만지고 싶었구나. 그래그래 울면 안 된다?”
“아, 안 울어! 누가 운다고…!”
인생 처음으로 동물들에게 거부당하지 않고 고양이 카페에서 마음껏 즐겼다. 고양이 장난감으로 고양이와 놀고 시율이와 바다와도 어울려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가려고 할 때 방울이가 마지막까지 따라와 쳐다보는 모습이 나도 모르게 뭉클해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강우야~ 남편 몰래 바람 피우면 못 쓴다?”
“바람 안 피워. 단지… 지금껏 먼저 다가와 준 고양이는 방울이가 처음이니까.”
“나와 바다도 와 줬어. 그리고 지금도 같이 있고.”
“알아. 그래서 너희 둘 다 엄청 좋아한다고.”
지금 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벌써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어차피 내일이 일요일인데 더 놀다 돌아가자. 다음은 어디로 갈까?”
“아까는 고양이들이 있어서 조용히 놀았으니 이번엔 떠들썩하게 놀아보자! 노래방가자!”
바다가 노래방을 제안했고 나는 아는 노래는 별로 없지만….
“좋아. 나도 오늘은 한껏 지르고 싶으니까. 시율아 넌?”
“당연히 나도 갈래.”
이번엔 상의할 것도 없이 정해졌고 곧바로 노래방으로 향했다.
이렇게 밤이 될 때까지 우리 셋은 오늘 신나게 놀았다.

7
이번 화 신고 2019-06-09 03:29 | 조회 : 3,206 목록
작가의 말
순수한O2

2년만에 이어서 써봤습니다. 사실 비축분이 없고 시간이 나고 생각이 나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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