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생님. 이거 좀 드시면서 하세요."



또다시 반복되는 우리의 생활. 요즘의 그는 점점 더 바빠져만 간다.
이제는 예전보다 좀 여유롭게 사나 싶었는데, 워커홀릭에 빠진 그는 갑자기 어디에 확 꽂힌 건지 작업실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작업실 안의 공기를 뒤흔들만한 것이 나라는 존재.


"선생님. 인터뷰 요청 왔었는데, 그냥 거절 할까요?"


원래같으면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거절했을 텐데, 왠지 예전 갤러리 오픈식에서 깽판 부렸던 여기자가 속한 곳이라서 괜히 한번 물어봤다.


"어디길래?"


역시 그는 뭔가 다른 곳이라는 걸 눈치 챘나보다.
나는 아마 이 사람 손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저렇게 내 말 하나, 내 목소리 하나에 온 신경이 반응을 하는 사람이니까.


"예전에 그 머리 잘린 기자 있잖아요...."
"안한다고 해."


그는 말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번복도 하지 않는다.
나는 순순히 뒤로 돌아 핸드폰을 열었다.

뭘까, 이 내심 아쉬운 감정은.
사실 선생님이 난처한 질문말 골라서 하는 기자의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잘라버렸을 때도, 그 사람에게 한 방 먹이며 발악하는 것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때도
나는 그가 전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때문에 그런 튀는 행동을 했다는 것에 감동이 나서 당장이라도 그를 끌어안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마 이번에 인터뷰 요청을 한 것도 뭔가 하나 꼬투리 잡으려고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저렇게 나오시니까 예전같이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잖아.

나는 나쁜 마음이지만서도 못내 그것이 아쉬웠다.


"전시회가 얼마 안 남았어요. 그건 알아주세요."


이번 전시회는 좀 특별한 전시회니까.




*



그는 나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가끔은.

사실 그의 예술활동에 나 때문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추운 그 날 나를 지옥 속에서 구원해준 그에게 나를 맡기는 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나 하나 때문에 평생을 그가 살아온 인생이 뒤틀리는 것은 싫었다.


그러나 이런 내 우려와는 반대로, 그는 나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했다.
신비한 소년 그림을 발표하자마자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 그 안개 속에 가려진 그림은 순식간에 예술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나를 모티브로 내 모습을 그렸다.
아무도 모르고, 오직 그 만이 알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오색 빛깔 안개 속에 감춰진 신비한 모습의 소년을 그려냈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매일의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열광받는 다는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
비록 아무도 그 그림이 나라는 것을 모른다 할지라도.
아니, 어쩌면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그려진 모든 그림들이 결국 하나의 전시회로 나온다.
고 화백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그림들.

사실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도 가지 않고 실존 인물인지, 허구의 인물인지,
단순한 모델인지, 고 화백만의 뮤즈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추측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고화백은 입을 닫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신비함이 배가 된다.


그 전시회 역시 예약제로만 받고 있으며, 전시 되는 모든 작품들은 오직 그 그림들 뿐.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전시회 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이미 예전부터 이런 일을 다 생각하고 있었겠지.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나는 갑자기 전시회 일정을 보자 또다시 가슴이 마구 벅차올라서 아래를 잡았다.


내 페니스는 이미 거칠게 그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를 방해할 수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혼자 해결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와 할 때의 그 표정, 손짓, 목소리 하나까지도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으응....."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방 안에서 문지르고 또 거세게 움켜쥐기도 하면서 흥분을 느꼈다.


몸이 먼저 전율한다.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은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와의 섹스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흥분한다.

손이 점점 더 젖어들어가고 흥분은 더더욱 고조된다.


눈앞이 온통 무지갯빛이다.
옛날의 나는 온통 흑백 뿐인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수 없이 많은 빛깔들이 칠해진다. 내 몸에, 내 머릿속에.


설명조차 할 수 없는 색들은 그의 손을 통해 내 안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그의 몸에도 몽환적인 색들이 온통 묻어있다. 무슨 색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환상들은 내가 다시 눈을 감자 사라진다.


결국 나는 눈을 감은 채 오로지 그 만을 생각하면서 사정한다.
내 안을 완전히 뜨겁게 만들어 버리던 그 가득찬 느낌을 나는 생생하게 느꼈다.

폭죽이 한 껏 터진다.



"하아......"



이와중에 나는 뒤처리 할 생각을 했다. 아, 이거 선생님이 나오시기 전에 치워야 하는데.
웬만하면 화장실도 작업실 안에 있는 곳으로 가시니까 안 나오시겠지.

나는 저녁시간이 되지는 않았을까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 때,



"버릇이 없어졌네."


선생님이 왜 저기있지.



"누가 나 없이 그러랬지?"


내 방안까지 들어온 그는 이미 흥건해진 내 손과 나의 아래를 한 번,
다 튀어버린 더러운 흔적을 한 번, 보더니 셔츠를 하나 둘 푸르기 시작했다.


저녁은 이미 지나갔는데, 밤은 아직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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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5 04:57 | 조회 : 1,327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저 정말로! 예전에 읽어주셨던 분들 다 기억하고 있어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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