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밭은 숨이 터져나왔다.
세상에 선생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다리를 그의 허리에 둘렀다. 그의 우직한 근육들은 움찔거리며 내게 깊숙히 파고들었다.
단단해진 그것은 내게 들이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색의 향연.
그의 손에 묻은 물감들은 어느 새 내 몸으로 새겨진다.
노랗다고, 검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묘한 색감들이 나를 칠한다.
하얀 피부 속에 그는 그림을 그린다.
오로지 난 선생님만의 인형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칠해진다고 해도 좋아.
난 이곳이 천국이고 이곳이 내 삶이다.
"하응...하...."
거칠어져 가는 몸짓에 점점 더 흥분을 느꼈다.
고작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절정을 느끼고 하나가 된 채로 몇 시간을 누워있었다.
땀으로, 물감으로 얼룩진 우리의 그 몸들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으리라.
*
"선생님은 어떻게 알았대요?"
"갤러리에서 따라온 것 같더군."
"독한 년."
이런 말은 뱉어본 적이 없지만, 딱 한번 나갔던 그 공식석상에서부터 선생님의 집까지 쫓아온 걸 알고나선 도저히
욕을 안할 수가 없었다. 정말 징한 년. 나를 어디까지 나락으로 빠뜨릴 셈이야.
"선생님한테 뭐라그랬어요?"
"한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또?"
"그 뿐이었어."
말도 안돼. 거짓말이다. 태연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을 나는 알지.
선생님은 그녀에게 그림을 그려서 내가 반응 하면 만날 수 있게 해준다고 한 것 같았다.
실로 그 그림은 완벽한 실물과 일치하였기에 내가 반응하였지만.
그리고, 그 반응이 분노일지라도 선생님은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내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으며 믿음을 강조했다.
그의 눈빛은 그녀의 그것과는 다르게 뚜렷하고, 가득 차 있었다.
허공을 바라보는 그 눈 마저도 예술의 어떤 모습.
아마 예술이란 그 명사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다가도 그녀 생각 때문에 연필이 몇 번씩이나 엇나갔다.
이런 내 모습을 가엾게 여긴건지 그는 그림이 채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나를 데리고 침대로 가주었다.
그래, 10년 전 나는 이미 세상과 모든 끈을 놓았다.
그리고 그 끈 속에는 날 먼저 놓아버린 가족역시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