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일어나."


선생님께서 날 부르시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창문이 없어 지금이 몇 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느낌 상 꽤 오랫동안 잠들었던 것 같다.
그 동안 선생님께선 뭘 하셨을까.


침대가 있는 작은 방을 나와 작업실에 들어서니, 온전한 그림 한 폭이 있다.
초록빛의 머리와 눈동자. 그것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내 가슴을 후벼파고드는 그 잔상이 나를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붙잡고있는다.


"선생님..."
"만났다"


누가, 누구랑 만나?!

나도모르게 선생님께 달려들었다.
굳이 선생님은 날 붙잡지 않았다. 아 그 마저도 사랑스러운 나의.


"왜요. 그 인간이 찾아왔어요?!"
"그림 그리러 간 사이에. 날 찾아왔더군."


그는 여전히 집에서 날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같이 그리는 그 그림이 질리지 않냐고 물어봤으나,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며 날 입다물게 만들었던 그 였는데.
누구를? 그 여자를 만나? 왜? 왜 다시 찾아온거야?


"누구라고...선생님이 누구라고 찾아와요."
"눈빛이 바뀌었던데."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들 싫어요."


싫다는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그녀를 증오한다.
매일 같이 나를 앞에 앉혀두고 저주의 말을 쏟아붓던 그녀를.
초록빛의 그것들은 나를 더욱 더 혼란스럽고, 더욱 더 깊은 구덩이로 몰아넣을 뿐이었다.

학교 조차 번번히 제대로 갈 수 없었다.
온 집안을 어질러 놓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또 예쁜 옷을 사려고 나간다.
난 그러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온종일 집안을 치워야 했다.
누구를 위해서 난 그렇게 살아왔는가.


"뭐라고해요?"
"......."
"다시 만나고 싶대요? 나?"
"......."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는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왜 선생님이 나보다 더 아파해요, 왜 당신이 더 슬픈거야, 왜.


그 침묵 속에 나는 선생님의 오열을 들었다.
한 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나는 차마 그 그림을 들고 그녀를 만나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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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10 00:48 | 조회 : 1,803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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