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레이시아

눈을 떴다.

무의식 속에서 눈을 떴기에 언제 눈을 떴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언제 기절을 했는지 모르는 마당에 그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또 어딘가 모르는 곳에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평생 보지 못했던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방. 침대 옆 창문 바로 앞에는 정원처럼 하얀색 푸른 유리글라스로 되어있는 조그마하면서도 울창한 정원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지 조용했고 오히려 산들산들한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져 남모르게 기분이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여긴....어딜까...’

마치 어제만 해도 왔었던 것처럼 익숙하고도 기분 좋은 방. 나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 눈을 스르르 감았다. 온몸에서 비명을 지르듯 고통이 왔지만 정원을 보니 편안해졌다.

“일어났나.”

벌컥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데 하벨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자 나는 그대로 눈을 떴다. 하벨은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는 픽 웃으며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 정원 안을 잠시 보고왔다. 놀랐나 보군.”

하벨은 눈을 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창문으로 비치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기분좋은 햇살이 그와 나에게 내리 쬐었다. 하벨은 햇빛이 그를 향해 비쳐지자 유난히 더 밝아지는 내 은발에 눈을 돌렸다.

햇빛을 받으면 다이아몬드 같고, 달빛을 받으면 호수 같은 은발. 머리 때문에 사람들의 눈썰미를 피할 수 없었고 황제도 내 머리를 애지중지하며 아꼈다. 그리고 지금 그도 내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머리는 자연스럽게 바람을 따라 흩날렸고 정원안 나뭇잎이 바람이 멈춰지자 내 머리 밑으로 내려 앉았다.

하벨은 내 머리로 손을 향했다.



“만지지 마십쇼.”

나는 그의 손을 냉정히 쳐냈다. 사람의 손길이 내머리에 와닿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머리에 누군가의 손이 와닿으면 기사임에도 취하려고 했던 황제가 떠올랐으니까. 그는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소름끼치면서도 무서운 웃음소리.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그래. 기사가 머리카락이 예쁘다고 만져지면 쓰나.”

“.....”

그는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타악!

“읏..!!”

그는 내 볼을 한손으로 쥐어들어 나를 침대로 넘어뜨렸다. 그의 힘이 압도적으로 나를 뭉개왔다. 나는 신음을 삼켰다. 그의 얼굴이 한순간으로 화가 난 얼굴로 바뀌자 어젯밤의 일이 자동적으로 생각나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는 기사가 아니지”

그는 마치 내 머릿속에 단연하듯 내리 꽂히게 했다. 나는 얼굴에 이미 눈물이 떨어진 것을 느꼈다. 그는 내가 눈물을 흘리자 손에 힘을 풀어 나를 놓아 주었다.

“너는 노예다. 폐 황제가 버리고 간 노예.”

그는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제압하였다.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노예. 어릴 적 나의 신분이었던 이름. 한동안 듣지 못해 잊어버릴 것만 같았던 이름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이름 없던 시절이 다시 떠올려지기 시작했다.

코끝이 찡하게 달아올라졌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노예가 아니지만 노예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존재. 나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까.

촤악

“읏..!”

갑자기 덥쳐 온 찬물에 나는 몸을 떨었다. 하벨은 나를 향해 침대 옆에 있는 화분의 물을 그대로 적셨다. 위를 덮고 있던 와이셔츠가 어쩔 수 없이 속안을 비치게 하였다. 물에 젖은 하얀 피부가 그대로 하벨에게 보여졌다. 나는 이불을 끌어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을 저지 했다.

안그래도 추운겨울에 찬물까지 맞으니 추위가 갑자기 찾아왔다. 나는 어서 빨리 그의 손에 벗어나 이불을 덮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화분 안에 있던 꽃을 나에게 주었다.
처음보는 꽃이여서 알지는 못했지만 하얀 테두리에 분홍빛 꽃잎이 있는 꽃이 였다. 마치 눈물 모양의 꽃이였다.

“레이시아”

하벨은 꽃을 쥔 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너의 이름이다.”

하벨은 그대로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덮었다. 추운 마당에 입이 쉽게 벌어지자 그는 그대로 내목덜미를 잡아 끌어안아 자신의 혀를 내안에 들어오게 했다. 이불보다도 따듯한 하벨의 온기가 나에게 전해져 왔다.

“읍..으읍..!”

꽤 긴시간동안 계속되는 하벨의 키스에 나는 그의 몸을뒤로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뒤로 빠져 나가자 않았다. 그리고 곧 그는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숨을 어렵게 쉬어나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것이다.”

하벨은 나를 내려다보며 입고리를 비틀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귀에서는 그다지 반갑게 들려오진 않았다. 나는 그를 째려보며 올려다보았다.

“싫습니다”

“너에겐 선택권따윈 주워지지 않는 것을 잊었나 보군.”

쫘악!

하벨은 내말을 단박에 자르고서는 누군가를 부르듯 딱하며 손가락을 부딫혔다. 그리고 그대로 어둠사이에서 두건을 쓴 누군가 내게 다가오더니 그대로 내 와이셔츠를 그대로 쫙 찢어버렸다. 나는 위로 그 어느것도 입지 못한 내 모습에 어제 같은 치욕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하시는 짓이십니까!”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는 훗하며 웃음을 지었다. 내옷을 찢은 두건을 쓴 남자는 하벨의 뒤에서 바닥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명령이 없으면 함부로 나를 보지도 못하는 이유였다. 하벨은 내 턱에 검지를 갖다 대고는 입을 열었다.

“ 정하거라. 여기서 바지까지 찢기고 밖에 있는 이들에게 보여 질 테냐. 아니면 나에게 굴복할 것이냐.”

“...!”

하벨은 그대로 왼손으로 내 그곳을 만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뺄려 했으나 바로 뒤가 침대였기에 뒤로 가지도 못했다. 선택권이 없었다. 분명 그는 내 바지를 찢으라 명할 것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그를 더 화나게 해서는 안되었다. 그가 만족스럽게 웃고는 뒤에있는 두건을 쓴 남성을 밖으로 내보냈다. 하벨은 나를 밀쳐 침대에 넘어뜨렸다. 나는 눈물을 떨어트렸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벗겨진 내 몸에서 어제의 낙인을 찾고는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으읏”

“착한아이구나 나의 레이시아”



*레이시아
꽃말: 천사의 눈물 ,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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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15 23:12 | 조회 : 4,072 목록
작가의 말
얌얌이보고픔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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