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解語花)

주기량(朱氣量)이 처음 해어화(解語花)를 본 것은 사춘기가 한창일 때였다.

당시의 주기량(朱氣量)의 황태자로서 비를 맞이해 혼례를 올린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합방일, 주기량(朱氣量)은 황태자비인 청선(淸善)을 소박을 맞히고 궐 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깊은 밤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없어 돌아가려던 주기량(朱氣量)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물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곳으로 발걸음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나무로 된 통에 누군가가 몸을 씻고 있었다.

달빛에 비춰지는 부드러운 곡선에 주기량(朱氣量)은 저도 모르게 근처의 풀숲 뒤로 숨어 몸을 씻는 장면을 몰래 바라보았다.

그렇게 주기량(朱氣量)은 숨어서 한참을 지켜보다 문득 황태자인 자신이 왜 숨어야 하지? 라는 생각에 풀숲을 나가 흠흠 헛기침을 하며 다가갔다.

그 소리에 놀라 몸을 씻고있던 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얼핏 보이는 상체가 씻고있던 이는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주기량(朱氣量)은 절벽인 마냥 아무것도 없는 그의 가슴과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얼굴이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누, 누구십니까?


변성기가 지난 다 자란 성인의 목소리가 나오자 주기량(朱氣量)은 생각과는 다른 목소리에 조금 실망했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이제 막 변성기가 오기 시작한 주기량(朱氣量)은 나름대로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그런 주기량(朱氣量)의 모습에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는 이 궐에서 가장 허드렛일을 하고있는 자이옵니다.




수 년의 세월이 지나 주기량(朱氣量)은 황제가 되었고, 그의 비인 청선(淸善)은 황후가 되었다.

처음 청선(淸善)을 보았을 때 주기량(朱氣量)은 그녀가 자신의 가문만을 믿고 행동하는 어리석은 여자라 생각했으나, 그녀는 아주 현명하고 옳은 소리를 할 줄 아는 여자였다.

실제로 몇번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주기량(朱氣量)은 그녀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여자로서의 매력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기량(朱氣量)은 청선(淸善)에게서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하나씩 낳았고, 청선의 말에 따라 여러 첩들을 들여 자식들을 낳았다.

주기량(朱氣量)의 첩들은 역대 왕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주기량(朱氣量)은 자신들의 첩들의 아름다운 외모에 별다른 흥미가 없어 보였다.

신하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말이 떠돌았다.

황제는 자신의 침소에 숨겨진 아름다운 금은보화로 이루어진 작은 방에 그 아름답다는 황후조차 빛바래 보일 정도의 애첩을 두고 그녀의 치마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주기량(朱氣量)은 매일 자신의 침소의 작은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애첩을 언제나 안았다.

소문과 다른 것이라면 애첩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것이다.

밤이 되 침소로 들어간 주기량(朱氣量)은 곧바로 병풍 뒤에 숨겨진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권세있는 집안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보석들하며 외국에서 들여보낸 화려하기 그지없는 비단까지 온갖 귀한 것들을 다 모아둔 방의 구석 쯔음에 주기량(朱氣量)이 그토록 찾던 것이 있었다.


해어화(解語花)야.


주기량(朱氣量)은 얼굴에 홍조를 띄고 사랑스럽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기량(朱氣量)은 개의치 않고 해어화(解語花)를 향해 걸어가 그를 사랑스럽다는 듯 꼭 껴안았다.

뼈가 으스러질 듯 안는 주기량에게 해어화(解語花)는 시선도 주지 않고 그저 인형처럼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해어화(解語花)가 주기량(朱氣量)을 처음 만난 것은 깊은 밤 며칠동안 일을 한다고 씻지 못해 남들 몰래 씻고 있을 때였다.

자신에게 누구인지 당당하게 밝히라는 모습에 일을 하는 곳도, 이름도 전부 가르쳐주었건만 소년은 알겠다고 말하며 그대로 뒤돌아 사라져버렸다.

그 다음날, 해어화(解語花)는 황태자의 궁에서 황태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모시게 되었다.

전날 밤, 어리숙한 당당함을 보여주던 소년은 황태자였다.

주기량(朱氣量)은 해어화(解語花)를 자신의 방에 불러 자신의 몸종으로 삼은 후 그 날에 있었던 불만이라던가 힘들었던것, 혹은 재미있었던 이야기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어마마마도 내 이야기를 이리 들어주신 적이 없었는데, 너는 내 이야기를 아주 잘 들어주는구나.


주기량(朱氣量)은 그리 말하며 자주 해어화(解語花)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잠을 청하곤 했다.

약 2년이 지났을 때, 해어화(解語花)와 눈높이가 비슷했던 주기량(朱氣量)의 키가 폭발적으로 커짐과 동시에 선황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으 들어왔었다.

주기량(朱氣量)은 그 때부터 선황을 대신해 정국을 살피었고, 가끔 문제가 생기면 태자비의 조언으로 깔끔하게 해결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술을 잔뜩 마신 주기량(朱氣量)이 침소에 들어오자마자 해어화(解語花)를 잡고 입을 맞추며 그대로 쓰러졌다.

커다란 눈동자를 떼굴떼굴 굴리는 해어화(解語花)를 보며 주기량(朱氣量)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해어화(解語花)다.

...예?


해어화(解語花), 오래 전 당의 현종이 자신의 아름다운 비인 양귀비를 칭한 이름이었다.


참 네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느냐?


해어화(解語花)는 아름다운 미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나 또한 기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당한 남자인 자신이 어째서 기생으로 불려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는 도리질쳤다.


해어화(解語花)야, 내가 널 내 비로 만들어주마. 너를 저 한나라의 왕소군 처럼 알아보지 못해 홀로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며, 당나라의 양귀비처럼 모든걸 네 발 아래 두게 해 주마.

싫습니다, 전하. 그 이름을 부르지 마시옵소서.

해어화(解語花)야. 날 거부하지 말아다오.

전하, 저는 해어화(解語花)가 아니옵니다. 저는 아름다운 여인도 아니옵니다.

아니, 네가 여인이 아니라도 너는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다. 그 오래전 물고기조차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릴 아름다움을 가진 서시조차 네게 비할바가 못될것이다.

제발 그만둬 주십시오. 전하, 이리 간곡히 청하나이다.


해어화(解語花)는 바닥에 엎드려 바들바들 떨며 말했으나, 주기량(朱氣量)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결국 그는 해어화(解語花)라는 이름을 가진 황태자의 애첩이 되었다.

주기량(朱氣量)이 황태자였던 시절에도, 1여년이 지나 황제가 된 시절에도 해어화(解語花)는 주기량에게서 몇번이나 탈출하려 했지만 번번히 잡혀들어왔고, 결국 쇠사슬 까지 차는 신세가 되었다.


해어화(解語花)야, 날 좀 봐다오.


주기량(朱氣量)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궐 내의 모든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으나 해어화(解語花)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결국 주기량(朱氣量)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어화(解語花)의 얼굴을 돌려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해어화(解語花)의 눈에는 생기가 여전히 비춰지지 않았고, 입을 맞추며 주기량(朱氣量)이 쓰러지자 해어화(解語花)의 목에서 짤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입맞춤을 끝낸 주기량(朱氣量)은 해어화(解語花)를 내려다 보았다.

제대로 옷고름을 매지 않아 틈새로 새하얀 속살이 보였다.

주기량(朱氣量)은 입맛을 다시며 해어화(解語花)의 옷을 거칠게 풀어냈고, 어느 새 해어화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주기량(朱氣量)은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도 되는 양 주기량(朱氣量)은 곧바로 해어화(解語花)를 덮쳤다.

한참을 박아올리던 주기량(朱氣量)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아래에 있는 해어화(解語花)를 바라보았다.

내고싶지 않아 입술을 앙 다물며 막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신음소리.

분홍빛에 땀에 젖은 사람의 성욕을 자극시키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얼굴.

이리저리 흔들려 애처로워 보이면서 단조로운 곡선.

이것은 전부 주기량(朱氣量)의 것이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단 하나뿐인 사람.


해어화(解語花)야.


사랑해.

18
이번 화 신고 2017-07-03 00:22 | 조회 : 4,252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잘 부탁드립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