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리즈4

-새벽 두 시는. 우리는- -

이른 새벽이라기보다는 밤이라는 개념에 가까운 새벽 두시는 유독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잠에 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졸린 기운을 깨트리기에도 애매한 이 시간. 정신적으로 활발한 낮보다도 더 깊이 드문드문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간은 현이에게도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었다.

새벽 두시.

무얼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 있기에도 가슴이 먹먹한 그런 기분.

침대가 아닌 매트와 장판을 연거푸 깔아 놓은 요에 누워 있던 현이는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결국 눈을 부비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왜 이렇게 서러운 건지. 왜 이렇게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건지. 쌩쌩 찬 기운이 불어오는 건 집 안이 아닌 바깥임에도 달달한 배의 겉 잡티처럼 소름이 돋아오는 기분이 드는 새벽이었다.

“현이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잡아끄는 부드러운 소리에 눈을 끔뻑이던 현이가 이내 조용히 부름에 응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슴이 시려올 때마다 넌 어떻게 알아채는 건지.

이제는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일을 나갈 필요가 없음에도. 습관이란 참 무서운 법이었다. 조금은 편하게 지내도 될 터인데..잠을 자고 있음에도 고작 선잠이었고, 알람이 필요 없음에도 눈을 뜨는 시간은 오전 4시 즈음이었다. 내가. 아이가. 그리고 우리가.

콤콤한 곰팡이 내가 나는 좁은 방 안에서의 구질구질한 삶을 청산한지가 벌 써 몇 해 째인데도. 우리는 아픔이 가시지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가시지가 않는다.

아픔이라기보다는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어 나오는 선짓국의 선지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심장이 나 좀 알아봐달라고, 이렇게나 마음이 시리다고. 그러니까 알아달라고 울어대는 거겠지.

20평이라는 방 안. 달과 가까운 곳이 아닌 번화가의 불빛으로 가득한 이곳은 평화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현이와 단비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조용하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분위기를 내뿜었던 그곳이 이렇게 아픈 새벽녘에는 항상 그리워졌다. 그럼에도 돌아가기는 싫었다. 미처 해가 뜨기도 전에 창녀촌을 걸어 내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부비는 척 눈물을 닦아내는 것도 싫었지만, 그렇지만 이토록 그리운 것은.

우리의 추억이. 우리의 모든 것이 다 거기에 남아 있어서일까.

새벽녘이면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낡은 나의 집으로 찾아오던 넌 항상 피로감에 지친 얼굴로 은은히 내게 안겨왔었고, 밥을 짓는 냄새가 나면 머리를 감싸 앓으며 글을 쓰던 난 몸을 일으켜 네 집으로 향하던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리웠다.

낡은 빨래 줄에 빨래를 널고, 손이 시려움에도 쌓인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고 미소 짓던 그 때가.

하지만. 그 추억이 아닌. 그 장소로는 돌아가기가 싫었다. 굉장히 그리우면서도. 이렇게 고통 속에서 잠을 못 이루면서도.

예전. 그 때 그 시절 속에서 멈춰있기는 싫었다.

“잠이 안 와?”

“..응”

“이리 와-”

그래서 이런 내 마음을 알면서도, 모진 내 마음을 알고 있는 너이면서도 못 이기는 척 품을 내어주는 너는 참 나쁜년이다. 못이기는 척 널 마주 안는 나도 나쁜년이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 하고 있는 거일까. 이렇게 나쁘니까. 서로 의지할 곳이 없어서 기대고 싶어지니까.

“단비야-”

“..응?”

“안 힘들어?”

문득. 이제 막 검정고시를 따고 2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늦깎이 대학생인 네가 참으로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뒤쳐질까 매일 전공책을 붙잡고 있는 네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난 이상하게도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새삼. 다시금 깨달으며 얄팍한 네 허리에 손을 두른 나는 예전 그 때 그 시절처럼 네 어깨에 눈물을 훔쳤다.

이제. 더 이상 담배를 피지 않는다. 그리고-글을 쓰지도 않는다.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채 말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펜을 잡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꾹꾹 감춰두었다가 뒤늦게 서야 나보다도 더 힘든 이 아이에게 넌지시 묻고는 하는 것이었다. 방금처럼.

“..응, 힘들어.”

그러면 너는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조곤조곤 속삭이고는 얼른 자라며 내 머리나 등을 연거푸 쓸어내리며 작게 하품을 내뱉고는.

“그러니까, 너는 힘들면 안 돼.”

다시금 내 심장을 어루만지며. 퉁퉁 바람이 꿰뚫어가는 심장이 다칠 새라 그 작고 망가진 손으로 내 심장을 껴안고 놓지를 않아준다. 참 고마운 사람. 줄 수 있는 게 이렇게 형편없는 사랑 하나임에도 미소 짓는 내 사람.

아아-역시 새벽 두 시는 마법의 시간인가 보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몽롱한 이 잠기운을 쉽게 깨트리지도 못 한다.

그러기에-

오늘도 언제나처럼.

언제나 오늘인 것처럼.

난 이렇게도 마음이 아픈가 보다. 너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서 아프고, 너에게 줄 수 있는 게 너무 작은 사랑이라서 아파 죽을 것 같았다.

“난-힘들어.”

“...”

“널 너무 좋아하는데..그걸 표현할 수가 없어서 너무 힘들어.”

“..그래?”

“응. 그래서 너무 힘들어 단비야. 나 정말로 너무 힘들어.”

“...”

“그러니까 너도 힘들어 해. 나 때문에 힘들어 해야 해.”

네가 표현을 해주지 않으니까. 말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이 힘들다고 매일 그렇게 말해줘야 해. 그래야 내가 변할 수 있을 것 같아. 아프지 않을 것 같아.

“현이야.”

“얼른 힘들다고 해줘.”

“..난 전혀 힘들지 않아. 오히려 감사해. 그런 너를 더 사랑할 수가 있어서.”

“...”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오히려 행복해, 항상 고마워 현이야.”

아아-

넌 정말 나쁜 사람이다. 치사하고 간사하고 모진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난 널 미워할 수가 없었고. 이렇게 따뜻함을 내뿜는 네 품을 떠나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못난 내 존재로도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바보처럼 바로 생각을 바꿔버리는 나도 참 미련한 년이었다.

새벽 두시는 참. 참으로도..정말.

내게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매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는 장 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못된년이라고 의절하듯 떠나버린 자식을 욕하는 부모님의 목소리도 귓가에 메아리쳐 오는 환청이 들려왔다.

그런 무서움 속에서 난 또.

“다 괜찮을거야.”

너로 인해서 이렇게. 편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는 거겠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와 난 이른 새벽녘에 눈을 뜨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반복하다 느지막히 눈을 감고는 고른 숨을 내뱉을 터였다.

그러고는 해가 떠오른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난 네가 차려준 정성스러운 밥을 배부르게 먹고는 새벽시장이 아닌 아침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가는 너를. 그 지긋지긋한 언덕이 아닌 평지에서 배웅을 해줄 거였고. 그런 너를 기다리며 노트북과 펜을 흘깃 거리던 나는 뒤늦게서야 파트타임이라는 오후 아르바이트를 나가 푼돈을 모아오며 널 기다릴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새벽녘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건.

내가 널. 네가 날. 서로 닮은 듯 닮지 않은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일 거였다.

오전, 오후보다는 새벽의 추억이 많은 우리이니까.

필히 어떤 해프닝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새벽에 눈을 뜰 수밖에 없을 터였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새벽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아아-

역시나.

새벽은.

두시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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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6-22 06:07 | 조회 : 1,334 목록
작가의 말
무관심

퇴근하자마자 글을 올렸더니..! 슬슬 피곤해지고 있어요. 학원가고 출근준비 하려면 일찍 일어나야하는데..걱정..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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