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리즈3

-너로구나.-

은은히 지구를 향해 내려오는 차가운 달빛을 손으로 모으던 현이는 차가워지는 손에 결국 몸을 움츠리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연말은 다시금 지나갔고 단비는 다시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늘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아침을 먹고, 자신을 어여삐 여기는 횟집 사장님과 함께 새벽시장을 나가 생선을 구해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그리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 즈음에야 내 방에 슬그머니 들어와 비릿한 생선냄새가 나는 손으로 내 왼쪽 심장을 쓰다듬다가 돌아가는 너는. 이제는 눈을 감아도. 음악 소리에 정신이 사나워도 이제는 알아챌 수 있다.



‘현이야-’





너로구나.



오늘도 역시나 10시 34분이 넘어가는 밤에서야 글을 쓰고 있는 내 집에 찾아온 넌 내 왼쪽 심장을 쓰다듬다가 조용히 돌아간다. 부르튼 손으로 뭐 그리 만질게 있다고 심장을 조물딱 거리는지. 채 지나가지 못한 추운 겨울바람이 날 껴안으러 오는 것 같다.





“현이야-”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던 그 은은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넌. 이제는 알 것 같다.



너인걸.





“왜-”





네 은은한 말에 맞춰 답문을 하는 난 아직 흩어지지 못한 한줌의 흙인 듯 왜 이리 발끝이 부스러지는 걸까. 일에 찌들어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넌 내 목소리에 그때서야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아-단비야. 아이야.



늘 물을 만지고 있어 거칠 거리는 손. 여드름이 올라오듯 다닥다닥 습기 때문에 일어난 손등. 아무리 모진 말을 듣고 힘든 하루를 보내도 둥그런 달 뒤로 숨은 토끼처럼 넌 내게서 슬픔을 숨기고 미소를 짓는다.



단비야.



난-너이고 싶다.

모든 아픔을 뒤로 숨기고 내게 짓는 미소로 내 심장을 아프게 하는 너는. 이른 아침부터 쌀을 안치고 밥을 지어 한 수저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너는. 밤새 서린 안갯물이 흘러내려 흙바닥에 수분을 머금게 하는 이슬처럼 촉촉한 너는.

차라리 나를 대신하지 그러냐.



“잘 자.”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체 그저 미소 한 번 지으며 비릿하고 거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은 너는 이제 서야 네 은신처로 걸음을 옮긴다.

스탠드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노란 빛깔로 인해 노랗게 보이는 네 등은 왜 이리 커 보이는 건지.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날 지켜주던 그 시절처럼 넌 내게서 아주 커 보인다.

아아-너로구나.

너이구나.



항상 내게 먼저 보여주던 뒷모습에 익숙해 진건지 등을 보이고 있는 널. 그때서야 심장이 인식을 한다. 너로구나 하고.



“단비야-”

“응?”

“사랑해-”



“..나도”

다시금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 널 보다 결국 몸을 일으켰다.



“데려다줄게.”



심장은 아직, 이토록 시리구나.

“..응?”



네게로 다가갈수록 너는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또 심장이 서러워진다. 차갑고. 서럽고. 울려온다.



그러다 결국 픽. 심장은 울음을 터트렸다.



단비야.



우리 왜 이렇게 비참하니.



달과 가까운 곳. 빈민촌의 꼭대기. 좁은 방안. 낡아빠진 옷장과 곰팡이 내가 콤콤히 나는 방안.

난 성공을 하기 위해 서울로 왔고. 넌 나란 쓰레기를 살리기 위해 내게로 왔다.

헌데 말이야.

난 아직도 이리 낡아빠져서 볼품이 없고, 넌 나로 인해 망가져 가고 있다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 물음에 결국 심장은 팩-공기 빠지듯 피가 빠져나간다.





“가자.”



“응.”

거칠고 흉한 네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슬리퍼를 끼워 신고 집을 나섰다. 시린 바람에 발가락이 시렵다. 밑창이 낡아빠진 신을 신고 있는 넌 어디가 시렵니.



20걸음.



시린 발가락을 뭉그리며 도착한 네 집은 고작 20걸음이다. 하고픈 말도 많고, 듣고픈 말도 많은데. 시간은 늦었고 우린 이렇게 가까우면서도 멀다.



“..단비야-”



“왜에-”



“고마워.”



“..뭐가 고맙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래서 가지를 못하겠어. 집에 돌아가지를 못하겠고 네게로 다가가지 못 하겠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넌 돌아가지 않는 나로 인해 결국 내게 다가와 팔을 벌린다. 평소 눈치가 빠른 너이니 알고 있겠지. 내가 왜 이러는 건지.



“...”



마지못한 척 안긴 네 품은 물 냄새와 생선 냄새가 난다. 네 향기는 어디로 간 걸까. 타인의 품처럼 느껴지는 향에도 뭐가 그리 서러운지 등을 쓰다듬는 네 허리춤을 꽉 끌어안으며 조용히 비명을 질렀다.

심장이 또 차갑게 주물 거려진다.





“오늘따라 앙탈이 심하네-우리 현이.”



“...”



“그래도 괜찮아.”



“...”



“뭐가 그렇게 심란한 건지 난 멍청하니까 잘 몰라. 그래도 말이야 이렇게 날 찾아주는 네가 있어서 조금은 다치고 속상해도 난 괜찮아 현이야.”



“...”

“그러니까-”



아파하지 마.



결국 너의 말에 울음이 터져 나온다. 왜 이렇게 아픈 거니. 심장아-심장이 이리도 먹먹하고 아프게 느껴질 수가 있구나.

큽, 크흡.

끅끅 거리는 숨에서도 힘겹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뜬 그 순간 불어온 바람에 네 향기가 코로 스며들었다. 비릿한 생선 내와 축축한 물 냄새 사이로 옅게 풍겨오는 네 체취.



그때서야 심장이 웃더라.



너로구나 하고

“일 그만둬.”



“...”

“제바알-돈 좀 쓰란 말이야..”

아프지 마. 고생하지 마. 그렇게 웃지 마.



“날 비참하게 만들지 좀 말아줘.”

‘멈칫’



조용한 내 울림에 등을 쓰다듬어 내리던 네 손길이 멈췄다.



‘두근’



다시금 심장은 네게 반응을 한다.





너이구나.

너구나.

너로구나.



심장이 녹아가고 있었다.

너로 인해 얼고, 너로 인해 녹는다.



“..그래.”



아아-



너로구나.



단비야.



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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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6-22 06:06 | 조회 : 1,39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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