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리즈2

-늦은 새벽-

늦은 새벽 3시 35분 언제나처럼 빈민가의 집들은 시끄러운 삭막함을 준다. 이제 설날의 끝자락인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데 찾아오는 이는 한 명도 없고, 따뜻하게 몰아치는 추위가 몸을 시렵게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취업을 한지도 4년이 넘어가는 장 씨 아저씨의 아들 역시 그런 장 씨를 잊은 듯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전 날 밤부터 술을 마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장 씨 아저씨는 늘 삭막하기만 했던 빈민가에 3시를 넘어 4시를 웃도는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슬픈 시끄러움을 안겨주었다.

그랬기에 이곳은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과연 너도 그랬던 걸까. 오랜만에 얻은 짧은 휴식기에 2일 동안 내 집을 떠나지 않는 너는 이런 늦은 새벽녘까지 스탠드를 켜놓고 글을 적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때까지 방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진 낡아 빠진 이 공간에서 이때까지 혼자였던 게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새근새근 나른한 숨소리를 내 뱉으며 방 안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침대에 웅크려 새우잠을 자는 네 숨소리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항상 마주보며 이른 아침을 먹고, 남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을 나누는 친구이자 운명인데 왜 오늘따라 네 모습이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글이 써지지 않아 가슴이 턱 막히는 답답함에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던 현이는 나른하게 들려오는 단비의 숨소리에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담배 곽 안에 넣어놓고는 쭉 기지개를 폈다. 어릴 때는 멋진 정장을 입고 회사에 들어가 멋진 삶을 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돈도 못 벌고 누구 한 명 알아주지 못하는 글쟁이가 되어 있을 줄은 그 누가 알았을까.

새해마다 이 지긋지긋한 방구석을 벗어나 100평은 넘는 대리석 바닥 아파트에서 엄청 비싼 양주를 마시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푸석한 몰골에 물을 맛보게 한 뒤에야 하루를 시작하는 난, 100평이 넘는 아파트는커녕 15평정도만 되는 집이라도 감지덕지하고 살아가고 있다. 꿈은 크게 가져도 뭐라 하는 이는 없지만 이렇게 사는 나를 누군가가 본다면 필시 혀를 차겠지. 차라리 이럴 때는 무명인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컴 화면 속에 빼곡히 적힌 글들과는 반대로 오늘따라 왜 이리 마음이 착잡한지. 이건 필히 다 장 씨 아저씨 때문일 것이다.

‘애 새끼들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어차피 고마운 줄도 모르는 것들이야 시발 것들!’

악에 받혀 소리를 지르는 게 얼마나 가슴이 시리던지. 고향에 두고 온 여동생과 부모님도 생각이 났다. 어느 날 밤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무거운 가슴에 묻기만 했었는데..어느 날 밤은 내가 한 모든 행동이 불효라는 생각에 만년필에 채워진 검정 잉크가 새듯이 작은 눈물방울들이 쉴 새 없이 주르륵 흐르기도 했었다. 물론 오늘도 눈물이 나올 만큼 서글프고 보고픈 마음이 강했지만. 울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나도 엄마아빠 보고 싶어..’

영원히 볼 수 없는 너는 오죽하겠니. 단비이는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이었다고 했다. 술에 취해 역주행을 한 커다란 대형 트럭과 맞부딪혀 시신조차 제대로 걷어 들이지 못한 체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루고 이 곳 빈민촌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다행히 보험금은 많이 탈 수가 있었는데 저 바보는 그 돈에 한 푼도 손을 대지 않았다. 겨울 날 기름이 떨어져 추워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보험금은 손대지 않는 아이가 저 아이였다. 그랬기에 그저 찬밥에 물을 말아 주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저를 챙겨주고 도와주는 단비에게 현이 또한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그저 가볍게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식당일이 익숙하지 않아 이모들과 손님들에게 큰 소리를 들어 너무도 서러워 눈물을 쏟으며 빈민촌 언덕을 오를 때에는 다가가 꼭 안아주기도 했었다. 일이 익숙해지는 만큼 딱딱해지고 부르트는 너의 손만큼 이제 우리도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만큼 더 딱딱해지고 돈독해 졌기에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저 불쌍하게 여겨 내민 필연의 손이 인연이 되었고, 갈팡질팡하며 서로에게 힘겹던 인연이 운명이 되었던 것이다. 참 얄궂기도 하지.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사랑받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3시 38분으로 넘어가는 시계바늘처럼 난 네게 자연스럽게 넘어갔고, 넌 그런 나를 항상 움직이는 시간처럼 올곧게 받아주었다. 그랬기에 많이 미안하고 많이 고맙고 많이 사랑하고 있다. 돈이라도 많이 벌면 평소에 가지고 싶어 하던 작은 노트북 한 대라도 사줄 터인데. 날아가는, 한 때는 한 송이였던 작은 꽃잎처럼 난 자유롭고 여전히 빈털터리다.

“현이야..”

“일어났어?”

“..으응..”

“더 자지-내일까지 일 쉬니까.”

“..응..”

항상 이 시간대에 일어나는 너는 힘겨운 생활이 너무 익숙해진 것인지 알람이 없어도 절로 눈이 떠지나 보다. 그래도 3년 만에 얻는 장기휴일이니 조금 더 자도 좋을 터인데, 웅크려 있던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내게 손을 뻗는 너는 이런 작은 사치조차 적응하지 못 하는 가엽은 한 꺼풀의 누에뭉치 같다. 내게 뻗어진 손을 맞잡으며 네 품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나는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하나의 누에뭉치에게 품어지는 작은 애벌레인 걸까.

“배 안 고파?”

“응-그러니까 더 자-”

‘틱’

이제 막 3시 40분에 도달한 책상 위 작은 알람시계는 째깍째깍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건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면 틱틱 묘한 소음을 내준다. 그렇게 움직이는 시계 음에 맞추어 하품을 내뱉는 너를 다시 눕히며 등을 쓰다듬어 주는 나는 네 품 안에 따스하게 차오르고 나서야 착잡했던 마음들이 가라앉으며 이내 너로 가득 채워진다. 잠들기 전 설거지를 해서 연하게 풍겨오는 물비린내 특유의 냄새와 방 안을 채우는 콤콤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그 틈의 틈새 사이로 섞여 맡아지는 유채꽃 같은 네 살내음에 작게 안도의 숨을 내뱉어 봤다.

“졸려.”

“자-”

“응..”

그리고 난. 이제야 잠이 솔솔 몰려온다. 돈이 없어도 항상 보일러만은 뜨끈하게 틀어놓는 덕분에 바닥부터 올라오는 따스한 열기와 네품에서 옮겨오는 뜨끈한 열기에 노곤한 잠기운이 내게도 찾아왔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니고, 오히려 새벽장이인 나와 너에게는 하루의 시작일 터인데..추워진 날씨가 풀리는 만큼 춘곤증이 참으로 빨리 찾아왔나 보다.

아직 새벽 3시 40분인 새벽. 네 품안에 안겨 스탠드도 끌 생각도 하지 않은 체 감겨오는 눈을 감는 난. 그리고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릿한 숨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잠에 빠져드는 넌. 이른 새벽이 아닌 느직한 잠에 빠져드는 늦은 새벽이다.

늘 상 반복되었던 이른 새벽과는 달랐던 지금, 늦은 새벽 3시 40분 언제나처럼 빈민가의 집들은 시끄러운 삭막함을 준다. 이제 설날의 끝자락인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데 찾아오는 이는 한 명도 없고, 따뜻하게 몰아치는 추위가 몸을 시렵게 했지만 서로를 껴안고 잠에 빠져드는 너와 난 왜 이리도 따뜻한 건지. 가끔은 이른 새벽이 아닌 늦은 새벽도 마음이 간질거리는 마음을 주는 구나. 우린 이제야 하루를 마무리 하는 늦은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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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6-22 06:05 | 조회 : 1,973 목록
작가의 말
무관심

새벽시리즈는 마지막화에 다운로드 링크글을 올리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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