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변화(2)




카인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가 완전히 지자 그와 헤어져 다시 방으로 돌아온 리안은 훈련 후 노곤해 진 몸을 풀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원래라면 방 문 앞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다 목욕 시중을 도와주었을 메리나가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시녀장이 다른 일로 부른 걸까. 언제부턴가 그녀의 존재가 꽤 자신의 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욕실로 들어서자 목욕 전담 시녀들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예를 취했다.



"옷을 준비해 놓을까요?"



"아, 예."



땀에 젖은 옷을 벗자, 아직 채 낫지 않은 흉터가 자리한 하얀 몸이 드러났다. 여자보다도 마르고, 선이 고은 몸매였다. 운동을 해서 그런지 약간은 선분홍빛이 도는 하얀 살결에 시녀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저, 그 목걸이도 맡아 두겠습니다."



라며 시녀 중 한 명이 리안의 목에 걸린 푸른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를 가리켰다. 리안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건, 괜찮습니다."



시녀들은 그제야 옷을 들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리안은 목걸이를 들어 푸른 보석에 눈을 맞추었다. 안에서 일렁이는 하얀 아지렁이는 무지개 빛으로 빛나며 푸른 색 속으로 피어올랐다. 이게 바로 봉인 된 리안의 신력. 너무도 거대하여 전 세계의 신녀가 힘을 모아 만든 봉인구.



신력을 가진 자가 신력을 못 쓰게 된다. 아직까지 그렇게 되었을 때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신력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는 것은 이 세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설처럼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 부터 몸에 지니고 있었다. 마인도 우연인지 아닌지, 이것은 가져가지 않았다. 시녀들이 받아둔 따뜻한 물속으로 들어가자, 절로 신음이 나왔다. 흉터 부분이 아려서도 있지만 지금껏 쌓아둔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기에.







리안이 목욕을 다한 후, 한 층 상쾌해진 기분으로 나왔을 때 시녀들이 곱게 접어둔 옷이 보였다.


"음?"



처음 보는 옷이었다. 지금껏 입은 것과는 달리 제 몸에 딱 맞는 실크로 이루어진 셔츠에 세밀하게 꽃 문양이 새겨진 조끼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검은 빛의 바지. 기모로 된 하얀 무릎까지 오는 양말에 저가 신던 신발은 어디가고 광이 나는 고동빛 구두까지 있었다. 게다가 그것들 맨 위에는 은빛이 번쩍거리는 머리끈이 있었다.



딱 보아도 황족의 것인 양 번쩍거리는 옷에 밖에서 대기하던 시녀 한 명을 불렀다.



"이거, 혹시 제 옷입니까...?"


"네, 방 침대 위에 리안님의 것이라 써져 있길래..."



"아, 일단은 알겠습니다."



리안은 우선은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입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몸에 꼭 맞는 옷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나저나, 누가 준거지..?'



고작 포로와 다름없는 신세에 이런 옷을 아무나 선물해 줄 리는 없었다. 리안은 호기심을 가진 자가 많다는 콘들의 말을 떠올리곤 그들 중 한 명인가..라 중얼거리며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곤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머리를 묶었더니 무언가 정리된 듯한 느낌이었다.


리안이 밖으로 나가자, 시녀들은 숨을 헙 들이켰다. 하얀 머리카락에 눈처럼 흰 눈동자, 은빛 머리끈과 깔끔한 옷을 입은 리안은 그 자리의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리안의 눈동자빛을 보곤 거부감이 든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얼굴을 붉혔다.



"리안님..! 여기 계셨군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리안을 불렀다. 리안은 그가 누군지 바로 깨달았기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메리나였다.


메리나는 뛰어왔는지, 헉헉 거리며 다가왔다.



"왜 그렇게 뛰어왔어, 메리나?"


"아, 일이 좀 바빠서요, 헤헤. 그나저나 지나님께서 티타임에 리안님을 초청하신다고 하셨어요. 내일 아침이예요!"


"지나님이라면..."



기억났다. 마인의 약혼녀. 리안은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왜 저를 보고 싶어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가지 않는다면 분명 마인에게도 실례일 것이다.



메리나를 따라서 방으로 돌아온 리안은, 마인이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메리나가 리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회의 끝나고 바로 목욕 하신 후에 간식도 드시지 않고 잠드셨어요. 피곤하실 거라고 재상님이 말씀하셔서..."


"아아- 그렇구나. 그래, 너도 이제 가서 쉬어."



메리나가 리안의 말에 총총총 사라지고 나서, 리안은 불 꺼진 방 가까이 다가갔다. 주황빛 조명이 은은하게 마인의 얼굴 위를 밝히고 있었다. 침대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와 누은 리안은 마인 쪽으로 돌아누웠다.



최근들어 유독 친절해진 그의 태도에 마음이 간질간질하게 울린다. 분명 소꿉친구를 대하는 마음은 아니겠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어렸을 적 그의 얼굴이 뿌옇게 떠오른다. 그땐, 귀여웠는데.

리안은 그때를 회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옷을 편하게 갈아입어야 하지만, 어쩐지 이대로 움직이기가 싫다. 지금 움직여 마인이 깬다면 마치 친절하지 않은, 차가운 마인으로 돌아올까봐. 그런 예감이 들어서였다.


리안은 마인의 볼 위로 손을 올려 부드럽게 만져 보았다. 그가 깨있을 땐 상상도 못하는 일이겠지. 그리고 예전에 하던 것 처럼 푸른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여전히 부드러운 머릿결에 리안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리안?"



그때 마인이 흐릿하게 눈을 떴다. 리안은 당황해선 손을 빼내려 했다. 그때 마인이 리안의 손목을 움켜 잡곤 몸을 반쯤 일으켜 리안을 자신쪽으로 당겼다.


"-이참에 확인해 봐야 겠어."


"엣-"



리안이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마인의 입술이 리안의 입술에 포개졌다. 리안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일순, 사고가 정지되었다.







***






"그래서, 준비는 다되었니?"



요염하게 어두운 방을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계획은, 3일 후 시작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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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5 15:57 | 조회 : 3,473 목록
작가의 말
렌테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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