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보류하기로 하지.




다시 일을 간 마인 때문에 방에 혼자 남겨진 리안은 침대에 엎드렸다. 그리곤 아까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누가 그랬지..?"



별 잡 생각들에 빠져 있었던 탓에 그때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발걸음으로 보면, 분명히 여자였던 것 같긴 한데. 밀칠 때 강도로 보면 꽤 힘이 쎘던 것 같다.



"하..."



그러고보니 몸이 너무 둔해졌다. 웨리아에선 워낙 암살 시도가 잦았기에 독학으로 익힌 실력으로 어찌어찌 생존하려던 마음이 컸던 지라 조금만 발자국 소리가 들려도 눈치 챌 정도로 감이 예민했었는데. 고작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 죽이려 한 자의 정체도 못 알아낼 정도로 너무도 둔해졌다.



붕대 때문인지, 너무 오랫동안 검을 잡지 않아서인지 몸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시녀들에게 허락 맡지 않고 붕대를 풀어도 괜찮겠지.
붕대가 내려가자 어느정도 딱지가 올라온 하얀 상반신이 보였다. 이젠 몸을 움직여도 고통도 거의 없다.



리안은 예전부터 제 몸처럼 가지고 있던 은백의 검을 떠올렸다. 카인이 시녀들 몰래 빼돌려 선물해준 것이었지. 아마 이곳에 붙잡혀 오면서 마인이 뺏았을 게 당연하지만.



카인도 안 만난지 꽤 되었다. 마인에게 부탁해볼까, 라고 생각했지만 안된다고 할 게 뻔했기에 리안은 애꿎은 굳은살이 박힌 하얀 손가락만 쥐었다 피었다했다. 애초에 무슨 명목을 대고 그에게 찾아간단 말인가. 일 중이라던데 아무 이유 없이 찾아가는 건 무례한 일일것이다.
그때 메리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쿠..!"



그녀의 손에는 꽤 무거워 보이는 식기들과 차가 올려진 쟁반이 있었다. 그녀는 그 중 하나를 리안의 앞에 있는 테이블에 놓았다.



"무슨 차가 그렇게 많아?"



"아 이거, 시녀장님께서 원래 이 일을 전담하던 시녀가 다치는 바람에 저보고 그 시녀 일까지 해달라고 하셔서요. 제가 좀 힘이 세거든요! 이래보여도!"



리안은 그녀가 뽀얀 팔로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으쓱거리는 것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리안의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럼 이 차, 황태자께도 가져다 드리는 건가?"



"네, 물론이죠."



차를 가져다 준다는 명목으로 가서 기사단에 가볼 수 있는지를 물어보면 된다. 리안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메리나의 손에서 하얀 주전자와 고풍스러운 느낌의 찻잔이 올려진 쟁반을 대신 들어올렸다.



"내가 대신 가져다 드릴게."


"리안님이요..?"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나가 방을 나가는 리안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황태자께선 지금 3층에 응접실에서 재상님과 함께 계세요!"


"그래, 고마워."



리안은 그대로 3층으로 향했다. 붕대도 푼 채, 차를 들고 지나가는 리안의 모습에 시녀들이 옆에서 수군거렸으나 리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3층의 맨 왼쪽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발코니처럼 꾸며져 있는 방이 보였다. 그대로 하얀 문을 몇 번 두드리고 들어가자, 뻥 뚫려있는 창문에 장미꽃으로 꾸며져 있는 벽과 중간에 놓여진 테이블과 하얀 의자가 보였다.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특히 저녁바람에 하늘거리는 하얀빛의 커튼이 매우 그 발코니와 잘 어울렸다.


그 곳에 마인과 콘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런, 리안씨 아냐?"



리안은 머쓱하게 걸어가 테이블에 주전자와 찻잔을 놓곤 마인을 바라보았다. 마인은 느긋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말해보라는 듯 리안을 쳐다보았다.



"어, 그러니까....기사단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마인이 한쪽 미간을 올렸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콘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거기 있다는 네 호위무사 때문이야? 대신 차드는 일까지 하면서 이곳에 올 정도면 꽤 급한가봐?"


"아, 그것도 있지만-"




"..마음대로 해."


"엉?"



너무도 쉽게 떨어진 허락에 먼저 관심을 보인 콘들이 놀라 되물었다. 리안의 표정이 미세하게 밝아졌다. 마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뭐, 계속 궁 안에 있다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겠지. 황제께서도 널 가두지 말라고 하셨으니."


"아, 감사.."


"대신 나와 함께 간다."


리안은 카인을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뜬 채 고개를 끄덕였다. 콘들은 전혀 달라진 태도의 마인을 보며 '허,' 하고 피식 웃었다.



"뭐,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는 이까지로 하자고. 난 애인이나 보러 가겠습니다, 황태자 님."



콘들은 테이블에 놓여있던 찻잔을 들어올린채, 눈을 찡긋하곤 나갔다. 마인과 리안만이 방에 남자,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럼 가지."


"아, 예."


마인은 따라오려던 시녀들을 물리곤 앞서 걸어갔다. 아무 말 없이 걷던 그는 순간, 리안을 흘깃 바라보았다.



"붕대를 풀었군."


리안은 자신의 몸을 한 번 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좀 괜찮아진 듯 해서."


마인은 대답 없이 짧게 고갤 끄덕이곤 다시 걸어나갔다. 마인의 표정이 뭔가에 대한 고민으로 찌푸려졌다.



'저 옷 말고 다른 옷은 없는 건가.'


확실히 그간의 부상으로 인해, 리안은 정상적인 옷보단 한 치수 큰 헐렁헐렁하면서도 각이 잡힌, 부드러운 소재의 하얀 옷만을 입었다.

마인이 제 나름대로의 고민에 빠져 있을 동안 어느덧 궁을 벗어나 북쪽 정원에 도착했다. 꽃으로 꾸며진 넓은 정원은 웨리아의 것보다 훨씬 더 조화롭고 화려했으며 그러면서도 예뻤다. 밤에만 볼 수 있는 북쪽 정원의 은은한 불빛이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과 어울려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리안은 그곳을 지나며 왠지 마인과 함게 산책하는 기분이라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으나 마인이 갑자기 돌아보는 바람에 다시 미소를 없앴다.


"그-.."


마인이 머쓱한 표정으로 리안이 아닌 왼쪽 허공을 응시하며 볼을 긁적였다.


"예?"


"널 화풀이로 쓰기로 한 것 말이다."


"아, 예."


리안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기에 저렇게 어울리지 않게 뜸들이는 건지 의아했다.



"그것, 아무래도 네가 다친 게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니..일단은"


마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리안을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잠시 보류하기로 하지."


리안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한 나머지 눈만 끔벅댔다. 그가 지금 왜 저러는 거지. 왜 어울리지도 않게 마치 부끄러워하는 것 처럼 머뭇거리면서 말하는 걸까. 또한 화풀이로 쓴다는 것을 보류한다는 것과 상처 때문이란 말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건가?



"그냥 그런 줄 알라는 말이다."


마인은 다시 원래의 차가운 음성으로 되돌아와 걸음을 재촉했다. 리안 또한 정신을 차리고 뒤따랐다.



"아, 예-."



어느덧 훈련하는 기사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벽돌로 이루어진 꽤 높은 벽이 있는 건물이 보였다.


리안은 카인을 본다는 생각에 기대를 했지만, 그 기대는 곧 다른 감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흐어어어! 제가 순위권에 들었더군요!!

완전 깜작 놀라서 막 소리질렀어요 ㅎㅎ


언제까지 순위권에 있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독자분들 넘나 감사드립니다!


이제 방학이 되었으니 우리 자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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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1 17:48 | 조회 : 3,680 목록
작가의 말
렌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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