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버티다(1)



소란스럽게 등장한 남자는 짙은 녹색빛의 긴 머리카락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키가 매우 큰 남자였다. 능글스러워 보이는 미소가 장난스럽게 걸려있었고, 눈동자는 녹색빛이었다.


"하이~. 네가 리안이구나?"


다짜고짜 마치 오래 사귄 친구인 양 반말을 쓰는 그의 태도에 약간 당황한 리안은 몇 박자를 놓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아, 예..근데 누구신지.."


메리나가 허리를 숙여 그에게 예를 표한 후, 고개를 살짝 들었다.


"콘들 메이웨어, 가리어드의 재상님이세요."



재상? 황제의 바로 다음 권력이라 할 수도 있는 그런 고위 관직에 오른 자가 굳이 이곳까지 왔다는 건가? 리안은 의아했으나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자 콘들이 싱긋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딱딱하게 왜 그래? 편하게 있어, 편하게."


"아, 예. 그럼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콘들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곤 리안에게 다가갔다.



"잠시 자리 좀 비켜줄래?"



그리곤 메리나에게 짧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메리나는 총총 걸음으로 인사를 하곤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어색한 공기가 남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다소 불편하게 자세를 잡고 있던 리안은 콘들이 침대 옆 의자에 앉자,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 편하게 기대었다.


"음음,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려고~. 난 너처럼 상황에 따라 성질 죽일 줄 아는 개념있는 사람은 좋아하니까 말이지."



"이야기?"



콘들은 장난기 가득하던 표정을 약간은 진지하게끔 바꾸곤 다리를 꼬았다. 그는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입을 다시 열었다.



"첫 번째 해줄 건 경고, 두 번째 해줄 건 소식 전달..- 이랄까?"



리안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뭐, 이제 수갑은 채울 필요 없으니까 나중이 되면 메리나? 그 아이가 없애줄거야. 어쨌든 너도 아까 보았겠지만, 가리어드엔 네 생각보다 훨씬 널 경멸하는 이가 많아. 그 이유는 남자가 신력을 가졌다는 것에 다른 나라보다 거부감이 큰 것도 있지만 존경받던 황비를 시해한 여자의 아들이라는, 그 후자가 더 큰 이유지."



"예, 대충 예상했습니다."



"음음. 아마, 이 궁궐에서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할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누가 널 죽이려 할 지 모른다는 거야."



리안은 쓴 웃음을 입가에 걸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 해도 도망갈 궁리를 혹시나라도 하고 있다면 관두는 게 좋아. 어디까지나 마인..아니 황태자께서 너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에 대한 예우를 갖춰주는 거야. 네가 도망치는 순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을 테니까 말이지~."



장난스러운 얼굴로 살벌한 이야기를 하는 콘들의 태도에, 리안은 그도 자신에게 있어서 진짜 아군이 될 순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도망갈 생각도 없었다만, 꽤나 강해보이는 콘들이나 마인. 그리고 이 궁궐에 들어올 때 부터 느꼈던 가리어드의 신녀의 기운.
이런 압박감 속에서 어떻게 도망칠 궁리를 한단 말인가.



"아 그리고 말이지~. 황족 분들 께선 나처럼 너에게 호기심을 가고 있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시거든. 그래서 오늘 특별하게 이번 저녁 식사에 동석을 하도록 허락해준다고 하더라. 나중에 메리아가 데리러 올 거니, 마음의 준비를 해 놓는 게 좋을 거야."



생각만 해도 체할 정도로, 마치 원숭이 보듯 쳐다볼 그들의 눈빛이 예상되어 기분이 한층 다 낮아졌다.



"뭐, 그럼 난 내 작은 아기고양이가 기다리니 이만 가볼게~. 일방적으로 내가 얘기한 거지만, 이야기해서 즐거웠어. 리안."



"아, 예. 저도 즐거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그를 보낸 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 새로운 생활이란. 언제까지 자신이 성질을 죽이며 버틸 수 있을 진 모르겠으나, 결코 앞으로의 생활이 순탄치 많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콘들이 나가며 지시했는지, 그가 나가자마자 우르르 시녀들이 들어왔다. 곧 저녁식사를 황족과 해야 하기 때문인지 그들이 가지고 온 옷들은 리안이 지금 입고 있는 옷보단 확실히 화려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순순히 몸을 맡기곤 옷을 갈아입었다. 충분히 리안 스스로 갈아입을 수 있건만, 이곳에 왔으니 그들의 법대로 따라야 할 것이기에 그는 가만히 있었다.



아침, 처형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힘든 상황에 처해졌더니 몸이 노곤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냥 피곤함을 덜어내려 몇 번 고갤 털어낸 게 전부였다.


그들의 도움으로 몸 단장이 끝나고, 시녀들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 같은 그들의 친절한 태도에 리안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간 후, 몇 시간을 방 안에 있던 책들로 시간을 때우고 있을 즈음. 방 밖에서 두런 두런 들리는 여자들의 말소리에 리안은 책을 침대 위로 내려놓고 발소리를 죽여 문으로 다가갔다.



"아 정말......담당 언제 바뀌는 거야? 들어갈 때 마다, 징그러워 죽을 것 같다고."


"쉿, 조용히 해. 안에 들릴라."


"몰라, 짜증나.. 저 눈 마주칠 때마다 역겨워. 게다가 그 황비 마마를 죽인 마녀의 자식이잖아? 기분 나쁘다고."





아아-
대체 난 무엇을 또 헛되게 바랬던 것일까. 이곳의 어느도 내게 진심일 사람은 없을 텐데.
리안은 차가운 조소를 내뱉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 맞은편의 기둥 옆에 서서 속삭이고 있던, 아까 상냥한 미소를 지어 주었던 그녀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리안님. 그게..."



시녀 중 한 명이 식은땀을 흘리며 리안을 쳐다봤을 때, 리안은 그녀들이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해주어서 고맙군요. 앞으론 제 몸단장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기분 나쁘게 일하실 필요는 이젠 없어졌군요?"



차갑게 그들을 향해 말해주었다. 시녀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무슨 우연인지, 식사 때가 되면 데리러 온다던 메리나가 그녀 특유의 총총 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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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29 22:34 | 조회 : 4,00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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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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