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경박스러운 그 남자




그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저런 분노를 쏟아내는 것일까.


단순히 내가 신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아니면, 그들의 황비를 죽인 여자의 아들이라서?



어느 쪽도 내가 나서서 지은 죄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을 그냥 무시하자고, 받아들이자고 생각하며 참아왔다. 나는 <그 날>을 또다시 반복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니까.


그러나 데리지아, 내 어머니의 표정을 보자 참아보자고 다짐했던 마음마저 산산히 깨졌다. 이로써 제대로 증명이 된 것이다. 이곳에 내 편은 한 명도 없다.



찢어진 이마가 따가웠다. 몸에 던져진 계란이나 오물로 인해 온 몸이 찝찝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표정관리를 유지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신력도 억지로 누르고, 눌러서 잠재웠다.



귀 옆에서 왱왱 거리며 울리는 그들의 고함 소리에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곤,


"황제 폐하, 실례지만 상처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황제는 내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녀들에게 짧게 손짓을 했다. 나는 그대로 입술을 꾹 다문 채, 마인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때의 그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그를 완전히 지나칠 때 즈음, 마인이 날 불렀다.


"어이, 리안."




***




어머니가 죽은 게, 리안. 그 녀석의 잘못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 녀석의 호위무사라던 '카인'.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녀석에게 들은 바로는, 그 여자의 치부로 대우받으며 감금생활을 했다 했지. 그런데 그런 녀석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엇을 관여할 수 있겠는가.



처음 전쟁터에서 만났을 땐, 그 당돌하고도 오만한 하얀색 눈빛에 호기심이 들어서 살려주었다.


'전쟁터의 괴물'이라 불리는 나에게 태연하게 말을 붙이는 이상한 녀석. 그 녀석에게서 드는 복잡한 감정에, 머리 아파지기 싫어 분노의 대상이라고 정해 버렸다.


태연한 척 하면서도 무서움을 숨기는 그 녀석의 모습은 또 다른 흥미거리였다. 별 의미 없이, 단순히 황제가 되길 바라며 이리저리 휘둘려 커 온 나에게 있어서 그 흥미거리는 꽤나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데리지아를 닮은, 아름다운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들어 자괴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화를 냈다.


계속 반항심을 보이는 그의 태도에 괴롭히고 싶어졌다. 어린애라도 된 것 마냥.

굳이 침실을 내주면서, 욕설을 해가면서까지 옆에 붙여두고 싶었다. 왠지 그리운 듯한 향기가 그에게서 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난 리안이 돌을 잡아선 던진 이에게 집어 던지며 당당하게 화를 낼 줄 알았다.
'앞에 나와서 결투해라!' 라며 자신 상황은 잊은 채, 또다시 내게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예상했건만.


그는 어딘가 쓸쓸해진 눈빛으로 그냥 그들의 분노를 등진 채, 돌아섰다. 그의 이마에 상처를 보았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렀다.



"어이."


그러나 곧 내 부름에 뒤 돌아서 날 본 그의 표정은, 너무나 지쳐 보여서. 작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겨우 살아가는 듯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더 이상 무엇이라 말할 수 없었다.



***



시녀들이 직접 씻겨 주겠다는 것을 극구 사양한 리안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소리를 내며 걸어나왔다.



"아이고......역시 내 일생은 하루라도 평화롭지가 않구나."



아무도 없는 김에 투덜대 보았다. 지금쯤이면, 데리지아- 그의 어머니의 목은 잘렸겠지. 여전히 리안에게서 슬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실감이 되지 않는 건지, 화려한 그녀의 죽음이 상상되지 않는 건지. 어느쪽인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너무도 리안의 마음속은 잔잔했다.


몸에서 오물 냄새가 아닌, 부드러운 비누 냄새가 나고 깨끗한 헝겊과 붕대로 상처가 덮히자 리안에게 피로가 서서히 몰려왔다.


리안이 침대에 목욕 가운만을 입은 채로 힘없이 널부러져 천장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아까의 마인이 생각났다.


'어이'


라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마치 걱정- ...까지 생각하곤 리안은 고갤 흔들어 떨쳐냈다. 그럴 리는 없겠지. 잦은 전쟁으로 감정이 거의 없다고 불리는 마인이다. 게다가 자신이 미워하는 여자의 저주받은 아들에게 걱정 같은 걸 느꼈을리가.



리안과 시선이 마주치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등을 돌려 버린 마인의 모습이 떠오르자 리안은 머리가 복잡해짐을 느꼈다.


'별 의미 아니겠지..'


어깨를 으쓱하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쉬고 있으니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리안이 '들어오세요' 라고 얘기했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 나오며 문이 열렸다.


"리안님! 얘기 들었어요, 괜찮으세요...?"


들어온 사람은, 메리나였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전까지 가졌던 긴장감은 어디로 갔는지, 가까이 다가와 이리저리 얼굴을 살폈다.


"응? 아 별거 아냐. 신경 쓰지 마."


"아-..다행이네요."


메리나가 안도했다는 듯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방금까지 일어났던 소란스러운 경멸이 가득한 상황과는 너무 달라, 리안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또다시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고 리안은 말을 걸었다.


"그래서, 무슨 일 있어?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메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앗, 네. 지금 콘들 재ㅅ.."


-쾅!


그녀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문이 다시 한 번 요란한 소릴 내며 열렸다. 리안의 시선이 그쪽을 향하고, 메리나가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하이~!"



라며 메리나가 말하려 했던 그 누군가가 경박스럽게 들어왔다. 절로 리안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활기찬 인사였다.



1
이번 화 신고 2016-12-28 01:12 | 조회 : 4,017 목록
작가의 말
렌테

제 최애캐가 등장했군여 ㅎ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