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눈(9)-네가 오기를 기다리며 듣는 카운트 다운

카르는 언제 돌아 올까?

묘한 설렘과 불안감이 담긴 한 숨을 가느다랗게 쉬었다가 고개를 돌려 낡은 시계를 보자 어느덧 짧은 시계 바늘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행복한 눈이 왔으니까 오늘 내로 행복한 일이 생길 거야.”

컵을 깨트리는 바람에 마시지 못한 커피를 호호 불면서 조심스럽게 마셨다. 그러다가 문득 진원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 고마운 사람이지.”

카르는 약속과는 다르게 한 달이 한참 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여 카르가 다쳤을까, 큰 일이 생겼을까? 아님… 날 잊은 걸까. 하루 하루 불안감에 휩싸여 말라가던 그를 다독여 준 사람이 진원씨였다.

고마운 사람. 그리고 미안한 사람.

다시 호호 불자 따뜻한 김이 부드럽게 올라왔다. 아, 마시지 않던 커피를 마시게 된 것도 진원씨 덕분 이였지.

호록 마시고 눈을 감았다.

진원씨 덕분에 한 없이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 앉았다. 진원씨 덕분에 이제는 어느 정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돼서 집 밖에 나가고 싶을 때도 생겼다. 진원씨 덕분에………

진원씨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내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줬다.


하지만.. 그래도 공허함은 어쩔 수 없었다. 검은 머리칼에 선명한 보라색 눈을 가진 아이. 하얀 피부에 여자 같이 생겨서 사람을 홀려 따먹는 세상에 둘도 없을 여우. 세상에서 그 아이만큼 아름답고 빛나는 아이가 있을까? 그 보석 같은 아이만큼 소중한 보석은 단언컨대 없다.

적어도 내게만은.

아니 내게만 그래야겠지.




“으응…….”

내가 언제 잠들었었지?

타는 듯한 갈증에 목을 매만지며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 마신 뒤 뚜껑을 닫고 다시 냉장고 안에 넣었다.

“으.. 찬 물 마시니까 잠이 확 깨네.”

뻐근한 몸을 쭉 펴서 스트레칭을 하고 천천히 거실로 걸어갔다.

“아… 커피가 다 식어 버렸네.”

차게 식어버린 커피를 보다가 시계를 봤다.

오후 11시

커피 잔을 탁자에 다시 내려 놓고 조용히 카르 방으로 갔다. 닫혀있는 문 앞에 섰다.

머뭇머뭇

문 손잡이를 차마 잡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다가 눈을 질끈 감고 조용히 열자 익숙하지 않은 컴컴한 방 안이 보였다.

“….. 내 방에 있나.”

그래. 카르는 내 방에 있는 걸 더 좋아했지.

문을 다시 닫았다. 그리고 바르르 떨리는 손을 겨우 문 손잡이에서 때고 조금은 빨라진 걸음으로 내 방으로 향했다.

호기롭게 방까지 걸었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냉기. 차게 식은 커피가 온 몸을 적시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다… 카르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그러면서도 문 손잡이를 억세게 잡고 있었다. 울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 뜬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애써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시선을 바닥에 꽂았다.

이제 많이 길어 쇄골까지 오는 갈색 머리카락. 네가 없는 방이 싫어서 들어가지도 않은 내 방. 그래서 인지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바닥.

하지만 문이 열리는 반경 안은 먼지도 쌓여 있지 않다.

“하….. 이 짓을 몇 번이나 해야 네가 돌아올까.”

네가 떠나고 봄이 왔다가 여름이 됐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됐다.

“오늘 첫 눈이었는데.”

올 해 겨울은 이상하게도 눈이 오지 않았다. 겨울 치고 따뜻했지.

씁쓸한 미소를 짓고 비척비척 일어나 커피를 버리고 싱크대에 컵을 대충 놨다.

“술이나 먹을까??”

지갑을 가지러 가다가 진원씨의 얼굴이 떠올라 고개를 내젓고 코코아를 꺼냈다.

‘하늘씨! 외로우면 코코아 드릴 테니까 이거 타 드세요. 그리고 예능이든 뉴스든! 아무거나 틀고 눈을 감으세요. 눈을 감고 코코아 향을 깊숙이 들이 마셨다가 코코아를 호록! 마시는 거예요! 그리고 눈을 뜨세요.’

이제는 몸이 기억한 걸까? 어느새 코코아의 달콤함과 따뜻함을 머금은 채 눈을 뜨고 있었다.

한 날 한시 한 장소에 모여 카운트 다운을 외치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5! 4! 3! 2!”

다시 눈을 감았다.

“1!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형아.”

잘 못 들은 걸까? 촛불을 든 채 외치는 목소리들과 함께 지독히도 그리운 목소리가 섞여 들어있었다. 그래서 난 눈을 번쩍 떴고 고개를 올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코코아를 냅다 던져두고 카르를 끌어 안았다.

“형. 내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으흑… 으…. 왜..흑.. 이제야..”

나쁜 여우. 지독한 여우.

“나.. 진짜 미치기 직전이었는데…. 형이 이렇게 울어 주니까 살 것 같아.”
“닥쳐!! 이…. 으윽…..으헝..”

나쁜 여우 때문에 10년 동안 흘리지 않은 눈물을 가득 쏟았다.

“흐응… 우리 형. 우는 것도 귀엽네.”

…… 나쁜 여우. 예쁜 여우. 소중한 여우.

“히끅…. 넌 드래곤이 아니라 여우야!”
“그래, 그래.”
“….. 쓰다듬지 마.”
“알았어. 근데 형 나 없는 새에 왜 이렇게 귀여워졌어?”
“.......”
“나 얼마나 보고 싶었어?”
“…….”
“형아. 나 형아 목소리 듣고 싶어. 목소리 들려줘.”
“………….”
“카르. 라고 불러줘.”

성인이 된 카르는 이젠 ‘여자 보다 예쁜 남…자?’ 라기 보다는 ‘예쁘장 하게 생긴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 특유의 색기는 어쩔 수 없는 걸까?

“…. 카르.”

왠지 모르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고개를 푹 숙였는데 이제는 많이 커버린 손이 내 턱을 감싸 쥐고 올렸다. 그리고 카르가 허리를 숙여 눈을 나와 맞추었다.

“더.. 달콤하게 불러줘 형아.”



행복의 눈은 이번에도 내게 행복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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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18 16:38 | 조회 : 2,783 목록
작가의 말
뚠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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