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눈(7)-근데 아니었네

“카르! 카르!”
“우웅… 왜 형.”

으하암.. 곧 성룡식을 치러야 해서 그런가… 계속 나른하네.

“카르카르!”
“웅..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좋네….. 그런데 무슨 일 있어 형?”
“드디어! 눈의 세계에 갈 수 있게 됐어!!!”
“..응?....... 언..제?”
“모레! 모레면 눈의 세계에 갈 수 있어..”

뭐지. 이 감정은? 뭔가 혼란스러워. 형이 기뻐서 좋은데… 많이 짜증나네. 답답해. 숨이 막혀.

“그…… 래. 근데 정말 눈의 세계에 갈거야?”
“….카르? 너도 알잖아. 이 연구를 위해 모든걸 버렸어. 내 가족도 삶도. 오직 그 곳에 가기 위해. 그런 나한테 그런 질문은 좀 당황스러운데.”

형한테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파괴적인 생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숙이고 있던 중 형이 버린 것 중에 가족과 삶 밖에 없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형이 가족과 삶만 버렸다고?

“사랑은?”
“…..?”
“왜 사랑을 빼먹어? 형이 그곳에 가면 나를 버리는 거잖아.”
“카르.”
“날 버리는게 맞잖아!!”

터져 나오는 감정이 목소리가 갈라진다 나는 이런데 형은 침착한 듯한 목소리. 싫다. 근데 그것 마저 도 좋아. 싫어. 하지만 형의 모든 게 좋아.

형의 목소리면 그 어떤 잔인한 말 조차도 좋아하는, 이런 날 버린다고?

“카르.”

나를 달래려는 듯한 음성은 나긋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더욱 숙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카르. 너도 알잖아. 그 곳에는 혼자 밖에 갈 수 없어.”

형의 희고 수 많은 재련과 연구로 인해 상한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고개를 들게 했다. 일 평생 눈만을 사랑한 사람의 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따뜻한 손. 이 와중에 느껴지는 다정함에 눈물이 나왔다. 형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내가 싫고, 이렇게나 절망 하는 나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하는 형이 원망스럽다.

차게 식는듯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 때쯤에 그 동안 마음속에서 맴돌던 생각이 결국은 터져 나왔다.

“형은 나를 사랑하지 않잖아. 그저 나를 사랑한 기억뿐이지. 그래서 형이 포기한 것 중에 사랑이 없는 거 잔아. 그지…? 그래서 나를 이렇게 쉽게 버리는 거지.”
“……. 카르.”

형의 갈색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형은 내 손을 먼저 잡지 않고 먼저 안지 않고 먼저…… 나와 하고 싶어 하지 않았잖아. 매번 내가 졸라야 했지.“
“카.. 르.”
“그리고 단 한번도 사랑한다고 한 적 없어.”

형의 흔들리는 눈빛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이게 사실이라는 거니까. 형이 저렇게 충격에 휩싸여 내 이름을 부르는 건 그저 내가 이걸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과 죄책감.
그래.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지.

“미안해 카르.”

미안해 형. 형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 조차 거짓이야. 형은 나를 사랑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 우리가 연인이었던 적도 없어.

“하하하! 그래! 형과 나 사이엔 진실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어.”
“…………”
“아, 한 가지는 있었나.”

형은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았다. 내게서 고개를 돌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형을 진심으로 사랑했어.”

형의 손이 크게 움찔 했지만 그 것 뿐.
아, 형은 정말 나를 버릴 생각이었구나.

“아니 사랑해.”

정말 짧게 살았던 낡은 집. 문을 열면 기괴한 소리가나고 걸을 때 마다 바닥이 꺼질 것 만 같은 소음이 나는…

그 곳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정말 형을 사랑하니까 형이 사랑하는 하얀 눈에게로 보내야지.

뽀드득- 뽀드득-

그 날 처럼 눈은 거세고 발 밑은 푹푹 꺼진다. 그래서 인지 발걸음은 한 없이 느려진다. 느려지고 느려져서 한 참 후에도 난 낡은 집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형은
나를 뒤 쫓아 오지 않았다.

“한 번만. 단 한번만 이라도 내게 먼저 다가와 주지.”

무릎이 꺾인다.

“으윽… 흐윽..으….”

눈물이 눈 앞을 가려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으으… 으아아아아…!!!”







“형.. 형.. 형…..”
“카르으!! 결계 좀 풀어 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카르으!!!”
“보고싶어 형….”

오늘이면 형이 떠나는 구나. 내 옆을 영원히.. 그 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니까. 내가 드래곤 이기에 갈 수 없고 내가 건 가디언 계약도 형이 마법 진을 발동 시키는 순간 깨지겠지. 아, 그럼 모든 것이 가짜였다 는걸 알게 되려나.

그럼 날 증오하면서 떠나겠지?

“하….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로님이 이거 주라고 하셨어… 빨리 정신 차리고 나와라.”

낡은 책 한 권이 결계를 그대로 통과했다. 그리고 내 옆으로 떨어지는 책.

“… 역시 장로님인가? 꽤 공들여서 짠 결계인데 이걸 그냥 통과하네.”

내게 장로님과 같은 힘이 있었다면 형을 쫓아 눈의 세계로 갈 수 있을까? 아, 내가 드래곤인 이상 눈의 세계로는 갈 수 없지. 그럼 내가 죽어야 하나.

형과 같이 있고 싶어.

“장로님이 주신 책이라….”

쓴 웃음을 지으며 책을 아주 살짝 펼치는 순간 밝은 빛 무리가 터져 나와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빛 무리에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보가 있었고, 각인되면서 느껴지는 그 뜨거움에 몸이 바르르르 떨렸다. 그러다가 각인이 끝나가면서 열기가 사그라졌고 발작을 하던 몸은 잠잠해 졌다.

“헉.. 허억… 헉..”

형과 함께하는 방법이 있다. 내 머릿속을 배회하는 이 정보대로 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날개를 펼쳐 레어를 뛰쳐 나갔다.

“어.. 어? 카르? 카르!! 또 어디가!!”

높은 상공으로 치 솟은 후 방향을 잡고 날개를 한 번 펄럭이자 단 몇 초 만에 형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문 앞에 내려가 기괴한 소음을 내는 문을 열었다.

끼기기기기기긱-

“형.”
“….. 위대한 존재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마법 진에서 풍겨오는 엄청난 한기가 집을 배회하고 있고 형은 마법 진을 발동시킨 후 인지 완성된 액체를 마법 진에 한 방울씩 정해진 곳에 붓고 있었다.

마법 진이 발동되어 있으니….
“기억이 제대로 돌아왔나 보구나.”
“네.”

형은 나를 보지 않았다. 그저 액체를 붓고 있을 뿐이었다. 옛날 이었다면 적어도 움찔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가지마 형.”
“왜 저를 형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이제 유희는 끝난 것 아닙니까?”
“처음부터 유희가 아니었는데 어떡해 유희가 끝날 수 있어?”
“……… 전 갈 겁니다. 부디 저를 막지 마십시오.”

형의 손이 빨라졌다. 하지만 한 방울씩 정확히 부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빨라져도 남은 액체는 많았다.

“있지 형.”
“…….”

무시하겠다는 건가? ……. 씁쓸하네.

“나는 형의 행복을 바라.”
“…………”
“그래서 내가 형을 보내기 위해 형과 살던 집을 나왔어.”
“………..”
“근데. 형. 방금 엄청난걸 깨닫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거야.”
“……..”
“형이 원하던 눈이 내리는 곳에 갈 수 있어. 비록 그곳처럼 계속 내리는 건 아니지만…. 겨울이 오면 무조건 눈이 내려. 이곳처럼 몇 년 에 한 번씩 내리는 게 아니라…”
“…………”
“무엇보다 나와 함께 갈 수 있어 형.”
“………….”
“형. 마지막으로 물을게.”

형은 여전히 액체를 붓고 있었다.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건데도 이제 보니 꽤나 많이 줄어 있다.

“나와 그곳에 가지 않을래?”
“죄송합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돌아오는 대답. 베시시- 웃음이 나온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
“형이 한 발짝 이라도 내게 다가와 줬다면… 그냥 형을 보내줬을 텐데.”
“컥!!”
난 형의 뒤로 가 형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말캉한 살을 뚫고 들어가 형의 심장을 잡자 심장이 뜨겁게 고동치는 게 느껴진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빼자 얼굴에 닿는 뜨거운 피. 쇳 냄새가 나는 짙은 혈 향. 그리고 마지막 숨을 뱉어내는 형의 숨소리.

숨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덜컥 쏟아진 액체 때문에 파괴된 마법 진. 그 위에 가슴이 뚫린 채 눈을 부릅 뜨고 죽은 형.

“아니. 아니야. 형은 죽지 않았어. 여기, 내 손에 형의 심… 장이.. 영혼이 있잖아.”

영혼이 심장을 빠져 나오지 않도록 마법을 써 가둬놓았다. 그리고 아공간을 열어 형의 심장을 보관한 후 다시 닫았다.

덜덜 떨리는 팔을 뻗어 형의 몸을 들어 올렸다.

“……..차가워.”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형… 형.. 나 눈물이 나와. 이상해. 형과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상해. 자꾸 눈물이 나와.”
“………..”
“또 무시하는구나 형은.”

단 한번의 날갯짓에 다시 레어로 돌아왔고 형을 붉게 빛나는 마법 진 위에 눕혔다. 그리고 심장도 놨다.

아직까지도 눈물이 흐르고 있네?

“형… 나 아무래도 어딘가 망가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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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06 16:38 | 조회 : 3,019 목록
작가의 말
뚠뚜니

과거편 끝! 이제 현재의 하늘이가 나타납니다. 과거 편이 좀 이해가 안갈수도 있으니(필력이 딸려...ㄷㄷㄷ) 이해 안가시면 올려주세요. 답변과 함께 다음 화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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