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눈(4)




[형!!]

“정확히 8일 전이군”

[아, 미안. 깼어?]
[응…. 형 어디 나가? 왜 새벽부터 옷을 입고 있어?]
[눈 와서 배란다 좀 나가려고.]
[눈? 아…. 형 눈 좋아했지.]
[응. 기억 하고 있네.]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얼굴을 붉히는 내 모습이 낫설면서도 설렌다. 이렇게 3인칭 시점으로 보니 과거의 우리 모습이 정말 연인 인 것 같아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댄다.

“형이 쓰다듬어 줬을 때 기분 좋았는데.”

[하…… 진짜 좋다.]
[그렇게 눈이 좋아?]
[응.]
[왜?]
[눈이 오는 날은 정말 희한하게도 좋은 일이 생기거든.]
[흐응…..]
[왜? 믿기 힘들어?]
[...........]

“저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아..... 생각이 없었지? 질투하느라.”

[눈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야. 그랬으면 겨울에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았겠지.]
[그럼 무슨 눈이 좋은건데?]

그저 멍하니 눈을 보는 하늘이 야속해 째려보았지만, 역시나 눈에 흠뻑 젖어 나 조차 생각하지 않는 그는 내게 시선 한 줌 주지 않았다.

[이렇게 살포시 내리는 눈.]

제 손에 닿는 순간 녹아버리는 눈을 그저 따뜻하게 바라보는 하늘. 그리고 그런 하늘을 보며 주먹을 말아 쥐고 있는 나. 결국에는 그 눈을 보는 모습 조차 사랑스러워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붉힌 채 홀린 듯 그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짜증나네. 왜 형은 저 순간 마저 사랑스럽냐…”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찾아 온 행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두 개. 그리고 남을 것 같은 게 아직까지는 한 개야.]
[으으… 키스하고 싶다.]
[프흐…. 참아.]

하늘이 눈을 곱게 접으며 웃는데 말은 또 무척이나 잔인해 과거의 나는 안절부절 언제쯤 키스해도 될까 고민을 하고 있다.

[하나는 아빠가 죽은 것.]

과거의 하늘이 형을 모르는 나로서는 저 때 티는 안 냈지만 꽤나 놀랐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형의 기억을 아주 잠깐 훔쳐다 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아아, 아직 그 인간이 살아있었다면 형을 탐하던 눈깔을, 입을, 손을 터치고 찟고 토막 내어 고통에 몸부림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쩝… 아쉽네.”

[그리고 두 번째는…. 너를 완전히 우리 집에 들인 것.]
[으응?]
[그 때는 몰랐지만 너를 들이기로 완전히 마음 먹은 게 지금 생각하면 아주 큰 행운이었어.]
[아….. 으.. 형. 들어가자. 내가 꽉꽉 조여줄게. 응?]
[싫어. 그럼 너 성인 되잖아.]
[끙…… 하.. 그럼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게 뭐야?]

형은 밖으로 나온 후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언제 챙겼는지 모를 상자를 꺼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를 열자 보인 건 형의 머리카락에 내려 앉은 눈과 같은 흰색 목도리였다.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건 오늘.]
[오늘? 우리 깬지 20분 정도 밖에 안됐는데?]

형이 검은 상자에서 부드러워 보이는 목도리를 꺼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에게 흰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지금. 이 순간. 새벽에 너랑 같이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 이게 오늘 행운이야.]

말하고 나서 형은 내게 짧게 입을 맞추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얼굴을 잔뜩 붉힌채 굳어 있다가 역시나 부드러운 목도리에 얼굴을 팍 묻고 신음을 흘렸다.

[으….. 아, 몰라. 언제부터 형 허락 받고 덮쳤다고. 흐흐… 이 목도리 튼튼한지 확인 해 볼까?]

나는 혼자 들어가 버린 형을 바로 쫓아가 잠긴 형의 문을 냅다 부시고 들어갔다.

[야! 이거 이렇게 쓰라고 준거 아니거든?!]
[헤헤! 형이 이거 풀어버리면 형은 나한테 안 튼튼한 목도리 준거다?]
[아! 진짜! 안 풀어?!]
[와. 이거 절경인데…. 목도리 잘 쓸게 형. 아, 물론 형 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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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01 15:02 | 조회 : 3,149 목록
작가의 말
뚠뚜니

오늘이나 내일 또 올리니까 up이 떠있어도 한 번 들어와 주세옇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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