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질감은 쉽사리 인정이 안 된다.



“내가 말했을 텐데. 뺏은 적이 없다고.”


호텔 로비에서 날 두고 이상한 기류가 느껴지자 몰리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사장님이 잡은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가자 아파왔고,
너무 아파서 잡은 그 손을 뿌리치려 애썼지만 풀리지 않았다.


“아…아파요.”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으니, 갑시다.”


아마도 둘은 아는 사이였나 보다. 무엇을 뺐었고, 무엇을 뺏겼을까.
그의 손에 이끌려 나온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의 개인비서와 고급 외제차 안으로
날 구겨 넣듯 밀어 넣었고 얼떨결에 타버렸다.


“돌려 말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김지용이랑 사귑니까? 한가현씨 게이입니까?”


내 옆에 앉아서 팔걸이에 팔을 기대고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인상을 쓰고선 시선을 마주하지도 않고선 눈을 감고선 묵묵히
내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 그.


“…아뇨”
“그럼 왜 호텔에서 만난 거고 로비에선 뭐한 겁니까?”
“…ㅈ…제 개인 사생활입니다. 도와주신 건 감사하고 차에 태워주신 것도 감사한데
그만 내려주셨음 합니다.”
“세워. 내려”


차갑게 굳은 목소리로 자신의 비서를 향해 세우라는 말을 하곤
갓길에 차를 세우고선 내리는 비서, 내가 내리려 하자 내 팔을 꽉 잡고선
잡아끌어 얼굴을 마주했다.


“난. 동성애자를 증오해, 당신이 동성애자인건 상관없는데 내 동생한테 더러운 짓
가르치려고 하지마. 더 이상 만나려고 하지 말고 연락와도 무시해.”
“…”


날 바라보는 그 시선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뭘까, 왜 나에게 이상한 이질감을 가져오고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내게 이토록 차갑지는 않았는데
김지용과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나에게 이토록 차가운가.


“씨발.”


눈물이 고인 체 자신을 바라보는 가현의 시선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 인 것처럼 가해자가 된 기분에 이상한 이질감이 들었다.


“한가현 좀 알아봐 줘, 사소한 거 하나까지 전부다 무슨 목적으로 온건지
또, 뭘 알고 있는지도.”
“네 사장님.”

대체 뭘 숨기고 있기에 한낱 비서의 뒷조사 까지 하는지 의문이었다.
창문을 살짝 열고선 담배를 입에 물며 다시금 한가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표정, 그 눈빛, 그 입술의 떨림 그리고 그 눈물이 아파왔다.
왜 인지 모를 고통이었다.



.

.

.



“한 달간 런던 출장 가는데 가현씨는 같이 가고 싶어요?”
“…”
“가현씨?”
“아… 네? 죄송해요 몸이 안 좋아서…”
“이사님 한 달간 런던 출장 가는데 수행비서 정해야 해서요 오늘까지 정하라고
지시가 있어요, 가고 싶어요?”
“…아뇨 지혜씨가 가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남자끼리 런던가면 오해 받을 거 같아요.”
“그것도 그러네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평소와 같았으면 눈에 쌍심지를 키고선 가겠다고 했을텐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멀리하고 싶어졌고, 한 달 동안 그를 못 보는 아쉬움보단
두려움이 더 커졌다. 한 달 동안 김지용은 한국에 혼자 있는 건가.


“한가현씨. 사장실 호출입니다.”
“저… 저요? 저를 왜…”
“잘 모르겠는데… 아마 어… 많이 혼날 거 같아요. 여기 손수건…….”


사장의 비서실에서 친히 내려와 날 데리러 왔고, 또 나에게 손수건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다. 내가 눈물이라도 흘릴거 같았나?
사장실 앞에서 심호흡을 시키곤 심호흡을 따라하니 문에 노크를 하고선
날 들여보내는 그녀.


“앉아요.”


안경을 쓴 모습은 처음이었다. 서류를 보면서 안경을 쓰곤 날 본체만체하고선
앉으라는 형식적인 투박한 말만 하고선 서류를 다시 보며 사인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어제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책상 앞에 놓인 명패가 유난히 반짝였다.
이름이 박지호였구나. 지호… 이름도 차가워 보이네.


“그쪽 런던 따라 가지마세요. 이건 부탁이에요”
“…안갈…겁니다. 후…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전 김지용 아니 이사님 아드님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고 그냥 형 동생입니다.”


어젯밤에 수없이 거울을 보며 거짓말을 했다.
아무런 사이가 아니고 형 동생 사이라고 100번은 넘게 연습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거짓말을 떨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던 것 같다.


“앞에 서류봉투 열고 보세요. 거짓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거짓말이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자기방어로 말이에요, 근데 거짓말이 통하는 것도 사람 나름입니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거짓말이 안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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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13 16:26 | 조회 : 2,144 목록
작가의 말
모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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