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도베르만은 애교가 많았다.




“아…저…정말 죄송해요…그…그게…”
“괜찮아요, 어디에 미친놈이 있어요?”
“ㅊ…친구요!! 친구! 하하하! 내가 여길 왜 왔지…”
“실적표 받으러 온 거 아니에요? 아까 부탁했는데”
“마…맞다 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넋이 나간 표정으로 영업2팀 부장에게 뛰어갔고,
그런 내 뒷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사님의 시선이 아직도 느껴져 가슴이 뛰었다.



.


.


.




“오늘 수고했어요. 이만 들어가 봐요, 사장님이랑 저녁식사 하기로 해서”
“수고하셨어요. 아까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살짝 옅은 미소로 날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그의 배려심이
날 더 조여 오는 듯 했다.


“여보세요”
[ 퇴근했을 건데 왜 연락이 없어? 약속 잊었어? ]
“…후 안 가면 어쩔 거야?”
[ 어쩌긴 아빠한테 말하는 거지 ]
“치사한… 됐다 됐어. 갈 테니까 기다려 주소 보내줘.”


이사님의 미소를 회상하며 눈을 감고 좋아서 몸서리를 치고 있던 내가
바보같이 수신인도 확인하지 않고 받아버렸고, 또 그 약속도 잊어버려서
곤란하게 됐다.
말처럼 쉽게 하면 되는데 늘 쉽게 가 안돼서 문제야.



“안녕하세요.”


정말 오늘 하루 동안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꼴 보기 싫은 어린 사장놈을 또 퇴근길에 마주쳤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버스카드를 들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이처럼 말이다.


“ㅇ…왜 웃는 겁니까!”
“여긴 회사 밖이라서 자유롭습니다! 웃지도 못합니까?! 인권 침해입니다!”
“흐…흠! 혹시 J호텔가는 버스 압니까?”
“에? ㅁ…뭐라고요? 잘 못 들어서…”
“후… J호텔가는 버스 아냐고 물었습니다.”
“거…거긴 왜요?…”
“그쪽 김우빈 이사 비서 맞습니까? 약속장소도 그쪽이 예약한 거 아닙니까?”


미쳤다. 확실히 완전히. 김지용의 약속을 아침부터 곱씹는 바람에
호텔 레스토랑 예약을 신라호텔로 한다는 것을 그만 J호텔로 해버렸다.
되는 일 하나도 없는 운수 안 좋은 날이 바로 오늘인거 같다.


“어… 저도 거기 볼 일 있어서 가는…길…이긴…한데…뭐…”
“그럼 데려다 주세요. 추가 근무 수당 줄 테니 아직 퇴근 안 했지만
회사 인걸로 합시다.”


정말 막무가내에다가 유아독존인거 같았다.

‘저놈에 성질머리 저러니까 여자친구가 없어서 룸 여자들이랑 노는 거지 으휴…’


속으로 열심히 사장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욕을 하던 그때 도착한 버스
버스카드를 쥐고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떠올라 버스카드를 뺏어 들고선
버스에 올라타 내 버스카드를 찍고 이 미친개의 버스카드를 찍고선 얼떨결에 올라타는
미친개를 바라보곤 맨 뒷자리로 걸어갔다.


“서서 갈거예요? 쫌 멀어서 다리 아플 텐데.”
“더럽지 않습니까? 버스는 청소 안하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 사람이 옷을 입지 않습니까.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따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 젓고선 핸드폰을 꺼내들어 이어폰을 꼽았고,
날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 미친개가 어이가 없었다.
문맹인가 정말 자기 개인비서 하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나
아니면 서민의 생활을 모르는 건가. 짜증이 절로 나고 화병이 날것만 같았다.


“후… 앉아요. 옷이야 세탁하면 되니까 몸이 힘든 것 보다는
영양가 있는 행동 같은데요.”
“흠흠. 의외로 말이 잘 통하네요.”
“대체 사장님 개인비서님은 어디 가셨어요?”
“…김우빈 이사님이 버스타고 오라고 하셨다면서 달랑
그 버스카드만 주고 퇴근했습니다.”


웃겼다. 태어나서 버스를 처음타본 사람은 보기 힘들었는데 지금 내 옆에 앉은
대기업 사장이 버스를 처음 타봤고, 또 버스카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 차갑고 원칙주의자인 이 미친개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웃겼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인데. 아까 버스정류장 앞에서 본 제 모습은 비밀로 해주…실수…”
“알겠어요. 내려야해요 일어나요.”


나름 귀여운 모습이있는 도베르만 같았다. 원칙을 지키지만 어색한 애교를 떠는
그런 굳건한 도베르만 같아보였다.


“전 여기까지. 그럼 이만 가볼게요.”
“여자친구랑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낼만한 경재능력이 있나보죠?”
“…상…관없지 않나요?”
“아 그러네요. 그럼”


치부를 걸린 것만 같았다. 자꾸 잊어버리는 습관에 김지용을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손이 떨려왔고, 김지용을 보면 무슨 표정을 어찌 지어야 하며
어떤 뉘앙스를 풍겨야 할지 머리가 아파왔다.



“2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음성이 들렸고, 그렇게 내발로 호텔룸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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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12 00:58 | 조회 : 2,390 목록
작가의 말
모근님

다음화는 수위! 그러므로 열심히 쓰기위해 자고일어나서 마저 할게요! 성인인증이 되어있지 않은 분들은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sksungun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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