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시작(1)

-10월 5일

“오늘은 하루 종일 가만히 여기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아윽…….”

방 안은 조금 어두웠고,
침대 옆 작은 램프 하나만 켜져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잘 있을 수 있었으면서……
그때는 왜 그랬던 거니, 응?”

남자는 연우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리곤 그의 항문에 중지 손가락을 깊게 넣었다.
남자의 옷 소매를 잡은 연우의 손은 덜덜 떨렸다.
그리고 남자가 드디어 손가락을 빼내자, 손 힘이 풀려 양쪽 팔이 침대 위에 툭 떨어졌다.

“내일도 쓸데 없는 생각 말고
여기서 꼼짝 말고 있는게 좋을 거야, 알았지?”

남자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손가락을 연우의 항문 속에 찔러 넣었다.

“아……!”

남자의 검지와 중지가 깊숙하게 들어갔다. 손가락이 끝까지 들어가자, 남자는 두 손가락을 다시 빼내었다. 남자는 그렇게 여러 번을 반복하면서 오싹한 웃음을 지었다.

연우는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발버둥 쳐보려고도 해도 몸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

연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가위에 눌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멍하니 허공을 봤다.

‘대체 왜…….’

벌써 세번째이다.
이 곳에 오고 나서 계속 이런 꿈을 꾸고 있다.
생활이 나아지자, 이제는 꿈에서 괴롭히겠다는 작정인 듯 했다.

연우는 손가락을 먼저 구부려보더니
천천히 다리도 움직이고, 팔로 몸을 지탱하여 일어났다.

순간, 어제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피함이 몰려와 이불 속에 얼굴을 푹 묻었다.

‘내가 그걸 왜 말한 거지…….’

그는 방에 불을 키려고 일어나 전등 스위치 쪽으로 갔다.
스위치를 누르려는 순간 바로 옆에서 문이 열리더니, 민운과 눈이 마주쳤다.

“아…….”
“일어났네?”

민운은 조심스레 열던 문을 활짝 열고 말했다.

“네…….”
“언제까지 그럴 거야? 동갑인데.”
“싫어요. 그리고……또 정확히 말하면 전 98년생이니까…….”
“……그래도 불편한데.”

연우는 불편하다는 말에 움찔했다.
그리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야. 나와, 밥 먹자.”



그는 아침을 다 먹고 위층에 올라가더니
잘 차려진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내려왔다.

말끔한 정장에 넥타이, 은색 넥타이 핀, 그리고 이마를 가리던 머리까지 시원하게 올리니 도무지 19살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모습이었다.

“……진짜 고등학생 맞아요?”

연우는 민운에게 물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19살은 맞지만, 고등학생은 아니야. 대학생이지.”

연우는 또 한번 충격을 먹었다.

“대……학……?”
“졸업을 해야하긴 한데……일이 바빠서. 그러고보니 너는?”
“……전 자퇴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잠깐 정적이 흘렀다.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인가…….’

민운은 슈퍼아저씨의 말을 확인하고, 손목에 찬 시계를 봤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무튼 오늘은 네가 할 일을 알려줄게.
내가 점심 전에는 나가봐야 해서 대강 나랑 할 것만 알려줄 거야.
나머지는 아줌마가 알려주실 거고.”

그는 슬슬 일어서더니, 뭔가가 생각났는지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너 옷……사야하지 않아?”

연우는 처음 온 날을 빼고, 계속 같은 옷을 입고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줌마가 주신 거 몇 개 있는데…….”
“에이, 안돼. 사야해. 그것도 크잖아.”
“괜찮아요.”

“그거 내가 재작년에 입은 건데 잘도 맞겠다.
몸에 딱 맞는 걸 입어야지.”

그가 입었던 옷이라는 말에, 연우는 흠칫 놀랐다.

“네? 이거…….”
“내가 옛날에 입었던 옷인데. 아줌마가 말 안 해줬어?”

당황하는 연우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는 귀여워하며 웃었다. 민운도 그 표정이 웃겼는지 큰소리로 웃었다.

“그럼 누구 옷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
“아무튼 옷 몇 개 사줄게.”
“…….”

사준다는 말에 또 연우의 표정이 굳었다.
민운은 그가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말을 꺼냈다.

“알았어, 나중에 월급에서 옷값은 빼고 줄게. 그럼 된 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위로 올라 가자며 먼저 계단을 올라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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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25 20:24 | 조회 : 3,523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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