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의 이유(1)

“연우 자요?”
“네, 많이 피곤 했나 봐요.”

밤 11시,
나는 연우가 자는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아줌마는 앞치마를 벗어
곱게 접어서 탁자 위에 올렸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몇 년 전에 안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자동차 안에서도 그 날의 일을 꾼 거고
그것 때문에 저희를 불신하는 거고요.”

난 휴대폰에 문자가 온 것을 보며 말했다.

“에휴, 어린 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아줌마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방금 온 문자에 답을 하자, 곧바로 집 현관문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는 ‘누구지?’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 강 비서님 아니야?”

형이 인사를 하며 거실로 들어왔다.
아까 집에 찾아가도 되겠냐는 형의 문자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어차피 들어올 거 대체 왜 물어본 거야.


이 형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이다.
형은 내가 14살 때, 24살의 나이에 아버지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잘난 게 많은 사람이어서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아버지는 형을 내 옆에 붙여줬고, 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형과 함께 했다.

그렇게 거의 5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친형제보다 더 친형제 같은 사이가 되었다.

제일 처음 내가 양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형이다.

어렸을 때는 정말 좋은 형이었는데
내가 크면 클수록 점점 본색을 드러내더라.


나는 언짢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형은 하하 웃으며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누가 앉으라고 했어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날카롭게 말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게 필요합니까?”
“우리 사이는 그냥 갑과 을인데요.”
“너무하네. 우리가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형은 또 하하 웃으며 말을 돌렸다.

“오늘 공원에서 함께 있었던 그 아이는 누구야?”
“형이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내가 형에게 툴툴대자
아줌마는 그러면 안된다며 형에게 지난 일을 얘기해줬다.


“……안타깝네요.”
“그래서 그거 물어보려고 온 거야?”
“너무 궁금해서. 보통 그런 행동은 잘 안 하잖아?”


형은 내 맞은편의 새하얀 집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날에도 집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편인데
하필이면 오늘 내가 연우를 따라 공원까지 뛰어갔던 걸 본 모양이었다.


“갑자기 어떤 꼬마 애가 뛰어가더니, 바로 뒤쫓아서 네가 쫓아가는 거 봤어.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나도 따라갔지.”


차 안에서부터 상태가 이상하긴 했다.
눈 감은지 몇 분 됐다고 끙끙 앓더니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분명 입 모양은 ‘싫어’ 라는 것 같았다.

연우가 ‘또 속이려는 것이다.’ 라고 말했던 시점부터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난 내 짐작이 맞는지 한번 확인하고, 되도록이면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했으나, 내가 너무 서두른 것 같았다.

대강의 이유는 알게 되었지만, 정말 떠올리기 힘든 일이었는지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난 얼떨결에 연우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무서워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떨리는 두 손으로 날 잡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금은 내게 마음을 연 것 같았다.


“올라와보니 네 품에서 처음에 뛰어가던 애가 울고 있더라고…….”

그때 난 연우가 다 울 때까지 계속 안아주고 있었는데, 멀리에서 형이 보였다.
형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나는 연우가 형을 보고 놀랄까 봐 손으로 휘휘 저으며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우리 사장님이 누굴 안고 있고, 나한테는 가라고 손짓하고…….
무슨 상황이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왔지.”

“애 놀랄까 봐 그냥 가라고 한 거야.
안 그래도 사람 무서워하는데 형을 보면 정말로 도망 칠지도 모르잖아.

“나 그렇게 무섭게 생기진 않았거든.”
“무서워, 특히 눈이. 키도 엄청 크고. 덩치도 있고.”

난 형에게 장난치듯이 말했다.
그러자 형도 ‘너도 만만치 않게 무섭게 생겼다.’ 라며 살짝 눈치를 보더니 내게 물었다.

“그래서……난 그런 너 되게 오랜만에 보는데……. 뭐, 사심이라도 있어?”

아주 대놓고 물어보네.

“……관심은 있어.”

내 말에 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줌마는 흥분해서 크게 말하려다가 연우가 자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는지, 조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비서님, 도련님이 말이죠.
아까 말을 안했는데 그 곳에서 빼오겠다고 뽀뽀까지 했대요!”

“뭐어?!”

형은 아줌마의 말에 놀라 조금 큰 소리로 되물었다.

“목소리 좀 낮춰……연우 깨면 어쩌려고.”

형은 내가 째려보자, 눈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가 다시 날 보더니 얄밉게 웃었다.

“뭐야? 우리 사장님께서 눈치를 보다니……. 관심 정도가 아닌데?”
“지금 우리가 연우 얘기를 하고 있는데다가
안정이 필요한 아이니까 그런 거일 뿐이야.”

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키스까지 했다면서.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었어?”
“응.”
“흠, 뭐 그렇다고 해두자.”
“뭐야, 그 웃음은…….”

형은 피식하고 웃었다.

“잠깐 봤을 때 얼굴은 전혀 네 이상형이 아니던데…….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이상형? 난 알려준 적이 없는데.”
“마르고 키 작은 것 보단 키 크고 약간 살집 있는 걸 더 좋아하잖아?”
“외형 따진 적 없는데.”

사실 맞는 말이지만.

“아직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성격도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데, 아니야?”
“......시비 걸려고 왔지?”
“어휴, 그만들 좀 싸워요. 다 큰 놈들끼리 유치하게…….”

아줌마는 잔소리를 하고, 다과를 가져와 책상에 올렸다.


“닮았어?”

형이 진지하게 물어봤다.

닮은 점…… 할 말은 다하고 산다는 거……?
되게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빼고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아냐, 오늘 사진 찍을 때 머리 넘긴 건 조금 비슷하긴 했어.
어쩌면 조용한 것도 아직 친해지지 않아서 어색함에 조용한 거일 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어.”


아직도 그 날의 일이 눈 앞에 선하다.

그때 회사 일 때문에 항상 ‘형’과 함께 가던 길을 혼자 가게 놔둔 게 화근이었다.
운이 나쁘게도, 이런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형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먼저 가지만 않았어도 형도 무사 했을 테고
지금 내 삶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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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22 21:33 | 조회 : 3,736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강비서가 이미 결혼했다는 건 딱히 스포가 아닙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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