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이유(2)

“일어났네?”

그 사람이다. 백민운이라는 남자…….
그는 문 바로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그리고 내 모습을 보더니, 무릎을 굽혀 앉았다.

“안색이 안좋네. 악몽이라도 꿨어?”
“……아니요.”
“말은 안 놓을 거야?”
“네, 이게 편해요.”
“그래……그럼.”

그는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으나, 캐 묻지도 않고 계속 요구하지도 않았다.

“아침 다 됐어. 나가자.”

그가 일어났고, 나도 뒤따라 일어났다.
일어나는 순간 온몸에서 고통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휘청거렸다. 그때 그가 순발력 있게 날 잡아주었다.

“아……!”
“앗, 괜찮아?”

팔에 그의 손이 닿자, 오싹했다. 난 바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
“……다른 사람과 닿는 걸 싫어하는 거야? 아줌마는 괜찮았잖아.”

그 어떤 사람과도, 특히 남자가 내 몸에 손 대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싫다.
아줌마는……나도 잘 모르겠다.

“네.”

내 대답에 그는 말이 없더니, 다시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소리를 낮춰 질문했다.

“……그렇게 접촉을 싫어하면서 어떻게 그런 일을 계속 했던 거야?”
“…….”

맨 몸으로 아저씨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정작 나오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가족 앨범 하나밖에 없었다.
죽는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엔 겨우 빠져나왔던 구렁텅이 속에 다시 제 발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떡해요……살아야하는데…….”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꾹 눌러 참았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내가 괜한 걸 물었네…….”

이상한 사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대체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슬픈 표정을 짓는 걸까.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람.’
일하겠다고 이미 말했고, 밖에서 그렇게 돈을 벌든 여기서 일하다 뒤통수 맞든 똑같다.
속을 때 속더라도 그 전까지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있는 것을 택하는게 더 나을 것이다.
‘내가 믿지만 않으면 돼……정 따위만 없으면 속아넘어가더라도 덜 아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아침식사는 끝났고, 아줌마는 차를 끓이고 있었다. 그를 힐끔 쳐다보니 그는 식사 전에 읽던 신문을 다시 읽고 있었다.

“오늘 병원 가야하는 거 알지?”

아줌마가 차를 내오며 말했다.

“10시 반에 갈 거니까 준비해.”

어제는 아무 생각없이 알겠다 했지만, 그에게 이렇게 빚을 지기 싫다.
당연히 병원 값은 그가 낼 것이고, 내 몸 상태로 봐선 단순한 검진으로는 끝나지 않을 텐데…….
그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읽던 신문을 접고 내 생각에 대답해주 듯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내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필수야. 물론 다들 무료로 검진 받았고. 너만 하는 게 아니니까 별로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리고 앞으로 같이 생활 할 텐데, 어디가 아픈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병원을 갈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나는 접수처에서 개인정보를 작성했다.
그리고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곧바로 피를 뽑으러 가고, 흉부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검사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았다.


“너 대체 그 몸으로 어떻게 산 거야?”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 그가 말했다.
감기는 물론, 천식과 갈비뼈 두세 군데에 금이 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는 바로 다음 예약을 잡아버렸다.

“천식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니까, 꾸준히 약 처방한 거 먹어. 아까 설명한 거 들었지?”
“약값…….”

약국에서 한달 치 약을 처방해줬다. 생각보다 비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자기 돈으로 해결했다.

“괜찮으니까 몸 관리나 잘해.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더 부담스러워 질 걸.”

항상 내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 같다. 얼굴에서 티가 나는 건지,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할 때마다 바로 대답해버린다.
게다가 간 밤에 아줌마가 컴퓨터로 확인시켜준 결과, 내가 부담스러워 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모두 사실이었다.
월급도……높았다.

아무튼 우리는 약 처방을 받고, 내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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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21 00:14 | 조회 : 4,211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월급이...워후...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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