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두근 두근.

안절부절.

오늘의 나는 누가 봐도 정서불안이다.

"이빈아 너 괜찮아..?"

"아니!! 안괜찮아!!"

시간은 벌써 점심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 핸드폰은 잠잠하다.
내가 왜 이리 정서불안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냐! 그것은 바로!!

"이 새끼들 오디션 보고 있기는 한거야!?"

그녀석들의 오디션 날이기 때문이다.

"좀 진정해.."

"아아아아아 대체 붙은거야 떨어진거야!!!!"

정말 피가 마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피가 드디어 마르는걸 멈춘건 6교시 수업시간이였다.

[형용이.]

'드..드디어..!!'

침을 꼴깍 삼키고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결과는 집에가서 말해줄게.]

쿵...

"이.. 10세가..."

수업시간만 아니였으면 고래 고래 소리치며 욕을 해댔을것이다.

딩동댕동.

피가 마르는 그날 하루를 형용이 멍멍이 새끼에 대한 욕으로 무사히 마친 나는 이호형과 집으로 향했다.

"붙었을거야."

"그래야지!!! 그 곡을 가지고도 못붙으면 그게 말이돼!!?"

투덜 투덜거리며 걷자 이호 형이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응. 그래야지."

하지만 웃고 있는게 왠지.. 평소랑은 조금 다른것 같았다.

"형.. 있지.."

"응?"

물어봐도 되는걸까..
침착한 둘째 형이 유일하게 화를 내며 기피하는 질문..

"우리 아빠는 어떻게 돌아 가신거야?"

사실 아빠라는 단어 하나에도 엄청 민감하게 반응해서 한번도 제대로 물어본적이 없었다.
역시나 걸음을 멈추고 형을 날 가만히 쳐다본다.

"...지금 그걸 묻는 이유가 뭐야.."

화가 난건지 아니면 당황한건지 모를 표정을 한 이호 형이 내 팔을 잡는다.
잡힌 팔은 이호 형의 압력에 의해 비명을 질렀고 소리치려는 입을 꾹꾹 다물어 겨우 말을 내뱉었다.

"아파.."

내 말에 정신을 차린건지 이호 형이 손을 놔준다.
그러고는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듯 하다 한숨을 내쉬고 나를 데리고 놀이터로 향한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형은 아무말도 없었다.
나는 그런 형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내 앞에 있는 돌멩이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5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형은 입을 열었다.

"아빠는 가수가 꿈인 사람이였어.."

한마디 한마디가 힘겹다는 듯이 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아껴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우리 아빠는 똑부러진 사람이였다.
엄마가 그런 성격이여서 그렇게 변한건지 원래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빠!!!!"

큰 형도,

"아빠! 아빠!!"

동생도,

"아빠."

나도 그런 아빠를 정말 좋아했다.

또, 아빠는 요리도 잘해서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집을 먹여 살리는 분이셨다.
그런 아빠의 직업은 레스토랑의 요리사였다.
하지만 아빠는 자주 말했다.

"아빠의 원래 꿈은 가수였어."

자신의 꿈을 말하며 웃는 그 사람의 모습은 포근하고 따뜻했지만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하지만! 지금 아빠의 꿈은 너희들이랑 행복하게 사는거야~"

우리들을 끌어 안아주시며 머릴 쓰다듬어주던 아빠의 손길이 아직도 선명하다.

"오늘의 선곡은~! 곰세마리입니다!!"

기타를 치며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를 불러 주던 아빠..
우리 아빠는 그렇게 다정하고 자상하고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였다.
아니.. 그런줄 알았다.

"당신도 기억해? 인호 그놈이 글쎄 곡을 내서 히트를 쳤다고 하더라고."

인호 아저씨는 아빠의 예전 동료로 아빠랑 같이 가수의 꿈을 키우셨던 분이다.
아빠는 가수의 꿈에 몇번이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버린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아이 때문에 가수의 꿈을 접었지만,
인호 아저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연예계에 이름을 날리셨다.

"정말 대단해."

인호 아저씨의 말을 하면서 아빠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셨다.

"엄마는 작곡가지?"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응. 그렇지."

"근데 왜 아빠는 가수가 될 수 없는거야?"

작곡가는 곡을 만들고 가수는 노래를 부른다.
어린 내게는 당연한 그 사실이 아빠에게 적용되지 않음이 의아했다.

"음..그건.."

엄마는 말하길 머뭇거리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말했다.

"아무리 작곡가가 좋은 곡을 써냈다고 생각해도 그건 작곡가의 개인적인 생각이야.
잘썼다고 생각한 곡이 사람들에게 별로 반응이 없거나 못썼다고 생각한 곡이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거든."

"..음..."

"그러니까 음악은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거야."

"그게...내 질문이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어. 잘 들어봐봐. 작곡가는 곡을 쓰는 사람이야. 그럼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사람은 누구겠어?"

"..가수?"

"그렇지. 작곡가의 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을때 얼마나 많은 공감을 얻어내느냐에 따라서 그 곡의 가치가 매겨지는거야."

"그럼 아빠는..."

엄마는 쓸쓸하게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그래도 아빠가 부르는 노래가 좋아."

"...응... 나도 좋아."

사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아빠를 위해 많은 곡을 썼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매정했고 아빠와 아빠의 친구들은 잔인한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했었다.
엄마가 말한 공감을 잘 이끌어내는 사람이 아빠는 되지 못한것이다.

"아빠?"

하지만 우리 아빠는 사실 승부욕도 강하고 포기라는걸 모르며 사실은...

"미안. 깼니?"

"으응.. 아니.. 그보다 뭐하는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인호 아저씨의 노래가 세상에 알려지고 일주일째 되던 밤.
그날밤의 아빠의 웃음이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웃음이였다.

"이빈아. 뭐해?"

"형!! 이거 봐봐!! 이게 곰세마리 노래인데 이거랑 나비야랑 음을 섞으니까 완전 웃겨!!"

"..그걸 섞으니까 당연히 웃기지.."

"응! 작곡이란거 되게 어려워!!"

해맑게 웃으며 새하얀 종이가 까만 종이가 될때까지 끄적이는 동생.
작곡이 어렵다면서도 해맑게 웃으며 종이에 뭔가를 그려낸다.

"이빈이는 작곡가의 재능이 있는거 같아."

엄마는 그런 이빈이의 손에 묻은 검은 잉크들을 닦아주고는 했다.

인호 아저씨의 노래가 세상에 알려지고 약 1년이 지나던 날.

나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을 했고 동생은 7살이 되었으며 형은 11살이되던 해에 아빠는 돌아가셨다.

아빠는 마지막은 가수로 생을 마감하셨다.


-oooo년 oo월 oo일.


엄마는 곡을 쓰고 가사를 붙였다.
그 곡은 아빠랑 이상하리 만큼 잘 어울렸다.
이번에 이 곡은 정말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엄마가 있던 기획사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빠의 데뷔날에 나와 이빈이는 무대 뒤편에서 아빠를 보고 있었고 엄마와 형은 관객석에서 아빠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의 노래가 중반부로 넘어갈때.

"안돼.."

"이빈아?"

".. .... .. . ..."

이빈이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뛰쳐 나갔다.
그리고는 이빈이가 아빠를 향해 달려갔을때.

뚝-

쾅!!!!!!!

커다란 조명이 아빠와 이빈이를 향해 떨어졌다.

"...아...?"

몸이 굳고 움직이질 않았다.
피투성이에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움직이질 않았다.

'내가.. 손을 놔서.. 그래서... 그래서 이빈이가...'

큰 충격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엄마는 바로 그 둘을 향해 갔고 형은 나를 찾아왔다.

"너 괜찮아? 너 안다쳤어!? 신이호!! 말 좀 해봐!!!"

"형..나.. 내가... 내가 손을 놔서..그래서.. 그래서 이빈이가..."

짝-!!!

"정신차려!! 이빈이랑 아빠 둘 다 괜찮을거야!!"

볼이 욱씬 거린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소리인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게 너무 큰 충격이였고 이빈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꼼작도 못했었다.

삐용 삐용 삐용-

구급차에 실려가던 동생의 모습..
그리고 그날밤이 내겐 너무 끔찍한 시간이였다.
이빈이는 다행히 아무 이상 없다고 했지만 아빠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는 시간동안 이빈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가 진행될때도 나는 병실에 남아 이빈이를 지켰다.

'만약 이대로 못깨어나면.. 어떡해..?'

다시 잡은 손이 따뜻했지만 무서웠었다.
아빠의 장례 뿐만 아니라 이빈이의 장례식까지 보게 될까봐 너무 무서웠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였다. 이빈이는 무사히 깨어났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에.

"이빈아.. 아빠는..."

"....아빠?"

아빠의 기억만 모두 잊은채로.

차라리 기억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든걸 잊은채로 살면 편할거라 생각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으니 말이다.

"기억하지마.. 기억 안해도 돼.. 괜찮아."

되뇌이고 되뇌이던 말...

넌..

기억하지마..


-사라진 기억과 전해진 기억.


"기억하지마.. 괜찮아.. 아빠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는걸..."

"...응...."

처음 들었다.
어렸을때 큰 사고가 한번 난 적이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이런 사고였을 줄이야...
확실히 기억나는건 없었다. 하지만 만약 기억하게 되면...

"기억 안하는게 나을거 같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띠링]

"응?"

[너 어디야. -유유빈-]

"아. 유빈이 집에 왔나봐. 들어가자."

형의 손을 잡아주었다.
약간 차가운 손.. 그래서 형이 가끔 내 손을 꼭 잡았다 놔주는지도 모르겠다.

"붙었을까?"

"글쎄."

형과 놀이터를 나서면서 난 그녀석들이 승전보를 들고 왔기를 기대했다.

"...기억하지마..."

"응? 뭐?"

"아무것도.."

내게 웃어주며 형은 내 손을 꼭 잡고 걸음을 빨리해 집으로 향해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집에 도착해서

"붙었어."

"뭐야.. 뭔데 그렇게 담담해? 마치 나 붙을줄 알았어요~ 하는 애처럼."

"시끄러."

붙었다면서 괜히 기분 안좋은 유유빈과

"미안해~ 좀 트러블이 있어서."

"뭐!? 뭔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트러블이야!?"

"뭐..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피하는 지한이와

"저거 저거 오늘 좀 빡칠거다! 하하하!!"

왠지 즐거운 형용이를 만날 수 있었다.

뭐.. 붙었다니까..

좋아해도 되는거지..?

1
이번 화 신고 2016-07-17 01:22 | 조회 : 2,419 목록
작가의 말
약쟁이

누가 나 대신 진도 좀 나가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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