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 걸음도 큰 결심 (5)

이서호는 날 성당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야, 너 혹시 막... 취향이 막 나가고 거센 여자애가 좋은거야?"
"뭐? 뭔 소리야."
"아니... 그 조나경 있잖아. 혹시 너 걔 좋아하냐?"
"어? 뭐래. 나 걔 안 좋아해..."

갑자기 무슨 뜬금 없는 소리야?

"진짜?"
"...어."
"음... 알겠어."

이서호는 그 말만 남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솔직히 조나경한테 너무 차갑게 대하긴 했다. 하지만... 이 놈의 앞머리만 건드리면 이러는 걸... 나도 고치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앞머리도 앞머리지만 담배까지 그 애한테 걸리고 나니까 솔직히... 좀 부끄러웠다. 내가 숨기려 애썼던 것들이 그 애 앞에서는 한 달도 안돼 모두 걸리고 말았다.

그 애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이런 부끄러운 모습 말고... 괜찮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아."

이게 좋아한다는 건가?

*

"야, 조나경. 너 유하영이랑 싸웠지."
"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유하영이랑 잘 지내는 거 같더니 갑자기 분위기 겁나 싸하잖아."
"에이~ 아니야."

아니긴 무슨.

"너 유하영 좋아하는 거 맞지?"
"..."
"왜 대답을 못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잠시 뿐인 호기심 같기도 하다.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하진 않지 않나...

"응, 좋아해."
"그럼 뭐... 요즘 유하영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좀 이상해."
"뭐가?"
"유하영은 뭐가 그리 예민한건지 원래도 까칠한 애가 더 까칠해졌고, 너는 또 왜 그렇게 저텐션인건데."
"그냥... 곧 모의고사잖아! 그래서 그런가 보지."
"아, 곧 3모네? 난 공부 이미 놔서, 딱히 모르겠다."

이서호는 뒷머리를 긁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서호는 휴대폰을 한 번 확인하더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고는 교실 뒷문으로 뛰어갔다.

요즘 쟤도 이상하단 말이지...

*

"박우연."
"응? 서호야, 진짜 왔네?"

얘는 진짜 무슨 생각인걸까...

방금까지 조나경과 얘기하는 내 모습을 보았는지 조나경이랑 대화하지 말라 메시지를 보내왔던 박우연은 태연하게 이온 음료를 마시며 계단 구석에 앉아있었다. 얘는 뭐 그걸 어떻게 본거야.

박우연은 캔음료 하나를 건네며 싱긋 웃어보였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료가 내가 화가 난 걸 눈치 챘는지 진정하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정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님 순진한건지. 음... 후자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냥 눈치가 없다 하자.

"됐어."
"우리 남은 수업 수학 과학 이런 거 밖에 안 남은 거 알지?"
"어, 알다마다."
"나 수업 째고 싶은데, 같이 째자고. 예전처럼."
"..."

예전처럼.

"딱히 너랑은 째고 싶진 않은데."
"어라, 왜?"
"진짜 모르는거야?"
"응, 모르니까 이러겠지?"
"글쎄... 너랑 학교 째서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런가, 이서호 모범생 다 되셨네."

모범생이 아니라, 그냥 너랑 같이 있는 게 싫은건데.

"예전 나랑 지금 나는 달라졌다니까? 예전처럼 그렇지 않아."
"..."
"우리 과거는 버리자고."
"미안, 나는 못 버리겠다."

꽈드득---

박우연은 다 먹은 캔을 발로 밟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뭐, 자기도 화났다 이건가. 항상 제 멋대로지.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역시 불편하다.

"음... 그럼 수업 잘 들어, 모범생 이서호씨."
"...어."

박우연은 뒷짐을 지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하... 쟤랑만 있으면 진이 확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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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6-26 19:22 | 조회 : 256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