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한 걸음도 큰 결심 (3)

"뭐?"
"왜 화를 내... 그러니까 나 무섭잖아..."
"...네가 먼저 화 낸 거잖아."
"내가 화 내도... 넌 화내면 안되는 거 아니야?"
"...하, 야, 박우연."

더 이상 참으면 안될 거 같았다. 더 참으면 내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박우연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최대한 상냥히 말했다.

"박우연, 나 너랑 이러는 거 이제 지친다. 나 좀 힘들어. 그냥 날 위해서 든, 널 위해서 든... 우리 헤어지자."
"뭐..? 아아... 아아아악!"

박우연은 갑자기 울부 짖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집어 당겼다. 박우연은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 소리를 질러 댔다.

"아아... 아악!"
"너, 너 왜 그래..?"
"서, 서호야... 내가 미안해... 나 너 없으면 못 살아... 나 네가 있어야 해."
"..."
"너... 이렇게 가버리면 나 확 뒤져버릴 거야. 나 뛰어 내려 버릴 거야."

박우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 꿇고 내게 빌었다.

"제발 나랑 헤어지지 마... 나 너 없으면 안돼..."

처음으로 박우연이 불쌍해 보였다. 처연하고 안타깝다는 게 이런 거 구나 싶었다. 이런 박우연을 내가 버려 버리는 건 내가 너무 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도 아니고... 한 번 정도는 눈 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알았어, 내가 너무 섣부르게 판단했다."

그 이후로 한 이틀 동안은 박우연은 잠잠했다. 큰 집착을 하지 않았고, 딱히 눈에 띌 만한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학교에서는 나와 붙어 다녔고, 하교 때도, 등교 때도 나랑 함께 했다. 그리고 나도 박우연도 공부는 이미 놓은 사람이라 그런지 하교 후에도 계속 데이트를 하느라 붙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박우연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친구와 1박 2일 여행으로 박우연을 이틀 동안 보지 않았을 때, 사건이 터졌다.

"이~서호~"
"오늘 이서호 여행 갔잖아!"
"...아... 그렇구나..."

내가 박우연에게 여행을 간다고 톡으로 얘기를 해 놓았지만 박우연은 휴대폰 수리 때문에 그 소식을 듣지 못했었다. 박우연은 그날 공중 전화와 집 전화기 등을 모두 동원해 내게 전화를 했지만 난 모르는 전화 번호는 일단 받지 않는 성격이라 박우연에게서 온 전화들을 모두 받지 않았었다.

그 날, 내가 전해 들은 박우연은 학교에서는 하루 종일 조용히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서호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발광을 해댔다고 한다.

"야, 말도 안돼!"
"맞다니까? 이서호가 그랬다고!"
"야! *발 네가 뭔데 이서호 얘기를 꺼내! *년아!"

한 번은 여자애 둘 이서 나에 대한 뒷담 비스무리한 이야기를 꺼냈었다 한다. 처음엔 이상형 얘기, 그 후엔 자기 이상형에 나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 마지막은 나에 대한 거짓 소문. 그걸 들으며 참다 참다 결국 못 버틴 박우연은 그 여자애들한테 달려들었다고 했다.

솔직히 그 일은 내가 좋아했었다. 박우연이 날 이 정도로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어느 날, 박우연이 약 하나를 먹기 시작했다. 자기 말로는 그냥 영양제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보통 영양제는 규칙적인 시간 마다 먹는 게 맞을 텐데... 잘 먹지도 않고 그 약을 먹기 직전에 보이던 공통적인 행동은 식은 땀을 질질 흘리며 덜덜 떠는 모습이었다.

"너 괜찮은 거 맞아?"
"어, 괜찮아!"

항상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며 주제를 돌렸다.

그리고 한 번, 내가 보는 앞에서 사건이 터졌다. 내가 박우연과 먹을 음료를 사러 공원 벤치에 박우연을 앉혀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그런데 음료를 사던 중 갑자기 발작을 하며 쓰러지던 사람을 응급실로 데려가느라 박우연을 거의 한 시간 동안 방치해 뒀었다. 내 나름대로 환자를 데려다 주고 급하게 뛰어 박우연을 만나러 갔다.

내가 본 박우연의 모습은

"으으윽... 아아아아! 하읍, 아윽..."

공원 구석 공터 가로등 뒤에서 쭈그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는 박우연이였다. 박우연은 머리를 손으로 쥐어 감싸며 몸을 덜덜 떨었다. 아마 호흡 곤란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박우연! 너 괜찮아?"
"아악! 흐으윽... 아으윽..."
"박우연! 정신 차려, 나 왔어. 이서호."

박우연은 이서호라는 단어를 듣자 조금 안정이 되었다. 나는 박우연을 진정 시키기 위해 박우연을 꼭 끌어 안았다. 박우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이 안정 되었다.

그리고 박우연이 괜찮아 지고 들은 얘기는

박우연은 우울증과 내게 분리 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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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3-01 00:28 | 조회 : 431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