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시작은 밝고 명량하게 (4)

"너희 정말 삥 뜯거나 괴롭힘 이라던가 그런 거 없는 거 맞지?"
"네, 없어요."
"네! 이거 세탁비에요, 세탁비."
"하... 그래. 하영이야 원래부터 모범적 이였고, 나경이도 소란은 일으키지 않는 애니까... 쌤이 믿는다?"
"네."
"네~!"
"그래, 둘 다 반으로 가 봐."

교무실에서 힐끔 힐끔 본 하영이는 정말, 정말... 멋졌다! 키도 정말 크고, 잘 보지 못했던 얼굴도 봤는데 검정 뿔테 안경이 정말 잘 어울렸다. 눈 밑의 점도 너무 예뻤다!

"자, 이번엔 진짜 좀 받아 줘."
"하... 알았어. 알겠으니까 이제 좀 그만 쫒아 다녀."
"응! 진작 이렇게 받으면 얼마나 좋아?"
"하... 알겠다고."
"아, 하영아. 너 이서호랑 친해?"
"아니, 전혀."
"그래? 그렇단 말이지..."
"... 너 근데 이서호랑 사귀냐?"
"...어? 뭐?! 뭔 소름 돋는 소리야! 으... 걔랑 나랑? 졸라 싫어!"
"되게 싫어하네. 맨날 너랑 걔랑 붙어 다니길래 둘이 사귀는 줄 알았지."

하영이는 헛기침을 하며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뭐지?

"이제 반 돌아가자! 곧 수업 시작하잖아."

말 끝나기 무섭게 수업 종이 경쾌하게 울렸다.

"아악! 이번 시간 과학이지? 과학 첫 수업인데... 첫 날부터 지각은 진짜 안돼!"
"어..어?"

조나경은 다자 꼬자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얘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야, 야!"
"이러다가 늦어! 잔말 말고 따라 와!"
"어? 어..."

너무 막무가내이다 보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 뛰어서 그런 거겠지? 숨이 막혀 왔다.

"자, 잠깐!"
"야! 너 왜 이렇게 허약 체질이야!"
"하아... 하아... 우리 반 5층이잖아..!"
"이제 3층 올라왔어. 올라 가야 해."
"하아... 후우... 우리 어차피 늦었어. 좀 쉬었다가 가자."
"... 너 지금 나랑 쉬자고 한 거야?"
"어? 응."

오, 얘 완전 날라리잖아?

"네가 먼저 놀자 한 거다? 나한테 말이야?"
"어? 그게 뭐?"
"너 담 넘어 봤어?"
"뭐? 무슨 담을 넘어! 안돼!"
"아아! 한 번만!"
"안돼, 첫 날이잖아."
"... 알았어. 그럼 다음에 놀기다?"
"학교 끝나고!"
"힝."

다시 조나경의 손을 잡아 끌고 계단을 올라 맨 끝에 있는 2학년 1반으로 향했다.

"하아... 하아... 죄송합, 니다!"
"죄송함다!"
"너희 둘 뭐야? 왜 늦었어?"
"교무실 다녀 오느라요."
"...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아, 쌤!"
"그래, 알았어. 너희 둘, 얼른 앉아."
"네."

가쁜 숨을 고르고 자리에 걸터 앉아 과학 교과서와 문제집을 펼쳤다. 조나경 때문에 이게 뭐람!

"..."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해 본 일탈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겨우 그게 일탈이냐고 하겠지만 항상 짜여진 틀과 계획 속에서 쳇 바퀴 굴리며 살아온 나에겐 수업 지각이라는 게 정말 큰 일탈이었다.

조나경과 계단을 오르며 느꼈던 바람은 오랜만에 열린 내 숨통을 강타했고, 날 숨 쉬게 하였다. 처음 해 본 경험이라 그러겠지 하고 잡생각을 치우기 위해 물을 마셨지만 그때의 느낌과 생각이 잊혀지지 않았다.

"자, 수업 끝. 목요일까지 숙제 다 해 와라."
"네~"


덕분에 수업에 1도 집중 하지 못했다.

"하... 미치겠네..."

*

"하영아, 너 방금 수업 이해 됐어?"

또 조나경이 말을 걸어왔다. 심지어 내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과학 범위 수업을 귀신 같이 알아내 물어 보았다.

"아니, 이해 못 했어."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공부 할래?"
"공부? 내가 왜? 너랑?"
"그냥... 같이 공부하면 좋잖아. 모르는 거 있을 때 서로 질문하기도 좋고... 그렇잖아."
"... 그렇긴 해. 근데 난 혼자 공부하는 게 좋아서 말이야."
"그래? 알았어. 그럼 너 만약에 이거 이해 되면 나도 좀 알려주면 안돼?"
"알았어. 다음 수업 준비나 해."
"응! 고마워~"

조나경은 겅중 겅중 뛰어 자리에 풀썩 앉았다. 또 자기 앞 자리인 이서호와 잡담 중이다.

"..."

벌떡 일어나 조나경에게 향했다.

"야, 조나경."
"어? 왜?"
"같이 하자."
"뭘 말이야?"
"공부, 같이 하자고."
"어? 어! 정말?"
"어, 정말."
"그래! 고마워~!"
"...오늘 시간 돼?"

조나경은 활짝 웃어 보였다. 이서호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연신 나와 조나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응, 당연하지."
"오늘 전에 그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 하자."
"그래! 그럼 하교도... 같이 할래?"
"그래, 알았어."
"좋아! 고마워!!"

뭔가 조금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런 부분에서 이렇게 통쾌해 지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서호 앞에서 조나경과 비록 공부지만 단둘이 약속을 잡았다는 거에서 이서호를 이긴 기분이었다.

"내가 진짜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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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2-25 02:44 | 조회 : 360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