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시작은 밝고 명량하게 (3)

"뭐야... 이서호 얘 왜 이렇게 늦어?"

이서호가 3분 안에 오기로 했으면서 20분이나 지난 지금까지 안 오고 있다. 설마 중간에 사고라도 난 건가? 으악... 그러면 안되는데... 이서호가 걱정 되긴 하는데 이서호 찾으러 가면 하영이가 사라져 있을 것만 같단 말이지... 왜냐고? 왜냐니! 유하영은 벌써 갈 준비 중이라고!

"얘는 또 왜 전화를 안 받아..."

이서호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연결음만 끝 없이 들릴 뿐,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조금 불안했다. 이서호가 저번부터 딸기 바나나 스무디 먹고 싶다 해서 사놨더니만... 날을 잘못 잡았나 보네. 왜 이렇게 엇갈린담!

"하... 그냥 찾으러 가야겠다."

백팩에 책이랑 패드를 넣고 급하게 출구로 뛰어갔다. 너무 급하게 뛰어갔던 탓일까?

"악!"

누군가와 세게 부딪혀서 그 사람 옷에 스무디를 흘리고 말았다.

"아! 죄송해요! 제가 세탁비라도... 어? 너 유하영 맞지?"
"어... 응, 근데 넌 누구..?"
"난 너랑 같은 반, 조나경!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미안해! 내가 세탁비라도..."
"됐어, 어쩌피 안에 셔츠 한 겹 더 있어. 그냥 벗으면 돼."
"아... 아니지! 세탁비는 받아가! 어... 그런데... 내가 지금 현금이 없네..."
"하... 그냥 내가 알아서 세탁할게."
"내, 내가 내일! 내일 학교에서 세탁비 줄게!"
"...제발, 됐다고. 바쁜 거 같던데... 얼른 좀 가."
"으응! 난 내일 준다고 했다!"

진짜 미안해! 내가 이서호 이 자식 스무디 사느라 현금을 다 썼어..! 잠시만... 이러면 나 유하영한테 첫인상이... 자기 옷에 스무디 흘린 이상한 여자잖아! 이럴 수가... 서, 서호야... 이 누님이 질 거 같아... 어떡하냐...

*

"박우연... 하... 나 바쁘니까 먼저 간다."
"서호야, 우리 얘기 좀 하자."
"뭐?"
"우리 아직... 오해가 안 풀린 거 같아서..."
"...그래."

박우연과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얘기를 하게 되었다. 박우연은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린 아아 하나를 집어 쪽 빨아 먹었다.

"윽, 너 이젠 아아 좋아해? 난 이거 너무 써서...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던데..."
"용건만 말해. 무슨 일인데?"
"우리, 끝이 너무 안 좋잖아. 오해도 좀 있는 것 같고."
"난 딱히 없다 생각하는데."
"에이~ 왜 그래? 그때도 일방적으로 나한테 그런 거잖아."
"내가 뭘."

박우연은 푸흐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그저 순수한 웃음일지, 아님 경멸과 깔 봄이 합쳐진 비웃음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 상, 저 웃음은 분명 후자일 것이다.

"이별 통보 말이야."
"...하, 옛날 일이잖아."
"네가 뭐 땜에 나 싫어하고 불편해 하는 지 나도 알아, 근데 네 말대로 그것도 옛날 일이잖아. 안 그래?"

뭐라는 거야. 아직도 저 버릇은 못 고치나 보다.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이래서 옛날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그래~ 그러시겠지~"
"..."
"할 얘기 끝이야? 나 그럼 바쁜데... 이만 간다?"
"...잠시만!"
"하, 또 뭔데?"
"난 너랑 다시 잘 해보고 싶어! 우리 일단 연락이라도 하고 지내자."
"...허."
"그런 의미에서 차단 좀 풀어줘."
"내가 왜?"

뻔뻔하기 그지 없는 박우연의 태도가 너무 역겨웠다. 박우연 쟤는 예전부터 그랬어. 나랑 싸웠던 날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덕분에 혼자 씩씩 대던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들었지. 뭐, 그 정도는 약과이긴 해.

"... 박우연."
"어?"
"내가 언제나 느끼지만 너 진짜 배우 해 볼 생각 없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연기 존* 잘하잖아. 진짜 비꼬는 게 아니라 넌 연기랑 거짓말에 재능 있다니까?"
"...닥쳐."

박우연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휴대폰을 챙겨 씩씩 대며 공원을 벗어났다. 아~ 통쾌해!

"사실 비꼬는 거 맞는데."

*

쿵!

"...뭐야?"
"자! 세탁비!"
"하... 됐다니까 그러네?"
"아니야, 받아줘. 미안해서 그래."

조나연이었나? 조나겸이었나? 아무튼 이 여자애는 대뜸 나한테 5 만원을 내밀며 말했다. 얘는 됐다는 대도 왜 이러는 거래?

"아, 곧 수업 시작하잖아. 제발 됐으니까 저기 이서호랑 가서 놀아."
"갑자기 이서호 얘기가 왜 나와! 내가 미안해서 그렇다고! 좀 받아!"
"아! 됐다고! 제발!"

여자애와 나 사이에서 5 만원 하나를 두고 기싸움이 벌어질 때 쯤,

"야! 너희 뭐 해! 설마 하영이가 나경이 삥 뜯니?"
"아, 아뇨! 야! 좀 가!"
"아니, 이건 좀 받아줘! 제발 좀!"
"유하영! 조나경! 너희 둘 다 교무실로 와!"

하... 어쩌다가 이런 애랑 엮이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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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2-25 02:01 | 조회 : 323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