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시작은 밝고 명량하게 (5)

"야, 조나경. 일어나."
"..."
"야, 조나경!"

같이 공부하자 할 땐 언제고... 조나경은 학교 끝나고 잠시 선생님 뵈러 갈 동안 잠들어 버렸다. 담요를 베개 마냥 돌돌 말아 사물함 위에 드러누워 자고 있는 조나경은 정말 곤히 잠들었는지 절대 깨어나지 않았다.

"조~나~경. 공부하러 안 갈 거야?"

세상 물정 모르는 표정으로 잠든 조나경을 버리고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되었다.

"아."

내 머리 속을 스쳐간 생각은 귀에 바람 불어 넣기였다. 내가 어릴 때 형도 이런 식으로 곤히 잠든 나를 수시로 깨웠다. 이 방법이면 조나경도 일어나지 않을까?

조나경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조나경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조나경은...

"속눈썹이 되게 길구나..."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조나경의 귀를 향해 조심스럽게 바람을 후, 하고 불어넣었다.

"꺄악!"
"와악! 깜짝 이야!"

조나경은 귀에 바람을 불어 넣자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발작을 하며 일어났다. 조나경은 내가 바람을 불어 넣은 귀를 틀어 막으며 울상의 표정으로 날 바라 보았다.


"뭐, 뭐야? 갑자기 귀에 바람은 왜 불어 넣어!"
"네가 계속 깨워도 안 일어나길래 그랬지."
"그럼 그냥 흔들어서 깨우면 되잖아!"
"여자애 몸에 손대기는 좀 그래서..."

머쓱하게 웃으며 뒷 목을 긁었다. 조나경은 또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깜짝 이야! 쟤는 또 왜 저래?

"맞다, 나 너랑 공부 하기로 했는데! 미안해..."
"괜찮아, 시간 그렇게 안 늦었어."
"그렇다기엔 벌써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조나경은 우물쭈물하며 가방을 챙겼다. 나도 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챙기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데 내 시야로 갑자기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자, 공부 하느라 당 떨어지지?"

조나경은 에너지바를 하나 건넸다. 초콜릿 에너지바.

"나 주는 거야?"
"응, 너 공부 되게 열심히 하더라?"
"아... 고마워."

에너지바를 가방에 넣고, 교실을 나섰다. 조나경은 도서관으로 향하는 동안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무슨 주인 잃은 강아지 마냥 어쩌할 줄 몰라 했다.

"하영아."
"어? 왜?"
"우리 카페에서 음료수 사다가 갈래?"
"도서관은 외부 음식 금지야."
"그럼 도서관 말고 다른 곳에서 공부하면 되지."
"그냥 음료수를 안 사면 되잖아."
"난 공부할 때 뭘 마시면서 해야 집중이 잘 되는데..."

조나경은 손을 만지작 거리며 날 설득했다. 쟤 진짜 갑자기 왜 저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투성이였다. 조나경은 뭘 말하려다 말았는지 입을 앙 다물었다.

"그래... 그럼 어디서 공부할 건데?"
"우리 집, 우리 집으로 가자."

*

"뭐야, 너 유하영이랑 저렇게 친해?"
"큼큼, 이 누님이 그렇게 됐다! 어쩌냐~ 네가 질 거 같은데~"
"아! 이건 불공평하잖아!"
"뭐가? 뭐가 불공평해."
"난 사람이랑 친해질 만한 친화력도 없고 그런데... 넌 친화력 갑이잖아, 새꺄!"
"응, 그건 너 님 탓."
"와! 졸라 어이 없어!"

하영이가 오기를 기다릴 동안 이서호와 톡을 했다. 이서호는 이건 불공평 하다 느니, 내기 취소 하자 느니, 이상한 말들만 반복했다.

"에헤이, 이 누님은 너무 졸려서 이만 자러 가야겠음."
"야! 너 진짜 내가 이긴다!"
"그러시던가~ 암튼 나 진짜 잔다."
"어, 잘 자."

이서호와 톡을 끝내고 담요를 돌돌 말아 베개처럼 만들고 사물함 위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아~ 편해! 폰으로 SNS를 키자 이서호에게 톡이 왔다.

"어허, 누님 주무신다면서 왜 현활 중?"
"아! 잔다고 자!"
"ㅋㅋㅋㅋㅋㅋㅇㅋㅇㅋ"

이서호의 구박에 못 이겨 폰을 내려 놓고 하영이를 기다렸다. 얘는 잠시 쌤이랑 이야기 하러 간다면서 왜 이렇게 늦어? 내 주변의 애들은 늦는 게 패시브인가? 저번에 이서호도 그렇고 이번엔 하영이까지야? 으아... 진짜 내 인생 비굴하기도 하다.

"으아... 하영이 늦을 거 같은데 잠깐 눈만 붙일까?"

딱 5분만 자자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한창 꿈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 즈음, 갑작스러운 자극에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꺄악!"
"와악! 깜짝 이야!"

유하영이였다. 유하영은 깜짝 놀란 토끼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아, 깜짝 이야!

*

"뭐? 너희 집?"
"응, 우리 집."
"가족 분들 계시지 않아? 그리고 무슨 집에서 해..."
"아냐, 엄마 아빠 두 분 다 원래 늦게 들어오시고, 난 집에서 해도 상관 없어."
"...그렇다면야 상관 없긴 한데... 그래도!"
"아냐! 괜찮아! 우리 집 가서 하자! 내가 저녁도 해줄게!"

조나경은 내 팔을 잡고 질질 끌며 졸랐다. 불쌍한 강아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 보는 조나경을 거절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하아... 알았어. 그럼 카페 가서 마실 것 좀 사서 가자."
"그래!"

조나경과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전 자바칩 프라푸치노요."
"전 딸기 라떼요."
"네, 테이크 아웃이시죠?"
"네."

음료를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조나경은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쟤 또 왜 저래...

"뭐야, 왜..?"
"너 달달한 거 좋아해?"
"어? 아니, 딱히."
"너 되게 커피 좋아할 거 같은데... 아니네?"
"아, 나 카페인 못 먹어."
"그래?"

조나경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제스쳐를 취하더니 깜짝 놀라 날 붙잡았다.

"아! 내가 초콜릿 에너지바 줬지?"
"어."
"너 초콜릿 못 먹는 거 아냐?"
"어... 못 먹어..."
"왁! 미, 미안해! 내가 다른 거 사줄게!"
"아냐, 됐어. 안 사줘도 돼."

조나경은 또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이럴 필요 없는데...

"...아! 대신 음료 값은 내가 계산할게. 딸기 라떼 얼마였어?"
"아, 됐다고."
"그래도... 에너지바 그거 미안해서 준 거기도 한데..."
"괜찮아, 집 초대해 주는 거로 퉁 치지 뭐..."

조나경은 생각했다. 유하영 더 마음에 들어! 쟤 선수 아니야?

유하영이 더 좋아지게 된 조나경이였다.

ⓒ 2022. 이멷 All Rights Reserved.

0
이번 화 신고 2023-02-25 13:51 | 조회 : 403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