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시작은 밝고 명량하게 (2)

"뭐야? 쟤랑 무슨 얘기 했어?"
"아~ 이름 물어보고 왔어!"
"그래? 근데 이렇게 오래 걸려?"
"하영이가 낯을 많이 가리더라고~"
"하영? 쟤 이름이 하영이야?"

나랑 얘기를 하는 여자애는 눈을 반짝 거리며 물었다. 다리를 덜덜 떨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응, 유하영이래."
"유하영? 이름 되게 여자 같네."
"너 근데... 하영이 좋아하지?"
"어? 어? 무슨 소리야..."
"그거 알아? 너 나랑 얘기할 때랑 다르게 하영이 얘기 나오자마자 눈 엄청 반짝이고 다리 벌벌 떠는 거."
"아! 조, 조용히 해!"
"푸하하하! 알았어~!"

나랑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아이는 조나경이다. 나경이는 나랑 오늘 가장 빨리 친해진 여자애다. 아마 나경이가 하영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조나경은 1학년 때부터 유명했다. 단발 빨간 머리띠 걔라고. 언제나 갈색 단발 머리에 진주가 하나 달린 빨간 머리띠를 쓰고 다니는 걔라고. 왜 유명해졌냐면 조나경 얘가 진짜 겁~나 이쁘거든. 얼굴은 진짜 작은데 이목구비는 크고 선명해서 우리 학교 여자 비쥬얼로 불렸다. 당연히 남자 비쥬얼은 나지!

"야, 조나경. 그럼 우리 내기 할래?"
"갑자기? 무슨 내기?"
"나는 하영이랑 친해지고 싶거든? 근데 너도 친해지고 싶은 거잖아? 그럼 둘 중에 누가 먼저 친해지는지 내기 하자."
"엑,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랑 친해지는 거로 무슨 내기를 해. 그거 하영이가 알면 진짜 화낼 걸?"
"에이~ 그냥 장난인데 설마 화 내겠어?"
"그런가... 뭐, 재밌을 것 같네. 그래! 해보자!"

조나경은 확신에 찬 눈빛을 지으며 기지개를 쭉 폈다. 조나경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수업 시작 시간이 되었다. 조나경은 자리에 돌아갔고 난 유하영 뒷자리에서 유하영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음... 그냥 공부만 하네. 공부가 저렇게 재밌나?

"야, 야."
"..."
"야, 유하영!"
"어? 왜."
"너 심심하지 않냐?"
"...뭐라는 거야?"
"같이 오목하자."

유하영은 내게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미간을 찡그리고 입꼬리 한 쪽을 부자연스럽게 올리며 날 바라보았다. 아.

"...야."
"뭐."
"그따구로 쳐다보지 마라. 죽인다, 진짜."
"뭐? 허, 어이가 없네."
"..."
"에휴, 됐다. 니도 공부나 해."
"...*발."

아, 실수로 크게 욕을 지껄여버렸다.

"뭐? *발? 이서호. 나와."
"하..."
"한숨이 나와?"
"죄송함다."
"...들어가 봐."

다시 자리에 앉아 유하영의 뒷통수를 째려보았다. 진짜 재수 없어. 졸~라 재수 없다고. 사람을 무슨 쓰레기 보듯이 봐? 진짜 어이가 없어서. 분명 유하영의 첫인상은 공부 열심히 하는 멋지고 키가 큰 친구였는데... 저 눈이 문제다. 사람을 진짜 쓰레기 보듯이 본다.

저런 눈빛에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반응하는 거 보면 아닌가 보다.

*

"서호야! 같이 PC방 갈래?"
"야! 서호 우리랑 놀거거든!"
"그건 이서호가 정하는 거지!"
"아... 얘들아, 미안해. 오늘은 못 놀 거 같네... 다음에 같이 놀자."
"그래? 알겠어. 잘 들어가!"
"응, 고마워. 내일 보자~"

친구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엄마? 아빠? 아무도 없어? 뭐야... 진짜 아무도 없나? 아싸! 나이스~"

집에 아무도 없는 걸 깨닫고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후, 바로 컴퓨터를 켰다. 할 것도 없으니 게임이나 할 예정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어지러운 진동 소리를 내며 울렸다.

조나경

"여보세요?"
"난 네 여보 아닌데?"
"아 씨! 졸라 유치해!"
"하하하! 갑자기 웬 전화야?"
"야, 내가 다니는 도서관 있잖아. 거기에 유하영도 다녀!"
"뭐?"
"아이고, 서호야. 이 누님이 내기에서 이길 거 같네~ 누님 소원이나 생각해 놔라~"
"아! 거기 어딘데?"

난 져지를 챙겨 입으며 조나경에게 물었다.

"뭐야? 알려주면 올 거야?"
"어, 거기 어디야?"
"노력이 가상하다... 화연 시립 도서관."
"너 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3분 안에 간다."
"풉, 무슨 네가 3분 카레야? 아, 나 올 때 아아 한 잔만 사다 줘!"
"알았어. 끊어."

조나경은 짧게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러면 내가 내기에서 질 거 같은데! 허겁지겁 뛰어가는 와중에도 근처 카페에 들려 아아 두 잔을 사 들고 뛰었다. 무조건 내가 이겨!

"아! 어? 이서호?"
"뭐야, 누구세요?"
"나 기억 못해? 나 박우연이잖아!"
"아..."

박우연은 날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이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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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2-25 00:05 | 조회 : 454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