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세리의 비밀 (8)

"세리야."
"네, 네?"
"내일 학교 가지 마라."
"네? 왜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스러웠다. 아버지는 내가 정말 크게 다쳐도 학교는 무조건 가라 하셨던 분이셨다. 내가 아버지께 역으로 질문하자 아버지는 심기가 불편하신지 헛기침을 하셨다.

아, 실수했다.

눈 앞으로 손이 날아왔다.

짜악!!

아버지는 인상을 찡그리며 내 뺨을 내리쳤다. 눈이 핑 돌아갔다.

"아, 아버지. 죄송해요..."
"..."
"...아버지, 진정하세요."

보다 못한 오빠가 나서 아버지를 부축했다. 나만 때리면 쓰러지려 하는 분께서 왜 날 패지 못해 안달인건지...

"아버지, 저 먼저 병원으로 갈게요."
"하... 그래."
"네, 살펴 들어가세요."
"무슨 오늘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네,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다 올게요."
"내일 아침까진 들어와라."
"...갈게요."

다시 병원에 들렸다. 내가 사람을 죽인 그 병원과는 다른 병원. 그 병원에서 조용히 치료를 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의사와 간호사의 형식적인 질문에만 대답하였다. 다리는 골절은 아니었다. 하지만 팔은 심각한 골절이었다. 잘못하면 팔을 절단해야 할 정도... 이 정도면 정말 아팠을텐데... 이런 고통에도 무감각해진 내 모습은 처참했다.

"정말 안 아팠어요?"
"네, 별로 아프지는 않았어요."
"이상하네..."

이번 의사는 그 전 의사보다 눈치가 빠르진 않았다. 계단에서 굴렀다는 내 말을 정말 믿었고 그 덕분에 의사는 묵묵히 내 치료에 힘썼다.

치료가 다 끝났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내일 아침에 꼭 약국 들려서 처방 받아요!"
"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처방전을 찢어 길가에 버렸다. 그리고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근처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 미끄럼틀 구조물에 기대어 누워 잠을 청했다. 얇고 다른 학교에 비하면 예쁘지만 방한은 개나 줘버린 학교 교복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아무 코인 노래방에 들어갔다. 따뜻한 히터가 새벽에도 켜져 있는 코인 노래방은 잠깐 머물다 가기에 적합했다.

"*나 따뜻하네."

아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계에 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넣었다. 돈을 넣긴 했지만 막상 노래를 부르려니 딱히 부를 만한 노래가 떠오르지 않았다. 급히 다시 휴대폰을 켜서 음원 인기 차트에 들어가 1위 노래를 노래방 기계에 검색했다.

무작정 밝은 노래에 해맑은 가사, 희망적인 멜로디가 지금 내 모습을 더 비굴하게 만들었다.

"에휴, 그냥 잠이나 자자."

노래방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어차피 새벽엔 오는 관리자도 없어서 무인 코인 노래방은 잠시 머물기 적합했다.

*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 나 어제 폰 켜 놓았구나.

잠에서 깨 알람을 껐다. 그리고 일어나 노래방 한쪽 벽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직 얼굴은 살짝 부어 있고 눈에 멍은 새파랬다. 대충 머리를 정리하고 교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후, 나왔다.

아, 운수도 없지.

누가 봐도 방금 일어났다가 나온 모습의 날 청소부 아주머니가 보았다.

"학생! 설마 여기서 잔 거야?"
"아뇨, 아침에 친구랑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 여기 왔는데 잠깐 잠든 거에요."
"잠시 잠든 거라 하기엔 얼굴도 부었고 눈은 또 왜 그래?"
"아, 별 거 아니라고요."

청소부 아주머니를 대충 떼어내고 카운터에 있는 노래방 관리 서류 아래에 오 만원 2장을 끼워 넣어두고 노래방을 나왔다. 방금 끼워 놓은 돈은 일종의 숙박비... 같은 거다. 처음엔 숙박비도 안 냈지만 점점 양심에 찔린달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까먹었다.

"오, 생각보다 맛있네."

학교에 갈까 생각하다 어차피 아버지께서 백 퍼 내가 결석할 거라고 미리 말씀해 둘 거 같아서 그냥 가지 않기로 했다. 학교 근처를 지나던 중.

"어? 세리야."
"...누구...아."

강채영이다.

아침부터 조깅을 하는지 트레이닝복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있는 모습의 강채영이 보였다. 무시하고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인사 정도는 했다.

"안녕."
"안녕, 벌써 등교하는 거야?"
"아니, 오늘 학교 안 갈 거야."
"왜?"
"...그냥."
"그냥이 뭐야... 뭔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너 내신 관리한다고 아파도 조퇴는 커녕 결석도 안 하던 애잖아."
"있어."
"말 좀 돌리지 말고."
"하...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뭘 그렇게 궁금한 척 질문 해?"
"무슨 소리야... 난 네가 걱정돼서 그런건데."
"됐어, 조깅하던 거 같은데, 계속 조깅이나 해."

강채영은 날 빤히 쳐다보다 날 붙잡았다.

"세리야, 같이 아침이나 먹자."
"...어디서?"

강채영은 소름 돋게 씩 웃었다.

"우리 집."

ⓒ 2022. 이멷 All Rights Reserved.

0
이번 화 신고 2023-02-11 12:05 | 조회 : 321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