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세리의 비밀 (7)

"학생, 지금 학생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알기나 해?!"
"..."

늙은 경찰관이 소리를 빽빽 질러댈 때마다 눈 앞으로 튀는 침이 너무 기분 나쁘고 찝찝했다. 내가 왜 40 대는 되어 보이는 이 늙다리 경찰한테 조사를 받아야 하는거람?

"저도 다쳤는데 적어도 치료는 해주시고 조사를 받게 해주셔야죠."
"하... 이건 살인 사건이잖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는 거니? ...정말 걱정돼서 물어보는 건데... 내 생각엔 너 지금 정신에 무슨 문제 있는 게 분명해. 정신 병원 입원 진심으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 같구나."
"*발, 제가 무슨 정신 병원이에요. 지* 하지 마세요."
"그래,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 뜯으며 시계를 노려봤다. 조금씩 움직여 가는 초침이 8에 닿을 때, 경찰서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 아버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아버지의 모습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였다. 무섭다. 지금 몸 상태도 난리인데 여기서 아버지한테 더 맞으라고..? 그럼 진짜 나 죽을지도 몰라..! 난 아직 뒤지기 싫어. 근데 난 이미 살인까지 했는데...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갔는데... 내가 죽음이 무섭다고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벌벌 떨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락 말락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의지 되고 따뜻하다는 아버지의 품은... 내겐 정말 두렵고 차가운 모습이었다. 나는 소년원에 가려나? 소년원이라도 좋아... 이 거지 같은 집구석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 난 소년원이든 교도소든 어디든 갈 수 있어.

"하엘아."

아버지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심장을 관통했다. 차갑게 서리 맺힌 말투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 서리를 발견하지 못해 정말 따뜻하고 포근해 보일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모습을 잘 아는 내게 있어서는 저 말이 얼마나 두려운 말인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네."
"하엘아, 잠깐 저기 멀리 앉아있어라."
"네..."

아버지에게 자리를 비켜드리고 저 멀리 구석에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실까... 날 제대로 교육 시키기 위해 소년원에 들여보낼까?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정말 머리가 빈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그러진 않겠지.

그래도... 내 마음 한 켠에는 아버지가 날 따뜻하게 감싸주고 내가 정말 정신 차릴 수 있게 관련 기관으로 날 보내 날 치료해주지 않을까 하고 일어나지 않을 시뮬레이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생각에 빠진 동안 아버지는 경찰과 미소 지으며 대화 중이었다. 뭐지... 잘 풀린 건가?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오빠가 자신의 쪽을 쳐다보는 날 발견 했는지 내게 소름 끼치게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넌.

죽.

었.

다.

아 잘 해결된다고 해도 집 가서 또 쳐맞겠구나. 이러면 학교는 어떻게 가지..? 하루 정도야 빠져도 뭐라 하진 않겠지만 이건 하루 이틀로 나을 상처가 아니다. 오빠가 천천히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오빠가 다가올 때 마다 경찰서 안에 퍼지는 경쾌한 구두 소리가 내가 ㅈ될 걸 아니까 신난 오빠의 모습을 대변해주었다.

"하엘아~"
"네, 네?"
"오, 이제 존댓말은 입에 붙었나 봐! 근데 어떡하냐... 잘 하자 마자 또 사고를 치네? 우리 하엘이... 사고를 한 동안 안 치더니 이렇게 큰 스케일로 돌아올 지는 몰랐어. 그래도 걱정 마!"

오빠는 정말 활짝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오빠랑 아버지는 우리 하엘이 절대 안 놓아줄거야~!"
"..."
"푸하하하! 하엘아, 왜 이렇게 질린 얼굴이야? 오빠가 싫어하는 표정이 뭐더라..."
"우는 거... 질렸다는 얼굴 하는 거... 화내는 거..."
"옳지, 우리 하엘이는 웃는 게 제일 예쁜 거 알지? 그러니까 스마일~"
"..."
"...스마일."

방금까지 환하게 웃던 오빠의 표정이 확 식었다.

"스, 스마일..."

억지로 웃어 보이자 오빠는 만족했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예쁘다 칭찬하며 다시 아버지에게 걸어갔다.

역겨워...

조사가 다 끝났는지 경찰이 날 불러냈다.

"아직 네가 어리기도 하고, 너희 아버지 얼굴 봬서 용서하는 거야. 유가족 분들에겐 경찰 아저씨가 따로 용서 구할 테니까 다음부턴 절대 그러면 안된다."
"...네."

난 봤다. 아버지와 경찰 사이에 두꺼운 돈 봉투가 오가는 모습을.

"하엘아, 무서웠지?"

아빠는 날 꽉 끌어안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분명 그저 경찰 앞에서 내 가정 폭력 사실을 숨기려는 모습인 걸 알지만...

정말 야속하게도 그 품이 너무나 따뜻했다.

느껴보지 못했던 그 어색한 따뜻함이 얼마나 내가 갈망했던 것인지...

눈가에 또 눈물이 맺히고 아버지의 코트를 적셨다.

"...흐윽... 흐읍..."

아버지와 오빠가 가장 싫어하는 게 우는 모습이라는 걸 알지만 이번 기회에 아버지에게 매달려 울지 않으면 정말 다시는 내가 이 품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니지.

다시 느낄 수 있어.

살인 해보니까... 쉬웠잖아?

다시 하는 거야.

다시 하고 이 따뜻함을 느끼는 거야.

하면 안되는 생각이란 걸 알지만 내 귓속에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는 너무나 달콤해서 끊어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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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2-04 16:20 | 조회 : 309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