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야 왜그래 더 있으라고 하지.”
“쟤도 쉬어야 될 거 아니야. 그리고 니 새끼가 자꾸 질문 해대니까 들어가라고 하는 거야. 우리 사이에 껴서 불편하게 뭐 하냐. 편히 쉬는 게 낫지.”

나는 군말 없이 일어난 연호를 흘끔 보며 말했다. 말 그대로 연호 녀석을 괴롭히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불편할 것같아 들어가 보라고 했을뿐이었다.

“그래도 안에 뭐 침대 말고는 없던데. 애 심심하게 내쫓냐. 물어라도 보던가.”
“야, 내쫓는 게 아니라…”

울컥해 말을 뱉다가 슬쩍 자신이 사용한 컵과 접시를 정리하는 연호를 돌아봤다. 혹시 연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의중을 알기 위해 얼굴을 들여다봤으나 그 한결 같은 표정 없는 얼굴에서는 무언가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태진은 옆에서 툭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가서 좀 살펴보기라고 해라.”
“…”

태진의 말에 고민하던 나는 결국, 강하게 머리를 털며 빈 접시를 가지고 주방으로 향한 연호의 뒤를 따랐다. 내가 조용히 다가서자 어찌 알았는지 연호가 바로 뒤를 돌아 보았다.

“왜?”

무언가를 찾는 듯 주방을 살피는 연호를 보며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기대서 묻자 그가 손가락을 펴 그릇을 가리켰다.

“이거 설거지..”
“그냥 두면 돼.”
“아. 알겠습니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삐딱하게 말했으나 연호는 두어반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하고 옆을 지나쳐 가려는 연호를 보며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야.”
“예?”
“너.. 그, 방에서는 뭐 하냐?”
“?”

뜬금없이 나온 질문에 연호가 이해가 안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결국, 좀 더 알기 쉽게 말을 바꿔줘야 했다.

“평소에 자는 거 말고 방에서는 뭘 하냐고. 뭐.. 그 안에 침대 말고 있는 게 없잖아?”
“아.. 요즘엔 대부분 그냥 잤습니다. 정 할 게 없으면 그냥 창을 열고 바람을 쑀고요.”
“너 뭐, 핸드폰은?”
“아, 방에 있습니다.”

역시나 태진의 걱정을 인정하는 연호의 말에 슬쩍 죄책감이 들어 물었으나 연호는 정직하게도 제 핸드폰의 위치를 말했다. 나는 그에 답답하다는 듯이 살짝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보통 할 거 없으면 핸드폰이라도 가지고 놀잖아. 너 핸드폰은 안 하냐고.”
“아..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건 그냥 청당 아저씨랑 연락하기 위한 전화라서요.”
“뭐 다른 기능이 없는 거야?”
“네.. 잘..”
“하아..”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맹한 얼굴로 답하는 연호를 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방에 있는 태블릿 피씨라도 쥐어줄까 생각했던 난 녀석이 아예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어쩐지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연호의 모습은 상상이 안 되기도 했다. 주방을 가로 막고 비켜서지 않는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는 연호를 앞에 두고 나는 곰곰이 고민 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평소에는 시간 나면 뭐 하는데? 그러니까.. 취미 같은 거 말이야.”
“예?”
“취미. 없냐?”

설마, 하는 얼굴로 묻자 아주 미세하게 미간을 한 번 찌푸린 연호가 나를 따라 생각에 잠겼다. 질문에는 성실히 답하고는 하던 연호에게서 몇 초 뒤에야 답이 나왔다.

“시간이 조금 생기면.. 주로 운동 했습니다.”
“운동? 어떤 운동?”
“형님들 옆에서 같…”
“됐어, 됐어.”

조금 정상적으로 군다 싶더니 다시금 열여덟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소리를 하는 연호의 모습에 나는 화급히 손을 내저어 입을 닫게 했다.

“운동은 어차피 지금 몸으로 무리일 거 아냐. 그거 말고 다른.. 좀 평범한 건?”
“평범..”

연호는 퍽 어려운 질문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참을 기다려도 연호의 입이 열릴 생각을 않았다.

결국, 답답함에 주방 한 편에 놓인 책꽂이에서 책이라도 하나 꺼내줄까, 생각했던 나는 얘가 책을 읽을 줄 아는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방향을 돌렸다.

“기다려.”

짧게 말한 나는 그대로 복도를 건너 잘 사용하지 않는 서재로 가 책상 위에 나뒹굴고 있는 먼지 쌓인 태블릿 피씨를 꺼냈다. 다행히도 전원을 켜보니 배터리도 충분하게 충전 된 상태였다.

저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씩 그리고 성큼성큼 빠르게 연호에게 돌아갔다. 나는 뿌듯한 미소를 한 채 연호에게 태블릿 피씨를 내밀었다.

“자.”
“?”
“멍하니 있지 말고 심심하면 이거라도 가지고 놀아.”
“아..”
“작동법은.. 알지?”
“네. 어느 정도는.”

묵직한 태블릿 피씨를 받아든 연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쩐지 못미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도로 그에게서 태블릿을 뺏어 적당한 어플 두어개를 바탕화면에 끌어다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화면을 연호에게로 돌려 친절하게 척 가리켜주었다.

“자 봐.”
“네.”

작동법을 안다고 했던 것 치고 연호를 눈을 부릅뜨고 혹여 설명을 놓칠세라 열심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게임, 그 옆에 건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을 볼 수 있는 거. 그냥 둘 중에 아무거나 눌러서 하고 싶은 걸 해. 알겠어?”
“..아 네. 알겠습니다.”

콕 손가락으로 누르자 어플리케이션이 작동하는 것을 빤히 보던 연호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제야 안심한 마음이 들어 나는 만족스럽게 연호의 품에 피씨를 안겨주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자, 이제 방 가서 놀아.”

내 말에 연호는 순응적이게 서브 방으로 얌전히 돌아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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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4-07 18:34 | 조회 : 1,31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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