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아, 그럼 언제부터 한이현이랑 아는 사이였어? 아픈 건 괜찮아?"

막상 연호를 방 밖으로 불러냈으나 친구 녀석들에게 연호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 지 방을 나가는 순간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연호는 의외로 또래 녀석들과 정상적으로 어울릴 줄 아는 놈이었다.

나는 첫 날과 다르게 깔끔해진 몰골로 아이들의 질문에 착실히 답하면서도 앞에 늘어진 피자나 치킨 따위를 잘도 먹는 연호를 흘끔 바라보았다. 이곳에 앉힐 때만 하더라도 죽같은 거라도 해 먹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집에 아픈 사람에게 먹일 만한 게 없기도 했고 어쨌든 잘 먹으니 되었다 싶었다.

"예…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한 쪽 볼에 피자를 가득 집어 넣은 채 답하는 연호를 아이들은 새 얼굴의 등장에 설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부담스럽지도 않은지 연호는 언제나 보이던 평온한 얼굴만을 보였다. 이따금 내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아, 맞다. 동생이랬지. 몇 살이야?"
"열여덟이요."
"진짜? 와… 한 살밖에 안 어리네. 더 어릴 줄 알았는데."
"하? 그렇게 어린데 왜 그런……."

입을 열었던 나는 친구 녀석들의 이상하다는 눈빛에 입을 딱 닫고 말았다. 아버지 옆에 붙어선 다른 아저씨들과 다르게 연호가 매우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연호의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일을 하는 연호를 향해 어이없음을 담은 탄식이 나갈 뻔했다. 말을 하려다 멈춘 탓에 친구 녀석의 이상하다는 눈빛이 더욱 진해졌으나 녀석들은 연호에게 물을 것이 많았는지 곧 신경을 거두고 다시 질문 세례를 시작했다.

"이름은 뭐야?"
"연호요."
"연호? 성은 뭔데?"
"그냥 연호예요."

그냥 연호.

내 눈에는 그게 곤란한 질문을 피하고자 하는 연호의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녀석들은 아, 그래? 하며 넘어갔다. 태진이 녀석이 잠깐 '연'이라는 성도 있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지만, 대강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아, 근데 아프다면서 이런 걸 먹어도 되나?"
"어… 괜찮지 않… 나요?"

잘 대답하던 연호는 이따금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슬쩍 나를 돌아보면서 질문을 떠넘겼다.

"뭐, 속 안 좋으면 이야기 해라."

그러면 나는 대강 답해주고 연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나 연호가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끈질긴 태진은 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질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한이현이랑은 어떻게 만난 건데?"

결국, 그는 처음에 연호가 답하지 않고 어물쩍 넘겼던 질문을 다시 뱉고 말았고 연호는 다시금 곤란한 질문을 내게 넘기고 말았다. 연호의 시선 속에서 나는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뭘 궁금해해. 김태진. 그냥 아는 사이라니까."
"아니, 궁금하니까 그렇지. 네가 언제부터 집에 들일 정도로 친한 동생을 만들었는지."
"그냥 삼촌이 부탁해서 맡은 거라고 했지."
"아무리 그래도 네가 집에 들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렇지. 우리도 초대는 하지만, 자고 가는 건 곧 죽어도 못하게 하면서."

…애초에 누군가와 함께 자는 것을 즐겨하는 성격이었다면 굳이 가족들과 떨어져 나와 살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뭐 연호가 워낙 있는 듯 없는 듯 지낸 덕에 그와 지내는 것은 딱히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기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사용하지 않는 방에만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할 일이 있겠는가.

연호는 태진의 질문에 관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자 주인의 도움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나를 봤지만, 나는 답하는 대신 태진의 어깨를 한 대 퍽 쳤다.

"조용하고 과제나 해라. 조별과제 하려고 모인 거 아니냐, 우리? 과제는 하나도 안했다. 그만 놀고 과제나 해."

내 소리에 다른 두 녀석이 옅게 웃었고 나는 대강 넘어간 분위기를 보면서 슬쩍 연호에게도 고갯짓했다.

"너도 다 먹었으면 들어가 봐."

0
이번 화 신고 2022-04-06 20:26 | 조회 : 1,655 목록
작가의 말
자유로운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