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걱정과 다르게 연호를 신경 쓸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굳게 닫힌 방 문을 보며 고민하던 나는 결국,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을 택했으나 그 후로부터 며칠이 지났음에도 연호가 방 밖을 나와 돌아다니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나도 어느 새 녀석이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다시금 연호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던 것은 조별과제로 인하여 친구 녀석들이 내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아, 수험생한테 무슨 조별과제야."
"…시끄럽고 손이나 씻어."
"오, 한이현 집 엄청 좋아."

학교 근처에 혼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연히 알리지는 않았으나 빠르게 아이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소문으로 인하여 이따금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지금처럼 조별과제를 할 공간으로 시끄러운 카페 대신에 편한 우리 집을 택하게 될 때도 있었고 말이다.

그 때문에 꽤 익숙하게 친구 녀석들에게 화장실을 가리키며 손을 씻으라고 명하느라 나는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넓은 태진이 서브 방의 문고리를 잡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야… 잠깐……!"

뒤늦게 문고리에 손을 올린 태진을 보고 소리쳤으나 이미 ''응?'' 하는 얼굴을 한 태진이 문고리를 돌린 뒤였다. 나는 저번처럼 훅, 하고 너머에서 풍겨나올 피 냄새를 예상하며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전과 다르게 살짝 밝아진 방 분위기 안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는 연호는 생각보다 꽤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날, 연호를 제대로 보지 않았기에 녀석이 어떤 꼴을 하고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전보다는 분위기가 훨씬 평온하게 풀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침대 맡의 창가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햇빛과 깔끔하게 내 잠옷을 차려 입은 연호를 보느라 나는 순간 이 문이 왜 열리게 되었던지 잊고 말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옆에서 태진의 호기심 어린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뭐야? 누구야?"
"…야, 됐으니까. 도로 닫고 나와."

나는 혹여라도 기척에 연호 녀석이 깨어날까 태진의 소매를 잡으며 문 밖으로 끌려 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태진이 한 발 앞으로 향하는 것이 먼저였다. 덕분에 녀석을 잡으려던 내 손은 허공을 갈라야 했다. 성큼성큼 겁도 없이 침대에 누운 연호에게 다가선 태진은 고개를 한 쪽으로 갸웃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리고 다음 순간, 정말 겁도 없는지 태진이 녀석이 평온하게 잠든 연호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야, 야!"

그를 발견하고 사색이 된 나는 재빠르게 슬리퍼 질질 끌고 달려 태진의 뒷목을 탁 움켜잡았다. 그리고 나는 정확히 태진이 서 있던 자리에 날카롭고 작은 칼을 든 연호의 팔이 자리한 것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팔과 상체를 보며 나는 연호가 입은 것이 확실히 내 잠옷이 맞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친구야."

멍하니 팔을 뻗고 멈춰선 연호는 내 설명을 듣지 못한 것처럼 잠시 경계의 빛으로 상황을 살피는가 싶더니 곧 정신을 차렸는지 서둘러 소매 속으로 칼을 감춰냈다. 천천히 팔을 내리며 허리춤을 한 번 매만진 연호는 눈치 보는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나를 흘끔 보았으나 이미 태진의 눈은 두꺼비처럼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나는 경악으로 물든 태진의 얼굴을 보며 작게 혀를 쯧, 찼다.

"…죄송합니다."
"방, 방금 무슨……."
"됐으니까, 넌 나와."

다시 한번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사과하는 연호를 보고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분명 무턱대고 칼을 들이민 일에는 화를 내야 옳았으나 그렇다고 잘 자던 사람을 깨운 입장에서 연호 녀석에게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 사건의 원흉인 태진의 뒷목을 다시금 꽉 잡고는 방 밖으로 끌었다. 그러나 태진은 방금 눈앞에서 칼을 보고도 정말로 겁도 없는지 발 뒤꿈치에 힘을 주며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버텼다.

"아니, 아니. 그래서 방금 뭐였어? 쟤는 누군데? 설마 네 동생?"
"어……."
"아니야."

곤란한 질문이 나오자 도움을 요청하듯이 나를 보는 연호를 보고 내가 대신 답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태진의 눈이 더욱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럼? 누군데 여기서 자고 있는 건데?"
"…누구긴 누구겠어… 그냥 중2병 걸린 꼬맹이지."

슬쩍, 칼을 들이민 것을 탓하는 눈으로 연호를 바라보자 이불을 걷고 침대 밖으로 발을 빼내던 연호가 멈칫하고 나를 올려 보았다.

그 모습은 청당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정말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 모습이었기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호를 많이 본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연호는 아버지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개같은 녀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주인 바뀐 개처럼 내 눈치를 슬슬 보는 녀석의 모습에 가슴 속에서 근질근질거리는 이상한 기분이 피었다.

"중2병 걸린 꼬맹이…? 아니, 뭐가 되었든 그래서 네 집에서 왜 자고 있는 건데?"

그대로 방 밖으로 태진을 끌어내려던 나는 끈질긴 그의 질문에 결국, 포기하고 뒷목을 놓아주고 말았다. 나는 턱짓으로 살짝 연호를 가리켰다.

"그냥……."
"그냥?"
"……."

그냥,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놈이야. 라고 말하려던 소리는 순간 녀석이 쫓기는 중이라고 했던 청당 아저씨의 말이 떠오르며 멎고 말았다. 확실히 괜히 저 녀석이 아버지와 관계 있는 놈이라는 소리를 이곳저곳에 하고 다닐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말을 하다 만 덕인지 태진의 수상하다는 눈초리를 초 단위로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빠르게 다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아는 동생이야. 예전에 근처 살던 삼촌이랑도 친해서… 쟤 아프다고 잠깐 맡아달라고 부탁받은 거고."
"아, 아하~ 뭐야. 아파서 자고 있던 거였어? 어디가 아프길래?"

내 설명에 태진은 별 의심도 들지 않는지 연호가 정말 저를 죽일 생각으로 칼을 들이밀었던 것은 완전히 잊고 바보 같은 얼굴로 성큼성큼 침대로 가까이 다가섰다. 다행히 연호는 살짝 몸을 굳힐지 언정 아까와 같은 살벌한 살기를 뿜어내지는 않았다.

"그냥… 몸이 좀 안좋아서……."

더욱이 태진의 질문에 입을 열고 꽤 정상적으로 답하기도 했다. 그 모습이 의외였기에 나는 눈썹을 위로 들어 올렸고 태진은 더욱 환한 얼굴이 되어 연호를 귀엽다는 듯이 보았다.

방 문을 잡고 선 나는 태진이 하는 꼴을 슬쩍 보다가 문 밖으로 손을 씻은 친구 두 녀석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서둘러 태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른 녀석들에게 또다시 연호를 설명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은 피하고 싶었던 탓이다.

"적당히 하고 나와. 김태진. 애도 쉬어야 될 거 아냐."
"아, 그렇긴 한데 왜 이렇게 재촉이야. 우리 먹을 것도 많이 사왔는데. 애 밥 먹었냐고 물어 보지도 않냐. 삼촌이 맡아달라고 했다면서."
"……."

문 밖에서 웅성거림이 커지는 것을 들으며 결국, 나는 도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꽤 뚱한 얼굴을 한 채 뻘쭘하게 침대에 앉은 연호에게 시선을 던졌다.

"밥은 먹었냐?"
"아… 저는 괜찮습니다. 이따가 먹겠습니다."
"이따?"

녀석의 답에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껏 연호 녀석이 우리집에 머문지 며칠이 지났지만, 나는 녀석이 방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호 녀석은 어떻게 식사를 해왔던 것일까? 납득가지 않는 상황에 미간이 더욱 깊어지자 연호가 내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 깔았다.

"너 식사는? 청당 아저… 아니, 삼촌이 챙겨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 그게 요즘은 조금 바쁘셔서……."
"하?"

녀석의 답에 기찬 숨을 뱉으며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를 흘끔 올려봤다. 오후 다섯시. 나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연호에게 물었다.

"너 오늘 밥은."
"……."

표정 변화 없이 앉은 연호는 고집스럽게 바닥 무늬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머리가 지끈해 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이따가는 무슨……."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게 이따가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청당 아저씨도 내가 없는 동안에만 살짝 왔다 가는 것 같았고 연호 녀석은 아예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더욱이 주말을 끼고 며칠 동안은 내가 집에서 아예 나가지 않던 적도 있었는데 도대체 연호 녀석이 식사도 하지 않고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를 생각하니 저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죄책감이라는 녀석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손을 들어 살짝 머리를 털어낸 나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연호에게 고갯짓 했다.

"너,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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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4-06 20:04 | 조회 : 1,60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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